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5·31교육개혁으로 본격화된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의 한계와 문제점이 표면화됨에 따라 국가의 교육정책 추진 세력 사이에서도 현 교육정책 기조에 대한 회의가 확산되어 왔다. 새 교육 패러다임을 고민해야할 교육부는 그러나 지역교육자치단체와의 불협화음만 격화시키며 정책적 무능함만 증명해왔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한 술 더 떠 국사교과서 국정화 등 반동적인 교육정책을 밀어붙여 교육현장에 혼란만 가중시켜 왔다. 이에 중고등학교의 서열화 및 계층간, 특히 지역간 교육격차는 더욱 심각해지고 있으며, 그 결과 가정환경 및 소득격차에 따른 교육불평등이 강화되고 있다. 신자유주의 교육정책과 반동적 교육정책으로 인해 초토화된 교육현장을 회복시키고 새로운 교육 패러다임을 정립하기 위해선 그야말로 혁명적인 수준의 교육개혁이 요구되는 때이다.

없앨 것은 빨리 없애고 새로운 제도로 디자인해야

무엇보다 먼저 교육개혁을 위해선 교원능력개발평가제, 학업성취도평가제와 같은 신자유주의 교육체제를 상징하는 핵심 정책을 즉시 폐기해야한다. 물론 5·31교육개혁으로 학교 현장에 도입된 정책들 중 학교운영위원회, 교장공모제, 자율학교 등은 의미있는 변화를 추동할 수 있는 제도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학교현장 교원들을 개혁의 대상으로 치부하고 이들의 자율적·자발적 개혁의지를 막아온 교원평가는 폐지되어야 한다. 또한 학업성취도 평가제 역시 학습부진아 파악 및 체계적 지원이나 학습부진에 대한 학교의 책무성 강화 등의 목적을 달성하기는커녕 교육현장의 갈등만 부추겼다. 이러한 평가 만능의 교육정책은 즉시 폐기되어야 한다.

없앨 것은 없앤 후엔 교육제도 자체에 대한 전면적인 검토에 착수해야한다. 그동안에도 입시제도 개혁이나 개별 학교·급 내부 수준에서 제도 개편은 계속되어 왔지만, 이제는 인간 발달 단계에 맞게 학제 자체를 개편하여 학교제도를 유연화하고 수업연한과 교육과정을 다양화하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유아교육과 보육 서비스 기능의 조정과 연계 강화 혹은 유치원과 보육기관을 단일화하여 공교육 기간학제에 포섭하거나, 중·고로 분리된 중등학교를 통합 혹은 중·고를 연계하여 일관 교육을 추구하는 방식도 가능하며, 고교와 대학교육의 연계를 강화하는 제도의 기획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즉, 기존 학교제도에 학생들을 끼워 맞추기보다 학생 중심의 개별맞춤형으로 학교제도를 유연하게 기획할 필요가 있다. 기간학제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일괄 개혁보다는 학교제도의 다양한 조합을 허용하는 학교제도의 유연성을 강화하는 개혁이 필요하다.

셋째, 학습자 중심으로 교육 및 교육복지 관련 법제를 대대적인 정비해야한다. 신자유주의 정책 기조에 근거한 현재의 교육기본법과 아울러 그때그때의 필요성에 의해 만들어진 각종 교육 관련법의 정비가 시급하다. 예를 들어 인성교육법 같은 경우는 폐기하거나 인권교육법이나 민주시민교육법 등으로 개정하고, 학교폭력에 관한 법 등도 학교의 민주적 친인권적문화 조성에 기여하도록 바꿀 필요가 있다. 이러한 법제 정비 과정과 함께 교육정책 추진 단위를 통합하고 책임 주체간의 관계 및 역할도 재정립해야만 한다. 또 개별 지방자치단체에서 추진하는 성과가 좋은 교육 관련 사업은 전국적으로 확대 시행 될 수 있도록 법제를 정비해야 할 것이다. 학생인권조례나 학교자치조례 같은 것은 아동청소년 인권법을 제정하거나 초중등학교법으로 끌여들여야 하며, 교육받는 아동청소년 혹은 학습자 중심으로 제도와 정책을 통합하고 체계화하는 법제 정비가 되어야만 한다. 부처간, 지역과 중앙간, 학교와 지역사회 사이에서 협치와 분권의 가치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제도와 역할 관계를 규정하는 법적 정비 또한 필요하다.

분권적, 보편적, 그리고 민주적인 교육과정으로

넷째, 국가 교육과정 체제 아래서 국가가 교과별 교육과정, 수업시수, 교과서 인정·심의를 일방적으로 시행하는 현행 제도는 개혁되어야만 한다. 국가 수준에서는 교과군을 묶어 학생역량별 기준이나 성취 조건을 제시하는 형식으로 교육과정을 최소화·대강화하여 제시하고, 나머지는 시도교육청 및 학교에 권한과 책임을 위임하는 분권형 교육과정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국가 주도하에 여러 압력 세력의 입맛에 따라 고치고 덧붙여진 누더기 교육과정이 아니라 분권화된 단위, 즉 중앙, 지역, 학교, 교사 수준뿐만 아니라 교육과정에 관한 권한과 책임을 가진 여러 단위들이 각자 만들어 내는 서로 다른 독특한 교육과정이 하나의 완성체를 이루는 조각보 교육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하여 다양한 방식으로 디자인된 개별화된 맞춤형 교육경험을 학생에게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교육과정은 또한 보편적 인권으로서의 교육권을 보장하는 쪽으로 개혁되어야만 한다. 누구에게나 차별 없이 배우고 성장할 기회를 평등하게 보장하는 교육을 위해서 교육 소외계층 대책을 강화하여 교육 첫 출발선 또는 교육 단절 시점에서의 차별이나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어야 한다. 특정지역에서 학용품과 통학 비용, 체험활동비 등이 지급된다면 다른 지역에서도 또한 제공되어야하며, 어느 한 학생에게 소요되는 기본적인 교육경비는 다른 학생들에게도 비슷한 수준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최저 교육비에 대한 보편적인 지원이 거주 지역이나 학습자 특성과 연결되어 차등적으로 주어지는 것은 피해야 한다. 안정적인 학습 보장과 그 결과로 누구에게나 기초 학력이 보장되고, 교육격차는 해소되며, 위기학생에 대한 집중 관리 지원이 가능하도록 제도적 정비가 필요하다. 교육비 부담 없는 나라를 위해 유치원의 공교육화, 고등학교 무상교육, 대학 반값 등록금, 사교육을 제한하고 금지하는 법적 조치, 학력 차별을 근절하는 법적 조치도 함께 취해져야 한다. 아울러 4차 산업혁명 등 시대의 변화에 부응해 지능정보기술 분야 등 첨단 분야의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도록 하는 직업 훈련 성격의 교육 강화 못지않게 보편적 인문 교육, 세계 민주시민 교육 또한 강조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경쟁보다는 상생과 협력의 교육으로, 관계 속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능력을 제고하는 교육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만 한다.

여섯째, 민주적이고 창의적인 주체적인 학습생태계 구축을 위해 중앙정부 중심의 교육행정 체계의 혁신이 필요하다. 교육자치의 실질화를 위해 유·초·중·고 관련 교육정책은 기본적으로 교육감 관할로 이관하는 것이 필요하다. 교육계의 권위적인 문화와 수직적인 질서, 비교육적인 관행이나 문화 등을 바꾸어 안전하고,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며, 학생과 교원과 학부모 그리고 학교와 지역사회가 협치하는 민주적인 제도 마련이 절실하다. 이를 위해 우선 교사회와 학생자치나 학부모 참여를 법제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교육의 공공성 강화가 핵심

또한 사립학교와 유아교육기관에 대해서도 특단의 조치가 취해져야만 한다. 저출산 문제 해결, 유아 공교육비 및 사교육비 부담 경감 등을 위해 사회적 돌봄 지원 체계를 강화하고, 보편적인 복지서비스로 양육의 책임보다는 양육의 기쁨을 누리도록 유아교육과 돌봄서비스에 대해 사회적 책무성을 강화해야만 할 것이다. 유아교육 및 보육시설의 공영화, 유아교육 및 보육시설의 지역간 불균형, 교육 및 보육자의 전문성 강화, 완전 무상교육, 지역 직장 및 공공기관, 사회단체와의 네트워크 강화로 충분한 돌봄과 교육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사립학교의 공공성 강화 또한 시급한 문제이다. 사학비리가 여전하고, 설립자 및 이사진의 제왕적 운영 등으로 민주 사회에서 가장 변화가 필요한 영역의 하나로 지적되고 있다. 이와 같은 사립학교의 민주적 운영을 위해선 사립학교법 개정이 시급하다. 장기적으로는 사립학교를 공립학교로 전환하는 것을 고려해야만 하며, 이를 유도하는 정책 로드맵을 준비하고 시행해야만 할 것이다.

현재 관료주의적 학교문화의 가장 큰 원인이 되고 있는 가산점과 자격증 중심의 교원승진제도 또한 타파해야 한다. 행정이나 가산점 관리를 잘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수업과 교육 잘하는 교사들이 학교장으로 진출할 수 있도록 교장공모제를 전면 확대하고, 단계적으로 교장선출보직제로 전환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아울러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교육계 인력구조를 극복하기 위해 교육계 인력 구성의 다양화에 부합하는 법제와 교육 전문 인력 양성 시스템 개혁이 필요하다.

끝으로, 방과 후 교육활동의 사회적 보장으로 교육의 공공성을 실현할 필요가 있다. 정규교육과정 이후 방과후 교육활동을 사회적으로 책임지도록 해야만 할 것이다. 학교는 보편적 수준의 민주시민의 자질과 능력 함양에 주력하고, 특히 학습부진학생의 교육에 우선적인 책임을 갖도록 변화되어야 한다. 방과 후에도 모든 아이들이 공공적 교육 혜택을 받을 수 있어야 하며 방과후 교육은 학교교육의 연장이거나 입시 위주의 교육이어서는 안 된다. 나아가 학생들의 방과후 교육 활동 뿐만아니라 지역의 모든 사람들의 교육활동 보장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교육 전문가와 지역민이 협력하여 지역의 교육적 자원을 주도적으로 네트워킹하여 지역민의 교육활동을 사회적으로 보장하는 동시에 지역교육공동체를 활성화하여 교육의 공공성을 전면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 연재

1. 총론 :

촛불 시민혁명과 주권자 시민의 탄생, 그리고 민주·평등·공공성의 민주공화국

2. 정치 개혁 :

촛불 광장이 요구하는 정부와 의회의 민주적 개혁

권력기구 분권화 없이 민주주의 회복은 불가능

지방자치 혁신 없이 참 민주주의 실현 없다

민주주의의 기반 언론: 공공성 강화하고 시민의 공론장 참여 확대해야

3. 외교·안보:

한반도와 동아시아 평화를 위한 정책적 제언

4. 시민교육

신자유주의 지배구조에서 공공적 자치구조로

② 신자유주의를 넘어서는 새로운 유초중등 교육 패러다임으로 교육복지를 실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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