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세월호 3주기 촛불집회가 열렸다. 박근혜씨가 파면된 이후임에도 10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집회에 참가했다. 이승환, 이은미, 권진원 등 음악인들의 무대도 마련됐다. 하이텍알씨디코리아 노동자 김혜진씨는 광화문 광장 바로 옆 건물 11층 높이 고공농성장에서 이를 지켜봤다. 그는 “화려한 무대”라고 표현했다. 

같은 시각, 고공농성장 아래의 ‘땅 농성장’에 경찰이 들이닥쳤다. 해당 장소에 농성장을 설치하면 안 된다는 이유다. 농성장이 침탈당하자 촛불집회 사회자는 “경찰 폭력을 멈추라고 다 같이 함성을 지르자”고 제안했다. 집회 참가자들은 10초 정도 큰 소리로 함성을 외쳤다. 그게 끝이었다.

촛불집회가 ‘평화롭게’ 진행되는 동안 농성장은 부서졌다. 집회 장소와 채 3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다. 1000여장의 유인물은 뜯겨 바람에 날렸고 농성장에 치기 위한 그늘막을 가지고 있던 여성노동자는 20미터 이상을 질질 끌려갔다. 그는 결국 구토를 하고 말았다. 이 날 3명의 노동자가 응급실에 실려갔다. 

▲ 지난 14일 6개 장기투쟁사업장 해고노동자 6명(김경래 동양시멘트지부 부지부장, 고진수 세종호텔노조 조합원, 오수일 아사히비정규직지회 대의원, 이인근 콜텍 지회장, 김혜진 하이텍알씨디코리아 투쟁위 대표, 장재영 현대차울산비정규직지회 조합원)이 광화문 네거리 광고탑에 올라 비정규직 철폐 등을 요구하며 고공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지난 14일 6개 장기투쟁사업장 해고노동자 6명(김경래 동양시멘트지부 부지부장, 고진수 세종호텔노조 조합원, 오수일 아사히비정규직지회 대의원, 이인근 콜텍 지회장, 김혜진 하이텍알씨디코리아 투쟁위 대표, 장재영 현대차울산비정규직지회 조합원)이 광화문 네거리 광고탑에 올라 비정규직 철폐 등을 요구하며 고공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서울 광화문 광장 옆 '땅 농성장'. 사진=이하늬 기자
▲ 서울 광화문 광장 옆 '땅 농성장'. 사진=이하늬 기자
촛불집회가 평화롭게 진행되는 동안 
처참하게 부서진 농성장

25일 찾은 광화문 광장 옆 땅 농성장은 자리를 잡아가는 듯 보였다. 천장에는 그물로 된 검정 가림막이 쳐졌고 그 아래 빨랫줄에는 침낭과 수건들이 널려있었다. 이곳에서 10개 사업장, 50여명의 노동자가 하루를 보낸다. 고공농성장이 들어선 건물 아래에는 에어매트가 깔려있었다. 

지난 14일 고공에 오른 하늘농성장 노동자들은 13일을 굶었다. 효소도 없이 물과 소금만으로 단식을 이어가고 있다. 단식이 열흘을 넘어가면서부터는 좋지 않은 증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맥박 수치가 정상범위를 벗어나고 간수치가 나빠졌다. 쓰러져도 곧장 병원에 실려 갈 수 없다는 점은 큰 문제다. 

왜 이렇게까지 하냐고 물었다. “건강을 떠나 우리가 진정성 있게 싸워야 이 내용이 더 많이 알려지니까요” 김씨가 가라앉은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체력이 떨어지니 땅 농성장을 보기 위해 ‘옥상’으로 올라가는 것도 힘에 부친다. 올라가는 와중에 손에 힘이 빠져 떨어지기라도 하면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 각기 다른 6개 사업장 노동자가 지난 14일 서울 광화문 세광빌딩에서 고공농성을 시작했다. 사진=김혜진 제공
▲ 각기 다른 6개 사업장 노동자가 지난 14일 서울 광화문 세광빌딩에서 고공농성을 시작했다. 사진=김혜진 제공
각기 다른 사업장의 노동자 6명, 왜 하늘에 올랐나

하늘에 오른 노동자는 6명이다. 특이한 점은 이들 6명이 모두 다른 사업장 소속이라는 것이다. 김경래 동양시멘트지부 부지부장, 고진수 세종호텔노조 조합원, 오수일 아사히비정규직지회 대의원, 이이근 콜텍지회 지회장, 김혜진 하이텍알씨디코리아 조합원, 장재영 현대차 울산비정규직지회 조합원 등이다. 

땅 농성장에는 10개 사업장 노동자들이 자리를 지킨다. 10개 사업장 노동자들이 ‘공동투쟁’을 시작한 건 2015년 10월이다. 개별사업장의 투쟁으로는 상황을 해결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차헌호 아사히글라스 지회장은 “사업장별로 근본 원인은 같다”면서 △정리해고 △비정규직 △노조파괴를 꼽았다. 

지난해 11월에는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앞에 농성장을 만들었다. 매주 촛불을 들었다. 평일 촛불집회에도 함께 했다. 촛불집회 참가자들이 청와대로 행진을 하기 훨씬 전에  “박근혜를 구속하라”며 외치며 행진하다 연행되기도 했다. 그런 일상이 5개월 동안 계속됐다. 

“단 한번의 발언기회도 주어지지 않았다”

박근혜가 탄핵되면 무언가 바뀔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이들은 촛불집회에서 발언권조차 얻기 힘들었다. “주말 촛불 연단에서 단 한 차례도 저희에게 발언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어요. 몇 차례 요청했지만 시민들의 거부감을 낳을 수 있다고 거절당했어요.” 김씨의 말이다. 

그렇게 대선이 시작됐다. 벚꽃대선이라고 했다. 장미대선이라고도 했다. “촛불이 열어준 정치공간”이라며 촛불을 추켜세우는 말들이 무성했다. 하지만 노동자들의 일상은 박근혜 탄핵 전과 후가 바뀌지 않았다. 경찰 폭력은 여전하고 언론의 무관심 또한 마찬가지다. 

대선후보들이 농성장을 찾으면 언론에 보도라도 될텐데 농성장을 찾는 후보는 별로 없다. 민중연합당 김선동 후보가 농성장에서 대선 출정식을 열었고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10분 정도 농성장을 찾았다. 23일 광화문에서 2시간 가까이 유세를 이어간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노동자들의 피켓팅을 외면했다. 

▲ 지난 23일 서울 광화문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 유세현장에서 노동자들이 피켓팅을 하고 있다. 사진=차헌호 제공
▲ 지난 23일 서울 광화문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 유세현장에서 노동자들이 피켓팅을 하고 있다. 사진=차헌호 제공
노동자들 피켓팅도 외면한 안철수 후보 

농성을 그만두고 싶어도 그만둘 수 없다. 대통령이 바뀐다고 모든 게 바뀔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차 지회장과 김씨는 강조했다. 중요한 것은 노동자들을 비정규직으로 만들고, 쉽게 해고하고, 노조를 파괴할 수 있게 만드는 ‘법’이다. 이들은 정리해고 철폐, 비정규직 철폐, 노조할 권리를 주장하고 있다.

먼 과제처럼 들렸다. 이에 대해 차 지회장은 “어렵다고 생각하는 게 문제”라며 “97년 이전에는 없던 법이었다. 법을 만들 때만 해도 노동자 절반이 비정규직이 되고 미래의 경영위기로 정리해고가 가능할지 누가 알았겠나”라며 “이 법들 없이도 잘 살았다”고 말했다. 

17년 6개월, 고공에 오른 농성자 6명이 길에서 보낸 시간을 합친 숫자다. 김씨는 “대통령 하나 바뀐다고 우리의 삶이 달라질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대통령 하나 바꾸려고 촛불을 든 게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한 것이 아니었나”라고 씁쓸히게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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