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9일에 치러질 19대 대선에 출마한 5당 후보들이 가장 치열하게 맞선 주제는 ‘안보’였다. 북한의 핵실험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을 비롯해서 ‘주적 논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소재들을 놓고 후보들은 마치 사생결단이라도 하려는 듯이 ‘말의 전쟁’을 벌였다.

지난 3월1일부터 두 달 동안 미군 1만여명과 한국군 30만명 가까이가 대규모 연합훈련인 ‘독수리훈련’을 벌이는 가운데 북한이 미사일을 공중과 바다로 쏘는 실험을 거듭하니 국민들은 ‘이러다 전쟁이라도 나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다.

한반도에서 핵전쟁이 아니라 재래식 전쟁이 터지더라도 남과 북은 1950년대의 한국전쟁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막대한 피해를 겪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난 60여년 동안 남과 북이 엄청난 살상력을 지닌 무기들을 경쟁적으로 개발하거나 도입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군사동맹조약에 따라 미국과 중국이 전쟁에 개입하면 곧바로 제3차 세계대전의 양상을 띨 수도 있다.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그래서 대선이 8일밖에 남지 않은 지금 유권자들은 물론이고 투표권이 없는 미성년자들도 참혹한 동족상잔을 어떻게 해서라도 막아 줄 인물이 대통령이 되기를 바랄 것이다.

▲ 문재인(왼쪽부터)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 유승민 바른정당 대선 후보,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가 4월28일 오후 서울 상암동 MBC 스튜디오에서 중앙선관위 주최로 열린 19대 대선 후보 초청 TV토론회에 앞서 투표참여 독려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 문재인(왼쪽부터)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 유승민 바른정당 대선 후보,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가 4월28일 오후 서울 상암동 MBC 스튜디오에서 중앙선관위 주최로 열린 19대 대선 후보 초청 TV토론회에 앞서 투표참여 독려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지난 4월25일까지 네 번에 걸쳐서 진행된 ‘5당 대선후보 초청 토론회’에서 벌어진 ‘안보 논쟁’은 토론의 범위가 너무나 협소하고 단선적이었다. 후보 5명 가운데 2명은 북한을 ‘주적’이라고 단정함으로써 평화적으로 공존할 수 없는 존재로 보았고, 1명은 ‘주적’이기는 하지만 평화통일의 상대라는 단서를 달았다. 문제는 북한을 ‘적’으로 몰아붙인다고 해서 한반도에 평화가 저절로 찾아오지 않는다는 데 있다. ‘주적’은 전쟁을 통해 제압해야 할 대상이기 때문이다.

이명박과 박근혜는 대통령 재임 시기에 북한을 ‘주적’이라고 단언하지 않았는데도 남북관계를 전두환·노태우 정권 때보다 훨씬 극악한 상태에 빠뜨려버렸다. 정치·외교·경제·사회·문화·민간 등 거의 모든 부문에서 교류와 협력은 단절되다시피 했다. 그런데 이제 새삼스럽게 북한을 ‘주적’으로 규정한다고 해서 9년 동안 쌓인 ‘안보 불안’이 해결될 수 있을까? 예측 불가능한 행보를 하는 미국 대통령 트럼프조차 북한과 대화하겠다는 여지를 두고 있는 터인데 말이다.

이번 대선에서 당선되는 후보는 파괴적인 ‘안보 논쟁’을 훌훌 털어버리고 대한민국헌법 전문(前文)을 충실히 지키기만 해도 ‘안보대통령’이 되는 첫 단계를 넘어설 수 있을 것이다.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한다는 구절이 바로 그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6자회담을 비롯한 모든 대화 통로를 이용해 북한이 핵실험 중단이나 핵개발 포기를 국제적으로 약속하도록 하고 거기 상응하는 ‘평화적 대가’를 받을 수 있게 해야 할 것이다. 우선 개성공단 문을 다시 열고 금광산관광을 재개하기만 하더라도 차갑게 얼어붙은 남북관계에 자연스럽게 온기가 돌게 되지 않겠는가?

▲ 2007년 대선 경선 당시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와 이명박 전 시장이 대전,충남 합동연설회에서 웃음을 보이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 2007년 대선 경선 당시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와 이명박 전 시장이 대전,충남 합동연설회에서 웃음을 보이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나는 ‘안보(security)’라는 용어를 북한만을 상대로 쓰는 것은 너무 편협한 태도라고 믿는다. ‘안보’에는 군대와 무기에 기대는 수단과 방법뿐 아니라 일상행활에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안전(safety’)의 개념까지 포함되어야 한다. 지난 2014년 4월16일에 일어난 세월호 참사 직후, 당시 대통령 박근혜와 그의 하수인들이 드러낸 ‘안전 불감증’과 생명 경시 작태는 국민의 ‘안전’을 심각한 위기로 몰아넣었다. 이명박 정권이 수십조원의 국가예산을 쏟아부어 강행한 ‘4대강 사업’이라는 것도 국토와 환경을 파괴하는 재앙을 일으킴으로써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게다가 이명박·박근혜 정권 9년 남짓 동안, 청산하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커진 적폐는 그 자체가 한국사회를 부정과 비리의 산더미로 만들어버렸다. 이명박 정권 시기에 방위산업과 자원외교 부문에서 저질러진 부정과 비리는 ‘국정 안보’ 차원에서 앞으로 들어설 정부가 엄격히 수사해야 마땅하다. 명백한 책임이 드러나면 이명박을 구속해야 할 것이다. 23차에 걸쳐 연인원 1700만여명이 참여한 ‘촛불집회’는 그런 적폐 청산의 길을 활짝 열어주었다.

이번 대선에서 당선이 확정되면 즉시 직무를 수행해야 하는 19대 대통령은 협의의 ‘국방 안보’뿐 아니라 광의의 ‘국민 안보’를 실현하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본다. ‘헬조선’에서 신음하며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을 잃어버린 젊은 세대에게 보람있게 전념할 수 있는 일자리를 만들어주고 이웃이나 벗을 밟고 넘어야 ‘출세’를 하고 안락한 삶을 누릴 수 있는 비인간적 교육 현실과 풍토를 쇄신해야 한다. 이것은 단기간에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대통령과 모든 공직자들, 사회의 지도층 인사들, 그리고 학부모들이 한 마음으로 꾸준히 밀고 나가야 성취할 수 있는 과업이다. 그런 역사적 업적을 남긴 뒤에야 그는 진정한 ‘안보대통령’이라는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 이 글은 ‘뉴스타파’에도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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