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의 방송통신위원회가 방송 장악 논란이 한창이던 2008년 전국언론노동조합 등 언론 시민단체 동향을 파악했다는 내용의 문건이 나와 ‘사찰 의혹’이 일고 있다.

뉴스타파가 26일 공개한 ‘위원장 주재 간부회의 의제’ 문건(2008년 6월14일 토요일자)을 보면, 방통위 기획조정실은 제18대 국회 제275회를 앞두고 “국회, 언론, 시민단체 등의 동향을 파악하여” 쟁점을 준비했고 “정치적으로 쟁점화될 수 있는 방송장악 관련 사항 및 방통위의 독립성 문제에 대해서는 법률 자문, 외부 전문가 의견 등을 수렴”해 대비했다.

특히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이 문건에 “18대 국회 주요 예상 쟁점(안)”이라는 꼭지 아래 “신문·방송 겸영 허용”이라고 적혀 있는 대목. 종합편성채널을 출범시킨 미디어법 개정안이 2009년 7월 날치기됐던 걸 고려하면 방통위원장 주재 간부회의 목적이 종편 출범에 있던 것 아니냐는 의심을 해볼 수 있다.

▲ 2008년 6월14일자 제1기 방통위 ‘위원장 주재 간부회의 의제’ 가운데 국회 관련 준비 계획. 사진=뉴스타파
▲ 2008년 6월14일자 제1기 방통위 ‘위원장 주재 간부회의 의제’ 가운데 국회 관련 준비 계획. 사진=뉴스타파
당시 방통위원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 최측근인 최시중 위원장이었다. 방송과 통신이 합쳐져 탄생한 이명박 정부의 방통위는 막강한 권한을 지닌 행정기관이었다.

뉴스타파는 사찰 가능성을 의심했지만 뉴스타파에 따르면, 당시 이명구 방통위 기획조정실장은 “언론과 시민단체 동향을 따로 파악하고 다닌 사람은 없었다”고 사찰 정황을 부인했다.

2008년 7월5일과 8월2일·9일·16일자 ‘위원장 주재 간부회의 의제’에서는 방통위가 KBS, YTN, 민주당과 언론시민단체 움직임까지 엿본 정황이 나타난다.

이 문건들에는 2008년 8월8일 ‘방송장악·네티즌탄압저지국민행동’이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개최한 정연주 전 KBS 사장 해임 관련 ‘이사회 중단 촉구 기자회견’, 같은 달 15일 프레스센터 앞에서 진행됐던 ‘8·15언론주권 수호 선언 및 촛불문화제’ 관련 동향을 파악한 정황도 있다.

아울러 MB정부 방송장악에 맞서 KBS 구성원들이 결성한 ‘KBS사원행동’의 기자회견(8월14·15일) 등도 방통위 기획조정실 눈에 닿았고 8월15일 서울 남대문 YTN사옥 앞에서 열린 ‘구본홍 사장 출근 저지와 YTN 사수 집회’도 동향 파악 대상이었다.

구본홍 전 YTN 사장은 MB 대선캠프 언론특보 출신으로 ‘낙하산 사장’ 반대 투쟁을 했던 노종면 전 언론노조 YTN지부장 등 YTN 언론인 6명은 2008년 10월 해고됐다.

이 문건을 보면 YTN 해직사태와 함께 MB정부의 방송장악 신호탄이었던 ‘정연주 전 KBS 사장 몰아내기’와 이에 대한 반발 역시 최 전 위원장 등의 관심사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 MB정부의 핵심 실세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사진=이치열 기자
▲ MB정부의 핵심 실세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사진=이치열 기자
미디어법 개정 국면에서도 동향 파악은 이어졌다. 2008년 8월1일 민주당 언론장악저지대책위원회 천정배·김재균·박선숙 의원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를 항의 방문하자 다음날 위원장 주재 간부회의의 도마 위에 올랐고, 8월14일 대기업의 방송 진출을 제한하는 방송법 개정안을 발의한 최문순 민주당 의원 동향도 8월16일자 ‘위원장 주재 간부회의 의제’에서 확인됐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이 2008년 7월5일 오후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100만 촛불 집회’에 참여하려는 계획 역시 같은 날 오전 간부회의에서 다뤄졌다. 

방통위 간부회의 문건을 보도한 이은용 뉴스타파 디지털·IT 전문 객원기자는 26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2008년 3월 최시중씨가 방통위원장이 되면서 근무하는 날이 아닌 토요일에 별도 간부 회의를 주재해 언론 동향을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라며 “MB정부의 방송 장악 시나리오를 파악할 수 있는 구체적 문건”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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