2014년 4월16일 세월호가 진도군 병풍도 인근에서 급변침할 당시 단원고 2학년 박○○ 양은 아침식사를 마치고 4층 선미의 SP-1룸에서 쉬고 있었다. 배가 갑작스레 기울면서 선실 내의 학생들이 화장품, 신발, 캐리어 같은 짐들과 함께 모조리 창문쪽으로 부딪히며 떨어졌다.

곧 선내 안내방송이 나왔다. “이동을 하면 위험하니 안전봉을 잡고 대기하라” “현재 자리에서 이동하지 말라” “절대 움직이지 말라” “구명동의를 착용하고 현재 위치에서 절대 이동하지 말라” “해경 구조정 및 어선 10분후 도착예정이다. 선실이 더 안전하다” “현재 위치에서 안전하게 기다리시고, 더이상 밖으로 나오지 마라” ‘절대 밖으로 나오지 말라’는 안내방송이 선실내로 물이 차오를 때까지 2~3분 마다 반복됐다.

검사: 증인이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면 당시 물이 들어오는데도 가만히 있으라는 안내방송에 따라 선실에 가만히 있었다고 하던데, 맞는가요?

박○○ 양: 예, 처음에 물이 조금 조금씩 들어온다고 했을 대도 가만히 있으라고 계속 나왔고, 나중에 물이 확 들어왔을 때부터는 방송이 끊겼던 것 같아요.

검사: 세월호에서 살아 돌아온 피해자들은 증인을 비롯한 승객들을 버리고 먼저 배에서 빠져 나간 선원들을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하던데, 증인도 같은 생각인가요?

박○○ 양: 그런 것보다는 왜 친구들이 그렇게 되어야 했는지 그 근본적인 이유를 알고 싶어요.

▲ 세월호 침몰 당일 오전 9시44분의 모습. 해경 123정은 사고해역 도착 후 10여분간 세월호를 멀찍이 지켜보다가 처음으로 세월호에 접안해 선장과 선원들을 구조했다.
▲ 세월호 침몰 당일 오전 9시44분의 모습. 해경 123정은 사고해역 도착 후 10여분간 세월호를 멀찍이 지켜보다가 처음으로 세월호에 접안해 선장과 선원들을 도주시켰다.

선내로 물이 들어옴에 따라 승객들은 하나둘 배밖으로 탈출하려는 시도를 했지만, 그럴 때마다 ‘움직이면 더 위험하다’는 안내 방송이 승객들의 탈출의지를 꺾어놨다. 이 안내방송들은 조타실에 있던 선장과 항해사들, 그리고 복도에 집결해있던 기관부원 등 모든 선원들이 듣고 있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검찰수사는 많은 ‘빈 칸’을 남겼놨다. 그 첫번째가 선원들의 공모관계였다. 급변침 이후 조타실로 모여든 선원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승객 대피나 탈출에 대해선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고 했었다. 이에 법원은 이준석 선장 이외 다른 간부선원들이 승객 대기에 공모했다 단정키 어렵다며 ‘부작위에 의한 살인행위’에 무죄를 선고했다. 승객 유기의 핵심 역할을 한 간부 선원들에 대해서도, 이같은 지시를 내린 청해진해운의 책임자에 대해서도 응당한 처벌은 이뤄지지 않았다. 대법 판결이 모두 끝난 이후 특조위 조사과정에서야 이들 선원들이 합의하에 의도적으로 승객들을 선내에 대기시킨 사실이 드러나게 됐다.(기사 참조:승객 대기명령 전달한 ‘제3의 휴대폰’ 있었다)

‘아무 이야기도 나누지 않았다’, ‘경황이 없었다’, ‘몰랐다’는 주장은 해경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박 양과 마찬가지로 4층 선미의 SP-1룸에 있던 오○○ 양은 ‘해경이 오고 있다, 현재위치에서 대기하라’는 내용의 선내 방송에 따라 캐비닛 안으로 몸을 밀어놓고 기다렸다. 그러나 곧 바닷물이 밀려들면서 캐비닛들이 부숴졌고 오 양은 친구 한 명과 함께 캐비넷 안에 갇혔다. 캐비넷 안에 만들어진 에어포켓 속에서 오양과 친구는 “혼자 있었으면 무서웠을 텐데 둘이 남아서 다행이다. 살아서 다행이다. 울지마라”고 서로 위로했다. 살고 싶은 마음에 오 양이 한손으로 친구를 안고, 캐비넷을 치고 나와 둘은 선실내에 차오른 물위로 떠올랐다. 선실 밖에 있던 친구가 손을 끌어주고 밑에서 다른 친구가 받쳐준 덕에 오 양은 선실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복도로 나가니 방에서 빠져나온 학생들이 줄을 서 있었고, 비상구 밖엔 해경이 보였다.

검사: 비상구 밖에 해경이 와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하였는데, 해경이 배안에 들어온 것은 본적이 있나요?

오○○ 양: 비상구가 이렇게 있고 바닷물이 이렇게 있는데 거기에 나가면 건져주기는 했는데, 안에 들어오질 않는 거에요. 그때부터 복도에서 “왜 들어오질 않냐”고 계속 그랬었어요.

검사: 해경에게 “왜 들어오지 않느냐”고 했다는 것은 증인이 혼자 생각한 것인가요?

오○○ 양: 아니, 애들이랑 “왜 들어오지 않느냐”고.. 저희가 줄을 서있을 때 밖에 해경이 보였어요.

‘4.16세월호참사 국민조사위원회’에 따르면 생존자들은 ‘현재 위치에서 절대 움직이지 말라’는 방송이 반복되는 상황에서 네 가지의 탈출 유형에 따라 배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이들 유형은 배가 기울어지고 선내에 물이 차오름에 따라 1. 자체 판단으로 탈출한 경우 2. 승객들끼리 서로 도와 탈출한 경우 3. 화물차 기사 등 배를 잘 아는 다른 승객의 도움으로 탈출한 경우 4. 선내에 차오른 물에 휩쓸렸지만 다행히 생존한 경우였다. 국민조사위가 분석한 생존자들은 1심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했던 30명 가운데 조타실에서 나온 필리핀 가수 부부를 제외한 28명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이들 유형은 전체 생존자들을 대상으로 확대하더라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다만 해경이 선원들의 제안에 따라 유리창을 깨고 구조한 3층 S1룸 객실 6명의 승객만이 해경이 구조한 유형에 해당한다.

해경의 구조 문제는 단순히 준비부족이나 구조 실패의 문제로 보이지 않는다. 해경 123정은 단원고 학생 50명이 배정된 4층 다인실의 유리를 깨자는 선원의 제안을 받고도 이를 묵살했고, 3층 로비에 대기중이던 30여명의 승객들을 보고도 그냥 지나쳤다. 자력탈출한 승객들을 123정 및 123정의 고무단정이 태운 행위를 ‘구조’라고 분류하더라도, 그 숫자는 위 6인을 포함해서 29명에 불과하다.(검찰이 집계한 123정과 고무단정 구조현황. 2014고합436 변호인 변론요지서에 대한 의견)

해경 헬기의 경우에도 9시27분부터 3대의 헬기가 잇따라 도착했지만 한 시간 동안 구조한 인원은 총 35명 뿐이었다.

▲ 공중에 떠 있는 초계기 B703의 모습. 9시33분 해경 123정이 촬영한 동영상.
▲ 공중에 떠 있는 초계기 B703의 모습. 9시33분 해경 123정이 촬영한 동영상.

미디어오늘이 입수-공개한 해경초계기 B703호의 교신록을 보면, 9시27분 이후 약 한 시간의 골든타임에 헬기들이 선내진입 없이 소극적 구조활동만 했던 것이 ‘지휘’에 의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헬기들을 지휘한 703호기는 세월호가 9시58분 좌현 5층까지 물에 잠기며 급속히 기울어지던 시각에“잠시 후 본청1번님께서 출발하셔가지고 현장에 오실 예정이니까 너무 임무에 집착하지 말고 안전에 유의하라”고 명령한다.

B703호는 사건 초기 그 존재조차 알려지지 않았다. 해경 헬기들은 눈 앞에 놓여있는 대형여객선에 다수의 승객들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고, 세월호의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세월호나 123정과 교신을 하지도 않았다고 주장해왔다. 이번에 공개된 교신록은 이들 헬기들의 공중 OSC의 역할을 한 것이 B703호기이며, B703호기의 지시에 따라 헬기들이 소극적인 구조 활동만 벌였음을 드러낸다. 이 B703호기 관련자들은 아무도 조사받지 않았다.

초계기의 지시 내용은 현장통제 지휘부의 역할을 했던 서해해경청이 “잠시 후 침몰함” “승객 절반 이상이 못 나온다”는 보고에도 불구하고 퇴선지시를 않고 “승객들이 동요하지 않도록 안정시키라”는 등의 명령을 내린 것과 유사하다. 세월호 침몰 당일의 구체적 상황들을 살펴보면, 이들 해경이 고위층에 대한 의전 등의 목적으로 승객 구조를 우선순위에 두지 않았거나 여타의 사유에 의해 의도적으로 지연했을 가능성마저 엿보인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검찰수사엔 이런 ‘빈 칸’들이 유난히도 많다. 국정원의 경우 아예 수사당국이 기록을 없애거나 ‘바꿔치기’ 했고 , 침몰 당일의 세월호에 제주해군기지로 가는 막대한 양의 철근이 실린 사실 역시도 사건 발생 2년여가 지나서야 드러났다. 세월호가 급변침하며 침몰한 원인조차 여전히 ‘빈 칸’으로 남아있다. 진상규명은 이제 출발점에 서 있을 뿐이다.

※ 연재순서

① 해경, 50명 객실 구조하자는 제안 뭉갰다-해경 구조의 문제 1

 승객 대기명령 전달한 ’제3의 휴대폰’ 있었다-빗나간 검찰 수사

③ 초계기 교신록 입수 “1번님 오시니 임무에 집착 말라”-해경 구조의 문제 2

④ 로비 승객 30여명, 해경은 봤지만 안구했다-해경 구조의 문제 3

⑤ 해저 ‘소나’에 철근 고스란히… 선원들 “선수 철근 위험”-제주해군기지용 철근

⑥ 청해진해운-국정원 통화내역 수사과정에서 조작됐다-국정원 개입

⑦ 검찰은 아무 것도 밝혀내지 않았다-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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