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9월' vs '2016년 8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정유라를 알고 승마훈련을 지원했다'는 특검 측 주장에 철저한 방어논리를 쌓고 있다. 정유라 인지 시점이 뇌물죄 여부를 가름하는 중요한 기준이기 때문이다. 특검은 '2014년 9월' 이 부회장이 정씨를 파악했음을 입증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특검팀 김영철 검사는 27일 오전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김진동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삼성그룹 뇌물공여 국정농단 사건' 제8회 공판에서 "삼성은 2014년 9월 대통령이 '1차 독대' 시 승마협회를 인수하고 지원하라고 한 게 정유라 때문임을 알았다"며 그 증거로 박상진 삼성전자 사장 휴대전화에서 압수한 문자메시지 내역 등을 공개했다.

▲ 최순실씨 측에 433억 원대 뇌물을 건네거나 약속한 혐의로 구속 기소 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공판에 출석하기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을 향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 최순실씨 측에 433억 원대 뇌물을 건네거나 약속한 혐의로 구속 기소 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공판에 출석하기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을 향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정유라 인지시점은 '정유라 1인 승마 지원'에 대한 78억 원대 뇌물 공여 혐의의 전제다. 특검은 삼성의 승마 분야 지원이 본격화된 1·2차 독대 때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이 부회장에게 '정유라 지원'을 요구했다고 특정한다. '총수 일가 경영권 승계 현안'을 가진 삼성이 이를 수용하면서 대가관계 합의가 이뤄졌다는 논리다.

특검은 퍼즐 조각 맞추듯 '정황 근거'를 최대한 끌어모으고 있다. 전 대통령 박근혜씨, 최순실씨, 이재용 부회장 및 뇌물공여 혐의 피고 4인 등 관련 당사자들은 특검 주장을 부인하거나 함구하고 있다.

2015년 7월25일 2차 독대를 전후로 삼성그룹 내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간 것이 첫번째 근거다. 정씨 승마지원 업무를 책임진 박상진 사장은 제주도 출장을 간 7월22일 최지성 미래전략실 실장의 긴급 호출을 받고 그날 밤 급히 상경했다. 23일 이 부회장과의 긴급회의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박 사장은 23일 오전 8시 김종찬 승마협회 전무를 만나 상황 설명을 들은 뒤 10시 이 부회장, 최 전 실장 등과 승마지원 관련 회의를 열었다. 박 사장은 회의 직후 정씨를 돌보던 박원오 전 승마협회 전무 연락처를 구한다. 박 사장은 24일 박 전 전무를 만나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방문 일정을 짠다.

이 부회장이 대통령을 독대한 25일 오후 4시30분 경, 박 사장은 다시 제주도에서 올라와 이 부회장, 최 전 실장, 장충기 전 사장 등과 회의를 열었다. 이후 박 사장은 24일 정한 독일 출국 일정을 27일로 급하게 앞당겼다. 박 사장은 26일엔 박 전 전무와 독일 방문 일정을 정하고 27일 오전 10시 이 부회장 등과 긴급회의를 다시 가진 뒤 오후 1시 출국했다.

특검팀은 독대 전후로 삼성그룹 수뇌부의 긴급 회의가 연달아 열리거나 독일 방문 일정이 급박하게 논의되는 상황이 '정유라 지원' 문제 없이 제대로 이해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김영철 검사는 "2014년 9월 정유라 지원 지시를 받았는데, 2015년 7월25일 독대 일정이 잡히니 이전 대통령 지시 상황 이행을 확인하기 위해 7월23일 만났을 것"이라며 "7월25일 예기치 않게 대통령으로부터 굉장한 질책을 받다보니 급박하게 돌아갔다. 간접 증거로밖에 입증 못해 어쩔 수 없지만, 급박하게 안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었을 것"이라 말했다.

김 검사는 박 사장의 독일 방문에 대해 "25일 이 부회장을 만나고 나서 갑자기 없었던 계획인 독일 프랑크푸르트 행을 예약한다"면서 "전혀 (박 전 전무를 만날) 사정 변경이 없는데 삼성전자 사장 위치의 사람이 왜 독일을 직접 가느냐. 태도의 급변은 다른 게 있었다는 뜻"이라고 지적했다. 2차 독대시 대통령의 '정유라 승마 지원' 언급이 있었다는 뜻이다.

삼성전자는 2차 독대가 있은 지 한 달 후인 8월26일 최씨 소유회사 코어스포츠와 213억 원 대 용역계약을 맺는다. 이후 삼성전자는 코어스포츠에 78억 여 원을 지급했다.

2015년 6월 "정유라 출산 후에 더 적극적으로 후원하겠다"

삼성그룹 임원들 진술의 신빙성 문제도 있다. 박 사장은 독일에서 박원오씨를 만나 최순실의 영향력 이야기를 들은 7월29일 경에서야 최씨 및 정씨의 존재를 파악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 사장은 2차 독대 하루 뒤인 7월26일 '정유연(정유라 개명 이름)'과 '컨설팅 업체'를 직접 언급했다. 그는 이영국 제일기획 상무에게 '(박원오 전 전무에게) 독일 체류하는 곳으로 찾아간다 하고 마장마술 시설, 정유연 훈련하는 것도 보고 컨설팅 업체를 만나는 일정 만들어달라고 하세요'라고 전달할 것을 요구했다. 박 사장은 정유연의 소식과 컨설팅업체 사항을 25일 김종찬 전무를 만나 들었다고 밝혔으나 김 전무는 특검에 '당시 컨설팅업체는 알지도 못했다'고 진술했다.

박원오 전무는 박 사장이 2015년 4~5월 경 정씨의 임신 사실을 물어본 적 있다고 진술했다. 박 사장은 "그런 적 없다"고 특검조사에서 밝혔다.

김종 전 문체부 2차관은 2015년 6월 만난 박 사장이 자신에게 '정유라가 2015년 5월 경에 아들을 출산해 몸조리하고 있는데, 몸이 완성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말했다고 진술했다. 박 사장은 이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정유라는 2014년 12월에도 삼성그룹 임원 대화에 등장했다. 당시 대한승마협회 부회장였던 이영국 상무는 승마협회의 '승마인의 밤' 행사 후 장충기 전 사장에게 '막 종료됐다. 식순에 따라 우수상 공로패 등 시상 후 식사하고 마무리됐다. 미디어는 왔고, 협회 측은 별도로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다. 정윤회 딸 취재 의도는 있었던 거 같으나 정유연에게 사전 불참 조치했다'는 문자를 보냈다.

장 전 사장 휴대전화에서 복구된 문자메시지 중에는 "‘실세 의혹’ 정윤회와 최순실, 이들의 딸과 말의 비밀(한겨레)" 등 기사 세 꼭지 제목과 링크가 기재된 것이 발견됐다. 2015년 1월17일자 기사다. 장 전 사장이 15년 1월 정씨의 존재를 파악했을 가능성이 있는 정황이다.

삼성 측 변호인단은 "추측만 있지 증거가 없다"고 반박했다. 삼성 측 피고인들은 공판이 시작될 때부터 2016년 2월 마지막 독대 이전엔 대통령에게서 정유라 지원 언급을 들은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변호인단은 이 부회장은 2016년 8월이 돼서야 최 전 실장의 보고로 최씨와 정씨를 알게됐고 나머지 피고인 4인은 2015년 7월 말, 8월 초 경 알게됐다고 말했다.

김영철 검사는 "당사자들이 서로 똑같이 얘기하게 되면 간접 증거를 통해서만 입증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삼성 측 피고인들의 말 맞추기 가능성을 겨냥한 말이다.

삼성, 정유라 BMW·호텔비에 대금 사용 두고 보고 있어

삼성전자는 213억 여 원이라는 거액의 용역계약 체결을 외국 주재 회사와 맺으면서도 기본적인 검증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

2015년 8월26일 코어스포츠와 삼성전자가 맺은 컨설팅 용역 계약서는 총 11장이고 그 중 실제 본문은 6장으로 구성돼있다. 조상원 검사는 "213억 원 체결하면서 본문 6장 짜리로 구성된 계약서를 봤다"며 "삼성에서 1억 원 투자 받으려해도 30장 이상 계약서를 제출하고 검사도 꼼꼼히 한다고 하는데, 213억 원을 하면서 왜 부실하게 했는지 이해가 안간다"고 말했다.

코어스포츠는 운영비로 지출된 영수증 자료를 첨부한 회계 보고서를 매달 말 삼성전자 측에 제공하지 않았다. 이는 계약 조건에 명시된 의무규정이었다. '티구안', '멀티밴', 'BMW' 등 비용을 합치면 19만 7천유로 정도, 한화로 2억 5천만 원 가량에 달했다. 사적인 항공료, 교통비, 호텔비 등도 용액대금 지출 항목으로 책정됐다. 노승일 당시 코어스포츠 직원이 작성한 2016년 1분기 결산보고서 내용이다.

코어스포츠는 계약 체결 당시 공동대표였던 쿠이퍼스 헤센주 승마협회장에게 '회사 전 업무에 대한 결재권·결정권은 없다. 이에 따른 책임도 없다'고 규정했다. 쿠이퍼스 협회장은 이를 알고 3일 후 대표자리를 사임했다.

삼성전자는 코어스포츠가 스포츠컨설팅 회사로서 실체가 모호한 '최씨 1인 회사'라는 사실을 모르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2015년 10월26일 박원오 전 전무가 황성수 전무에게 보낸 메일 첨부 자료엔 '승마 선수들에 대한 모든 지원 비용은 여사께서 직접 관리하고 있다'는 구절이 적혀 있다. 여사는 최씨를 의미한다.

특검이 주장하는 대통령과 이 부회장 간 독대는 2014년 9월15일, 2015년 7월25일, 2016년 2월15일 등 세 차례 있었다. 특검은 첫 번째 독대부터 '정유라 승마 지원'요구가 있었다고 파악하고 있다.

삼성 변호인단은 2016년 2월 전엔 대통령 독대 시 정유라 언급이 없었다고 주장한다. 이재용 부회장을 제외한 나머지 피고인은 최순실씨의 존재를 2015년 7월 말이 돼서야 알게 됐다는 입장이다. 그 전부터 '정유연'을 언급한 바 있는 장충기 전 사장과 박상진 사장은 '승마선수', '정윤회의 딸' 정도로 알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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