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진, 사드 비용 부담 미리 알고도 뭉갰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비용과 관련한 재협상 카드를 꺼내 들면서 사드 비용을 둘러싼 법적·정치적 공방이 확산되고 있다.

허버트 맥매스터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지난달 30일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의 통화에서 “기존 합의를 지키겠다”고 했다가 하루 뒤 “사드 비용 분담을 재협상할 수 있다”고 말을 바꿔 내년 말로 예정된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협정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의도라는 관측이 나온다.

맥매스터 보좌관은 지난달 30일(현지 시간) 미국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미국이 기기 비용을 부담한다는) 기존 사드 관련 협정을 지킬 것이냐”는 질문에 “사실 내가 한국의 카운터 파트(김 실장)에게 말한 것은 ‘어떤 재협상이 있기 전까지는 그 기존 협정은 유효하며, 우리는 우리 말을 지킬 것’이라는 내용이었다”고 정정했다.

이어 “사드와 관계된 문제, 향후 우리 국방에 관계된 문제는 (앞으로) 우리의 모든 동맹국과 할 것과 마찬가지로 재협상하게 될 것이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에게 주문한 것은 모든 동맹(관계)을 둘러보고 적절한 방위비 분담과 책임 분담을 하도록 하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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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한국일보 보도에 따르면 정부 관계자는 1일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지난해 12월 미 정부 인수위 측이 문서로 우리 측에 사드 비용을 논의하자고 제안해왔다”면서 “국회 탄핵안 가결로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된 상황에서 김 실장이 이 문제를 처리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김 실장이 한민구 국방부 장관에게 ‘사드 비용 부담을 우리가 질 수도 있다’며 구두로 언질을 줬지만 그뿐이었다”면서 “사드 배치를 서둘러 끝내기 위해 전략적으로 비용 문제를 뭉개면서 덮어버린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한국일보는 “이에 따라 김 실장이 사드 비용 부담을 미국으로부터 통보 받고도 사드 배치를 서둘렀을 뿐만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의 ‘10억 달러 사드 비용 부담’ 발언 이후에도 이를 지속적으로 은폐했다는 의혹도 커지고 있다”며 “청와대는 1일 ‘맥매스터 보좌관의 언급은 한미간 기존 합의가 유효하다는 것을 재확인한 것’이라며 진화에 나섰지만 사드 비용 부담을 둘러싼 진실 공방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방위비 분담금 인상 속셈 내비친 미국

결국 맥매스터 발언에 나타난 미국 백악관의 전략은 사드 비용 문제를 지렛대 삼아 내년 말로 예정된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재협상에서 한국의 부담을 늘리는 것으로 풀이된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정부 관계자는 동아일보에 “현재 9000억 원가량인 한국 측 분담금을 올려놓으면 당초 주한미군이 부담하기로 한 사드 운영비용(연간 250억 원 추산)을 여기서 조달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동아일보는 “최근 미국은 한국은 물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소속 유럽 국가들과 일본, 사우디아라비아 등 동맹국을 상대로 방위비 증액 요구에 나선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유럽 국가들에 나토 분담금 기준인 국내총생산(GDP) 2% 조건 충족을 요구했다가 여의치 않자 먼저 북핵 이슈가 걸린 한국을 1순위로 치고 나왔다는 설명이 나온다”며 “한국의 주한미군 분담금을 증액한 뒤 이를 사례로 다른 동맹국들을 독촉할 것이란 이야기”라고 전했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도 지난달 30일 NBC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유럽의 동맹이든 한국, 일본이든 전 세계 나라(동맹과 파트너)들이 더 많은 역할을 해 주길 바란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왔다”고 말해 트럼프와 맥매스터에게 힘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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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도 “미국이 사드 문제로 한국을 압박한 의도가 사드 배치 비용을 한국에서 받아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한국이 국가안보를 전적으로 미국에 의존하고 있는 만큼 그에 합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것임을 분명히 한 셈”이라며 “맥매스터가 ‘재협상’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한국의 국방예산 증액이나 한·미 방위비분담금 협상,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등을 통해 한·미동맹 유지 비용을 다시 계산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고 분석했다.

경향신문은 “맥매스터가 이날 재협상 대상을 사드가 아닌 ‘국방에 관계된 문제’라고 밝힌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며 “사드 비용 문제는 기존 협정을 따르겠지만 향후 다른 분야에서 한국이 부담해야 할 비용을 요구할 것임을 시사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문상균 국방부 대변인은 1일 “방위비 분담금 협상은 (사드와 같은) 특정 무기 체계의 운용을 염두에 두고 하지 않는다”며 “주한미군의 방위 기여도와 한반도 안보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합리적 수준에서 책정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문재인 “미국과 어떤 이면 합의가 있었는지 밝혀야”

대선을 직전에 둔 시점에 사드 배치 비용 부담이 뜨거운 감자가 되면서 대선 후보들도 엇갈린 반응을 내놨다.

사드 배치 문제를 차기 정부로 넘길 것을 주장해온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측은 1일 “사드 배치 결정 과정에서 미국과 어떤 이면 합의가 있었는지 밝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광온 공보단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대체 무슨 이유로, 얼마나 강하게 대선 전 배치를 요구했기에 미국이 1조원이 넘는 비용을 우리에게 부담하라고 하는지 설명해야 한다”면서 “현 정부는 사드 배치를 중단하고 다음 정부로 넘겨라”고 주장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측은 사드 배치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기존 합의를 존중해야 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안 후보 측은 이날 “사드 비용을 미국이 부담한다는 정부 간 합의는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면서 “정부 간 합의를 깨고 사드 비용을 재협상하는 것은 용납될 수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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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 배치를 적극 찬성해온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는 이날 제주 유세 중 기자들과 만나 “좌파후보들이 반미감정 일으키려고 선동하는 것에 불과하다”면서 “트럼프의 말은 기본적으로 좌파정권이 들어오면 코리아 패싱(Korea passing)하겠다는 뜻”이라고 주장했다.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는 이날 “이건(사드 비용) 방위분담금 협상으로 넘어갈 문제”라며 “제가 방위비분담금 협상은 어느 후보보다 잘 할 자신 있다”고 역설했다. 사드 배치를 줄곧 반대해온 심상정 정의당 후보 측은 “정부가 밀실에서 멋대로 합의해서 야반반입하고 미국의 뜻에 끌려 다닌 끝에 돌아오는 것은 돈 내라는 고지서 뿐”이라며 “재협상을 한다면 반드시 사드 배치 철회를 주장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5년간 한미 무역수지 흑자? “FTA와 무관했다”

아울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미 FTA 폐기 가능성까지 언급하며 재협상이 가시화된 상황에서 2012년 3월 협정 발효 후 지난 5년간 우리나라의 실익은 미미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미국의 한국산 제품 수입액(총 720억 달러·2015년) 가운데 승용차(180억달러), 휴대폰(73억달러), 반도체(33억달러) 등 3개 품목이 40%에 달한다. 그런데 2015년 말까지 한국 승용차에 대한 미국 수입관세는 발효 이전과 동일한 2.5%였다. 반도체·휴대폰은 발효 이전부터 이미 무관세였다. 늘어난 흑자 폭이 과연 FTA 때문인지 의문이 제기된다는 지적이다.

이해영 한신대 교수(국제관계학)는 “대미 수출이 늘어난 건 단적으로 FTA와 무관한 자동차가 주도했다. 나머지 제조업은 손해가 더 많다”고 평가했다. 김영귀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지역무역협정팀장은 “FTA의 활용과 효과가 본격화하려면 더 기다려야 하고, 정작 미국이 관심을 보이는 무역수지 적자 문제는 재협상을 통해 해결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겨레는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요구는 ‘폐기’가 아닌 ‘협상 우위’를 점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전했다. 정인교 인하대 교수(경제학)는 “트럼프를 위시해 미국 통상당국자들의 발언은 협정을 끝내자는 것보다 이를 지렛대 삼아 한국 기업의 미국 투자를 늘리도록 압박하고, 양허 내용을 미국에 유리하게 바꾸거나 금융 등 추가 개방을 이끌어 내려는 다목적 포석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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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 전문가들은 우리 정부가 대미 무역수지 흑자를 줄이는 등 임시 대응보다 치밀한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지적한다. 우리 정부가 협정 틀을 그대로 방어하려는 태도에서 벗어나 독소조항을 전부 끄집어내 협상 테이블에 올릴 준비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최원목 이화여대 교수(법학)는 “미국은 자유무역협정의 전체 틀과 패러다임을 바꾸자는 것”이라며 “우리도 이에 맞서 개방으로 피해를 본 산업과 골목상권 보호 등 관련 독소조항을 문제로 적극 제기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송기호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국제통상위원회 위원장도 “트럼프 정부는 북미 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을 통한 단일한 모델을 만들어 이를 우리에게도 제시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미국이 전통 제조업을 살리려는 움직임에 맞서 우리가 열세인 투자·서비스 분야와 투자자국가소송제(ISD) 등을 경제민주화 관점에서 재정립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FTA 폐기’ 엄포에 수입 늘리는 한국정부

한편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올 들어 대미 수입액이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미FTA 재협상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올 초 정부가 ‘미국산 수입 확대’ 방침을 밝히면서 무역수지 흑자 폭도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

1일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4월 수출입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대미 수입액은 43억7000만 달러(약 4조9839억 원)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32.3% 늘었다. 이는 한미 FTA가 발효되기 직전인 2012년 2월(39.6%) 이후 5년2개월 만에 최대 증가 폭이다. 대미 수입을 부문별로 따져보면 반도체 제조용 장비(62%), 농수산물(39%), 항공기(25%) 등의 수입이 큰 폭으로 늘었다.

대미 수입은 지난해 11월 11.8% 늘어난 이후 6개월 연속 두 자릿수 증가율을 유지하고 있다.한국 정부는 트럼프가 문제를 제기하는 미국의 대한(對韓) 무역수지 적자(2016년 기준 232억6000만 달러)를 줄이기 위해 올 초 미국산 셰일가스, 석탄, 항공기 등의 수입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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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는 “민간의 수출입을 정부가 통제할 수는 없지만 에너지 등에서 되도록 대미 수입을 독려한다는 것”이라며 “그 결과 올 1∼4월 대미 무역수지 흑자는 60억4000만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91억4000만 달러)보다 33.9% 줄었다”고 밝혔다.

서울신문은 “한·미 FTA 재협상 현실화와 중국의 사드 보복에 따른 통상환경 불확실성도 남아 있다”며 “우리나라 수출은 미국과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40%에 육박해 G2 시장이 흔들리면 수출뿐 아니라 나라 경제까지 악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에 대해 산업부 관계자는 “미국의 무역적자 실태 조사 발표나 FTA 재협상 개시만으로 수출이 감소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인도와 아세안, 중동 등 신흥시장으로 수출 다변화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치겠다”고 말했다.

바른정당 의원 14명 “홍준표 지지” 집단 탈당 결의

바른정당 의원 14명이 1일 밤 국회 의원회관에서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를 만나 사실상 지지 의사를 밝혔다. 이들은 2일 오전 모임을 가진 뒤 입장을 공식적으로 결정하고 ‘탈당 후 한국당 복당’을 선언할 것으로 알려졌다.

바른정당 김재경 의원 등 14명은 이날 밤 9시 50분쯤 국회 의원회관에서 홍 후보와 전격 회동했다. 이날 회동에는 김 의원을 비롯해 권성동·김성태·김학용·박성중·박순자·여상규·이군현·이진복·장제원·정운천·홍문표·홍일표·황영철 의원 등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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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는 “이들은 이 자리에서 ‘대선이 7일 남은 시점에서 좌파 패권 세력의 집권을 막기 위해 홍 후보를 중심으로 보수 대통합을 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고 전했다. 양측 관계자들은 “홍 후보는 ‘여러분이 도와줘야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지지를 요청했고, 바른정당 의원들은 ‘보수 혁신을 약속해달라’고 요청했다”며 “사실상 양측이 통합의 명분을 주고받은 것”이라고 했다. 홍 후보는 이날 회동 뒤 “이 분들이 이루고자 했던 보수 대혁신을 같이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바른정당 관계자는 조선일보에 “14명 외에 추가로 의원 1명이 탈당에 동참할 가능성이 있고, 두어 명은 빠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바른정당의 김무성·정병국·주호영 공동선대위원장은 이날 저녁 유승민 대선 후보를 만나 홍 후보와의 여론조사를 통한 단일화를 제안했으나, 유 후보는 이를 거듭 거부했다.

조선일보는 “바른정당 의원 14명과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의 1일 밤 만남은 바른정당 의원들이 홍 후보에게 유 후보와의 단일화를 제안하는 형식이었지만, 내용적으로는 단일화를 거부해온 유 후보를 압박하고, 탈당의 명분을 쌓는 측면도 있었다”며 “홍준표 후보와의 면담을 주도한 사람들은 한국당행에 무게를 뒀거나 홍 후보 지지를 주장했던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조선일보는 “여기에는 김성태·김학용·박성중 등 이른바 김무성 의원의 측근 그룹도 상당수 포함됐다. 크게 봐서 김무성계와 유승민계로 구성된 바른정당에서 한 축이 사실상 무너진 것”이라며 “14명 전원이 탈당할 경우 바른정당은 의석 수가 18석으로 줄면서 국회 원내교섭단체 자격도 잃게 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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