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도입과 운항, 그리고 침몰 이후 과정에서 국정원의 부적절한 개입은 세월호 참사에 있어서 대표적인 진상규명 과제다. 그러나 항만청이나 항만공사, 해경 등 다른 정부기관들과 달리 국정원은 수사대상에서 제외되었을 뿐 아니라, 수사 당국에 의해 슬그머니 지워졌다.

<미디어오늘> 취재 결과 청해진해운과 국정원의 사고 당일 통화내역은 수사당국에 의해 위조된 것으로 드러났다. 광주지검 목포지청에서 작성된 ‘수사보고서(청해진해운 임직원 사고당일 통화내역)’를 보면 청해진해운 김○○ 기획관리부장이 9시 33분과 9시 38분에 보낸 문자메시지의 수신인이 하○○(국제여객터미널)로 돼 있다. 그러나 하○○ 씨는 국정원 직원으로, 청해진해운 기획관리부장의 휴대전화 포렌식 주소록에도 국정원 하씨의 번호가 ‘하○○’ ‘하○○(국정원)’으로 돼 있다. 또한 9시 38분 문자 발송 이후 국정원 직원 하씨와 이뤄진 2분여의 통화는 수사보고서에서 아예 삭제됐다.

▲ 광주지검 목포지청 수사보고서(청해진해운 임직원 사고당일 통화내역). 국정원이 국제여객터미널로 슬그머니 바뀌어 있다.
▲ 광주지검 목포지청 수사보고서(청해진해운 임직원 사고당일 통화내역). 국정원이 국제여객터미널로 슬그머니 바뀌어 있다.

통화내역과 관련한 수사보고서에서 괄호 안의 표기는 ‘소속’을 나타낸다. ‘하○○(국제여객터미널)’라고 하면, 수사보고서를 읽는 사람은 국정원 직원이 아니라 국제여객터미널 직원으로 인식하게 된다. 혹시 통화상의 기지국 위치 때문에 착각했을 가능성은 없을까? 당시 하씨가 문자와 통화를 주고받은 기지국의 위치는 국제여객터미널이 위치한 인천 중구 항동이 아니라 인천 남구 주안3동이다. 수사당국이 착오로 인해 국정원을 국제여객터미널로 바꿨놨을 가능성은 없는 것이다.

당시 수사보고서 작성을 담당했던 검찰 수사관은 이에 대해 “기억이 안 난다”고 했다. 청해진해운 기획관리부장의 휴대폰 포렌식 작업은 서해지방해양경찰청에서 담당했다. 다시 말해, 해경이나 검찰 가운데 한 곳에서 ‘국정원’을 슬그머니 ‘국제여객터미널’로 바꿔놓은 것이다. 검찰이 취합한 통화내역 자료들에서도 국정원 하씨는 모두 ‘미상’으로 처리됐다.

청해진해운 기획관리부장은 지난해 3월 특조위에 출석해 “저는 휴대폰에 ‘하○○(국제여객터미널)’로 저장을 한 바 없다. 또한 제가 조사 과정에서 직접 국제여객터미널로 기재하여 제출한 바 없다”고 말했다.

김씨는 ‘그렇다면 검찰에서 이를 편집하였을 가능성이 있는가요?’라는 질문에 “그렇게 추정은 해볼 수 있을 것 같다”며 “제가 굳이 하○○씨를 국제여객터미널 소속으로 바꿔서 제출할 이유가 없다”고도 했다.

청해진해운과 국정원의 뿌리깊은 관계,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의 대상

청해진해운과 국정원의 관계는 뿌리가 깊다. 세월호 도입 이전인 2010년부터 청해진해운의 내부문서엔 국정원이 등장한다. 국정원의 또다른 이름인 ‘세기문화사’의 백령도 안보관광에도 청해진해운 선박이 이용됐는데, 청해진해운 측이 국정원의 안보관광 담당자들을 접대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접대비 항목엔 ‘안기부’라는 명칭도 보인다. 이 문서는 2012년에 작성된 것이지만, 청해진해운이 회사 내에 국정원 업무 담당자를 둘 정도인 것을 보면 ‘국정원’과 ‘안기부’라는 명칭을 혼동했을 가능성은 낮다. 오히려 청해진해운의 전신인 세모그룹 시절부터 안기부와 상호교류가 있었고, ‘안기부 접대’는 전직 안기부 직원들에 대한 ‘접대’였을 가능성이 있다. 옛 안전기획부가 국가정보원으로 명칭을 바꾼 것은 1999년 1월이다.

세월호 참사 국면에서 처음으로 국정원 문제가 불거진 건 사건 한달 후인 2014년 5월15일에 드러난 해양사고보고계통도였다. 국내의 어떤 민간회사도 국정원을 보고 체계에 두지 않는다는 게 의문의 시작이었다.

이후 밝혀진 바에 의하면, 국정원은 세월호 뿐만 아니라 청해진해운의 다른 배들에도 관여한 것으로 보인다.

오하마나호의 해양사고보고계통도가 국정원을 1차 보고대상으로 하고 있음이 <고발뉴스>에 의해 드러난 바 있고, 미디어오늘은 청해진해운 하드디스크를 분석해 오하마나호 뿐 아니라 데모크라시5호의 해양사고보고계통도에도 국정원이 명시된 문서가 존재하는 것을 확인했다. 그런데 이 문서를 ‘수정한 날짜’는 2012년 1월25일로 세월호 출항보다 1년여나 앞서 있다. 데모크라시5호는 396t급으로 국가보호장비인 2000t급 이상의 선박 보다 훨씬 작다. 이는 세월호와 관련해 국가보호장비 지정을 위해 관여했을 뿐이라는 국정원의 해명과도 거리가 멀다.

국정원은 세월호의 해양사고보고계통도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다”며 “선박 테러·피랍사건에 대비하여” 청해진해운이 자의적으로 포함시켰을 것이라고 부인해왔다. 그러나 이 해양사고보고계통도는 국정원을 포함한 관계기관과의 문서수발신 과정에서 완성됐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해양사고보고계통도가 포함되는, 관계기관에 제출하는 문서 종류는 2가지다. 첫번째는 국정원이 주관하는 세월호보안측정자료이며, 두번째가 계속 논란이 됐던 운항관리규정이다. 운항관리규정의 경우엔 인천해양경찰서가 주로 심사를 맡았지만 보안측정자료의 경우엔 당시 국토해양부의 요청에 의해 국정원이 주관했다. 요컨대 운항관리규정상의 해양사고보고계통도를 국정원이 자신들은 몰랐다고 주장하는 것과 달리, 국정원이 심사를 주관한 보안측정자료의 해양사고보고계통도에도 국정원이 버젓이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국정원이 등장한 시점이 미묘하다. 청해진해운의 하드디스크에서 발견된 2014년 2월 14일자로 작성된 세월호보안측정자료 초안을 보면, 해양사고시 연락기관에 국정원을 명시한 내용은 없다. 이 초안에는 해양사고보고계통도 대신 내용은 거의 유사한 ‘비상상황 연락기관’이라는 문서가 포함돼 있다. 그러나 2월 22일자로 수정된 보안측정자료에서는 비상상황 연락기관이라는 제목이 해양사고보고계통도로 바뀌었고, 국정원 인천지부와 제주지부가 포함된다. 이때 국정원이 요청했던 경비초소 설치와 순찰을 명시한 내용도, 위성사진과 함께 보안측정자료의 내용에 포함됐다. 

▲ 2013년 2월21일 면담에 대한 청해진해운의 업무보고 문서(왼쪽)와 22일 수정작성된 보안측정자료에 포함된 경비초소 위성사진(오른쪽 위), 해양사고보고계통도(오른쪽 아래)
▲ 2013년 2월21일 면담에 대한 청해진해운의 업무보고 문서(왼쪽)와 22일 수정작성된 보안측정자료에 포함된 경비초소 위성사진(오른쪽 위), 해양사고보고계통도(오른쪽 아래)
왜 국정원이 포함된 것일까? 하루 전인 2월21일 기획관리부장 김 씨와 여객영업팀 조○○ 부장이 국정원에 다녀왔다는 게 청해진해운 공식문서에 나타난다. 조 씨의 업무보고를 보면 “어제(2월 21일) 국제터미널 국정원 사무실에 김○○부장과 다녀왔습니다. 보안측정상 필요한 사항은 아래와 같습니다”라며 다음과 같은 내용을 보고했다.

국정원 사무실(인천항국제여객터미널에 위치)은 청해진해운의 사무실과 지근거리에 있었고 국정원은 인천,제주간 카페리 부두가 국정원과 사무실과 인접하여 보안상 여러가지 요구를 한 것으로 보인다. 보안측정자료상의 해양사고보고계통도에 국정원이 포함된 것도 2월21일의 ‘면담’ 직후다.

대관업무를 하는 해무팀의 홍○○ 대리는 세월호 2차 청문회에 출석해 “보안점검을 받고 나서 운항관리규정 초안을 총무쪽과 저희(해무팀)쪽이 같이 상의해서 만들었다”며 “2월 19일경 초안이 나갈 때는 없었는데 최종안이 나갈 때 그게(국정원이) 있었다”고 증언했다.

거짓으로 드러나는 국정원의 해명

국정원은 사건 초기에 4월16일 당일 9시44분에 방송뉴스를 보고 사고를 처음 인지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미 9시 38분에 국정원 직원 하씨가 직접 청해진해운 직원에게 전화를 걸어 2분간 통화했고, 이 국정원 직원은 최초 통화를 포함해 이틀간 총 7차례 청해진해운 측에 전화를 걸었다. 또한 청해진해운 기획관리부장으로부터 9시41분 인천 운항관리실의 선박모니터링시스템(VMS) 화면을 찍은 사진을 전송받기도 했다.

2014년 7월 세월호에서 건져올린 노트북에서 ‘국정원 지적사항’ 문건이 나왔을 때, 국정원은 이 문건 내용 중 4개항목(15~18)만 자신들이 “필요사항으로 언급한 바 있다”고 해명했었다. 즉 △15번~16번항인 ‘CCTV 추가 신설 수리신청(브릿지 LIFERAFT 2곳·트윈테크 2곳) △17번항인 객실내 일본어 표기 아크릴판 제거작업 그리고 △18번항인 탈출방향 화살표 제작 및 부착 등 4개항이 “보안 및 대 테러상 개선 필요사항”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디어오늘이 청해진해운 내부 공문서들을 검토한 결과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국정원 지적사항’ 문건 중 국정원이 주관한 보안측정에서 지적된 항목만 해도 16개항이었다. 국정원은 청해진해운 임원이 “괘씸죄가 이런 것인가?”라고 수첩에 기록할 만큼 까다로운 보안측정을 실시했다. 

<미디어오늘>이 입수한 청해진해운의 하드디스크엔 보안측정과 관련된 여러 문서가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인 ‘3.18지적’이라는 문서에만도 국정원이 요구한 개선사항은 20가지에 달했다. 항목별로 보면 △주차장 입구 경비초소내 CCTV 설치(사무실에서 확인용) △전시장, 옥상광장등에도 CCTV추가 △갑판,기관,사주부 모두 시간대별 각 담당구역 순찰 및 일지 작성 △선박내, 브릿지, 기관실등 출입시 명부 작성후 각 부서장 확인서명△EXIT등 영어나 일어로만 써있는 푯말 한글이나 병행표기 △탑승 에스카레이타 출입문 내측 도장 안됨 등 그 내용도 세밀했다.

국정원과 청해진해운의 미묘한 관계는 인천-제주를 자주 왕복하는 화물기사들 사이에서도 익히 알려진 일이었다. 세월호의 승객 20여명을 구했던 화물차 기사 김동수 씨는 특조위에 출석해 “세월호가 처음 와서 바로 출항을 안 해서 화물기사들 사이에서는 국정원에서 그 배의 쓰레기통, 전등, 페이트칠까지 모든 것을 관리하고 있어서 늦게 출항하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고 증언했다.

국정원은 세월호 도입의 전후 과정에 긴밀하게 개입했고, 운항과정에서도 관여했다. 청해진해운 관계자들은 국정원 직원들이 침몰사고 한달 전쯤 세월호에 승선해 통상 이용하던 ‘특실’이 아닌 선원실에 머무른 적이 있으며, 이 때문에 고 양대홍 사무장이 다른 선원들에게 불만을 토로했던 사실을 전하기도 했다.

<미디어오늘>은 청해진해운의 여러 내부보고 및 결재서류를 입수해, “국정원 정기모임 참석” 등 청해진해운과 국정원이 세월호 참사 이전 3년간 최소 열두차례 이상의 모임을 가졌고 국정원 직원들에 대한 접대가 있었음을 보도한 바 있다.

지난해 9월 <한겨레21>은 언딘 특혜 의혹 사건 검찰수사기록을 입수해 국정원이 세월호 침몰 직후인 4월 17일부터 해양수산부 한국해양과학기술원, 그리고 현대보령호 소유주인 오션씨엔아이와 접촉해 바지선 동원에 개입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국정원은 직무와 무관하게 세월호 침몰사고 처리과정의 막후에서도 움직인 것이다.

세월호의 도입-인가와 운항에 대한 관리감독 그리고 침몰 이후 구조구난에 관여한 정부기관들이 조사 대상에 올랐지만 국정원은 이 모든 과정에 깊숙이 관여하고도 단 몇 줄의 해명을 내놓는 것으로 끝이났다. 또한 국정원의 해명 대부분은 시간이 지나면서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 연재순서

① 해경, 50명 객실 구조하자는 제안 뭉갰다-해경 구조의 문제 1

 승객 대기명령 전달한 ’제3의 휴대폰’ 있었다-빗나간 검찰 수사

③ 초계기 교신록 입수 “1번님 오시니 임무에 집착 말라”-해경 구조의 문제 2

④ 로비 승객 30여명, 해경은 봤지만 안구했다-해경 구조의 문제 3

해저 ‘소나’에 철근 고스란히… 선원들 “선수 철근 위험”-제주해군기지용 철근

⑥ 청해진해운-국정원 통화내역 수사과정에서 조작됐다-국정원 개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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