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TV토론에서 “동성혼을 합법화할 생각은 없지만 차별은 반대한다”고 말했다. 앞뒤가 안 맞는 말의 전형이다. 동성혼을 합법화할 생각이 없다는 게 차별이다.

같은 당 소속 진선미 의원이 2014년 준비했던 ‘생활동반자법(생활동반자 관계에 관한 법률안)’은 혈연이나 혼인 관계에 있지 않은 동거가족 구성원들이 기존 가족 관계처럼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게 목적이다. 법적 보호를 받는 동반자 관계는 주소지 등을 관할 가정법원에 신고만 하면 된다. 이는 헌법이 보장하는 행복추구권에 해당한다고 진 의원은 밝혔다.

진 의원이 법을 준비한 이유에는 자신이 국가에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채 동반자와 함께 거주한 경험도 있다. 결혼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는데 국가는 여전히 결혼한 사람들에게만 각종 혜택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동성친구든 이성친구든, 이성인 애인이든, 동성인 애인이든, 혼인신고를 했든 안했든 같이 살면 병원에 갔을 때 보호자로 돌봐줄 수 있고, 세금혜택·상속문제·주거나 금융 등 사회적 서비스를 동등하게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다.

▲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과 녹색당, 한국여성단체연합, 정의당 등은 26일 오후 3시 서울 영등포경찰서 앞에서 ‘동성애 반대 발언 문재인 후보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에서 기습시위를 하다가 연행된 성소수자 인권활동가 13인의 즉각 석방을 촉구했다. 사진=이치열 기자
▲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과 녹색당, 한국여성단체연합, 정의당 등은 26일 오후 3시 서울 영등포경찰서 앞에서 ‘동성애 반대 발언 문재인 후보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에서 기습시위를 하다가 연행된 성소수자 인권활동가 13인의 즉각 석방을 촉구했다. 사진=이치열 기자

비혼을 생각해 본 사람들이 결혼을 고민하게 되는 때는 함께 살 집을 알아볼 때다. 한국 사회는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을 차별하고 있다. 안정적인 직장이 있는 이들에게도 주택대출은 신혼부부가 됐을 때 금융기관의 문턱이 낮아진다.

문재인 후보가 정치를 시작한 2012년 청년들을 만나 “연애도 포기, 결혼도 포기, 출산도 포기하는 ‘삼포시대’를 완전히 해결하는 대통령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물론 일자리 늘리기는 필요한 정책이다. 하지만 취직한다고 ‘삼포시대’가 해결되지 않는다.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혹은 하지 못한 두 사람이 만나 열심히 일해 월급 모으면 대도시에 살만한 집을 과연 마련할 수 있을까? 대단한 복지제도가 아니라, 빚을 내는데도 혼인허락을 국가에 못 받으면 장벽이 생긴다.

TV토론회 이후 동성혼 문제가 동성애자와 이성애자간 갈등인 것처럼 이해하는 분위기도 있다. 동성혼을 인정하는 건 동성애만의 문제가 아니다. 생활동반자법 도입을 위해선 자신이 함께 살고 싶은 사람의 성별이나 성 정체성이 걸림돌로 작용해선 안 된다. 이번 대선에서 진 의원의 생활동반자법과 유사한 심상정 정의당 후보의 ‘동반자등록법’은 ‘차별금지법’과 세트공약이다.

심 후보는 공약집에서 “노인의 동거, 장애인 등 각종 공동체, 미혼·동성 가정 등 다양한 가족형태가 존재함에도 이들을 보호할 법제도가 미비한 상황”이라며 “가족을 꾸려도 법적으로 가족이 될 수 없기에 배우자 수술동의서에 사인할 수도, 공공임대주택에 함께 살 수도 없으며, 사회보험제도나, 조세혜택, 경조사 휴가대상도 될 수 없다”고 현 상황의 문제점을 진단했다.

▲ 심상정 정의당 후보 10대 공약 중 세번째 공약
▲ 심상정 정의당 후보 10대 공약 중 세번째 공약

프랑스·독일·스위스·이스라엘 등 20여개 국가에선 결혼 이외의 파트너십제도가 운영되고 있다. 심상정 캠프에 따르면 프랑스는 2010년 기준 25만쌍이 결혼한 커플인데 팍스(PACS, 시민연대계약)제도로 20만 커플이 등록돼있다. 동성혼을 인정하지 않으면 실질적으로 다양한 가족형태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심 후보가 “일상적인 가사 대리권, 사회복지 수급권, 주택임대차 승계권 등을 보장하고 이밖에도 직장, 학교, 의료기관, 금융기관 등 일상생활에서 가족에게 보장되는 모든 권리를 보장하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동성혼을 인정하는 투쟁은 적어도 국가는 동성애자를 비롯한 성소수자를 차별하지 말라는 요구다.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아플 때 나랑 함께 살아 나를 잘 아는 내 동반자가 내 보호자가 돼야 하는 당연한 원리를 말하는 것이고, 내가 세상을 떠날 때 내 성 정체성을 부정했던(부정했을 확률이 큰) 가족들이 내 재산을 상속받아가는 아이러니한 현실을 폭로하는 것이다.

▲ 김조광수 감독과 김승환 레인보우팩토리 대표가 2013년 9월7일 오후 서울 청계천 광통교에서 열린 '김조광수와 김승환의 당연한 결혼식, 어느 멋진 날'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이하늬 기자
▲ 김조광수 감독과 김승환 레인보우팩토리 대표가 2013년 9월7일 오후 서울 청계천 광통교에서 열린 '김조광수와 김승환의 당연한 결혼식, 어느 멋진 날'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이하늬 기자

동성혼을 인정하는 건 다양한 가족형태를 꿈꾸는 이들을 차별하지 말라는 요구도 될 수 있다. 프랑스에 팍스제도로 등록한 커플 중 이성간이 98%이며 동성 간은 2%에 불과하다. 처음엔 등록커플의 절반정도가 동성 간이었지만 점차 이성 커플 비율이 늘었다.

성소수자들이 어떤 어려움을 겪고, 결혼과 가족제도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성 정체성만으로 어떤 차별과 오해에 휘둘려왔는지 공론화하는데 ‘인권’변호사 출신 문재인 후보가 걸림돌이 된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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