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제도가 부활한 지 25년이나 지나갔지만 안타깝게도 본질적인 문제들은 여전히 크게 변한 게 없다. 감사원 자료와 모 신문이 지방자치25주년을 맞아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자치단체의 재정자립도는 1995년 63.5%에서 50.3%로 하락했고 ‘지방행정개혁’ ‘민주적인 지방행정 성취’ 정도에 대한 일반 주민의 평가는 47점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비리혐의 기소된 지방자치단체장도 민선 1기에는 23명(9%)이던 것이 민선 4기에는 119명(48.4%)으로 크게 늘어났다.

지방자치, 무엇이 문제인가?

현재의 지방자치 인물등용제도인 정당공천제는 겉으로는 책임정치를 내세우고 있지만 지방자치의 혁신과 변화를 가로막는 정당공천제라는 중앙공급식 인재채용방식을 근본적으로 혁파하지 않고서는 진정한 의미의 지방자치는 기대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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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자치단체장의 권한은 생각보다 막강한 반면 이를 감시 견제하는 장치가 부족하고 지방의회를 특정 정당이 독식하거나 대다수를 차지하는 일당 독과점 구조는 통제장치 결핍으로 인해 지방자치단체장의 독선을 제어할 장치가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

결국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방임구조 하에서 제어장치의 부재는 가뜩이나 열악한 지방의 예산, 환경, 자원, 가치 내지는 주민의 희망까지도 ‘공유지의 비극(tragedy of the commons)’에 희생되는 제물로 만들게 된다. 심지어 지역의 일부 시민운동과 언론마저 지방권력과 결탁하는 ‘신(新) 철의 삼각관계(Neo-Iron triangle)’가 고착화되면 지방자치는 부패의 먹이사슬이라는 우리에 갇히게 된다.

지방자치단체의 방만한 경영도 문제지만 아무리 알뜰하게 살림을 해도 지방재정의 열악성은 구조적으로 해결이 되지 않고 있다. 지방으로 내려오는 정부예산은 이에 따른 지방비 부담비율 때문에 오히려 지방재정을 악화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지방세 비중이 독일 49.5%, 일본 46.3%, 미국 48.1%인데 반해서 우리나라는 조세 대비 지방세 비중이 21% 수준으로 대부분의 세금이 중앙정부에 귀속되고 있어 정부의 재정독점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튼튼한 지방자치로 가는 길

그동안 지방자치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많은 노력이 있었지만 근본적인 틀을 바꾸지는 못했다. 지방자치가 르네상스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권한 집중과 독점이 가능한 구조를 깨고 주민참여 강화를 통한 제어장치의 확립, 중앙정부가 가진 재정독점과 권한 편중을 지방에 제대로 이양하는 실질적 분권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직선거법, 지방자치법, 지방재정법 등 주민의 통제권과 자치와 재정기능을 강화하는 근본적인 개혁이 필수적이다.

첫째, 중앙이 좌지우지하는 현재의 지방자치 구조에서는 정당에게 그 권한에 상응하는 막중한 책임을 부과하는 조치가 불가피하다. 공천제라는 제도는 정당이 후보자의 자격 요건을 자체 검증 과정을 거쳐 유권자인 국민 앞에 공적으로 보증하고 그 정치적 품질에 대해 책임을 진다는 의미로 국민과 정당 사이에 이루어지는 정치적·사회적 계약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선거 후 재선거 등에 해당하는 귀책사유를 발생시킨 후보와 정당은 유권자인 국민 앞에 계약불이행에 따른 법적·정치적 책임을 부과하는 정치적 징벌적배상제의 도입이 자치혁신의 첫 관문이다.

둘째, 중앙이 독점한 재정구조 혁파와 튼튼한 자치재정 및 공유자산의 구축 입법, 제도화가 필요하다. 취약하고 중앙에 예속된 재정구조는 자치를 중앙정치에 흔들리게 만드는 원인이다.

셋째, 중앙공급식 붕어빵 자치에서 지역선택형 맞춤형 자치로 전환이 필요하다. 지방의회 의원수 축소 및 기능강화, 광역의회 구성방식 전환 등 기존의 틀을 벗어나는 실질적인 지역 맞춤형, 선택형 자치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넷째, 제도적, 형식적 자치에서 탈피하여 주민중심의 실질적 자치가 꽃피도록 공동체 강화, 공유자산의 확충, 생활자치의 실천을 통한 낮고 작은 것으로부터의 축적과 확산이 필요하다.

다섯째, 지방자치단체장의 권한 오남용을 제어할 주민통제권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 주요 정책결정 과정에서 주민참여, 심사, 통제가 실효적으로 확보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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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지방 자치와 자율은 혁신을 통해서만

대통령에게 권한과 책임이 지나치게 집중되고 이를 효과적으로 제어하는 시스템이 붕괴됨으로써 빚어진 오늘의 불행한 사태는 지역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자치와 자율을 빙자로 방치된 지방자치단체장의 전횡을 효율적으로 제어하지 않고는 지역의 자치도, 주민복지도, 행복도 담보할 수 없다. 지방자치 20년이 넘게 근본문제들이 해결되지 않고 있는 것은 자치가 중앙정치에 노예로 예속되었기 때문이다. 지방의 ‘가치와 자유’를 제대로 보장받기 위해서, 참 자치 실현으로 지역에서 꽃 핀 착한 민주주의가 중앙으로 확산되어 깨끗한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자치, 재정, 선거 등 제도와 사고 전반에 걸쳐 혁신이 필요하다.

# 연재

1. 총론 :

촛불 시민혁명과 주권자 시민의 탄생, 그리고 민주·평등·공공성의 민주공화국

2. 정치 개혁 :

촛불 광장이 요구하는 정부와 의회의 민주적 개혁

권력기구 분권화 없이 민주주의 회복은 불가능

③ 지방자치 혁신 없이 참 민주주의 실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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