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예술위원회의 이른바 블랙리스트 업무에 관여한 직원이 문화체육관광부 등 윗선의 지시를 받아 심사과정에 개입한 사실을 시인했다. 그는 이 때문에 부당하게 지원대상자에서 배제된 예술인들에게 사과했다.

한국예술위원회에서 공연지원부 차장으로서 예술인 지원배제 업무를 했던 홍승욱 예술위 사무국 무대예술부 부장은 26일 오전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0부(재판장 황병헌 부장판사) 주재로 열린 김기춘 조윤선 등의 직권남용 사건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이같이 밝혔다.

홍 부장은 지난 2015년 11월부터 2016년 3월 초까지 공연지원부 차장으로 근무하면서 문화예술기금 지원심의 과정에 관여했다. 그는 특검수사 당시 예술위 다른 담당 부서장이 문체부의 사무관으로부터 지원배제대상자 명단을 내려받아 심의 대상에서 배제할 명단을 문건으로 작성해 제출했다고 법정에서 시인했다. 이 문건은 특검 수사 과정에서 각 부서장에게 일일이 의견을 듣고 취합해 작성한 자료라고 증언했다.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지원배제 명단이 내려온 상황에 대해 홍 부장은 “보통 지원배제(명단)가 왔을 때 ‘지원배제 (대상) 사실이 많다’거나 ‘힘든’ 경우가 있었다”며 “이 때문에 당시 담당 문화부 사무관에 전화해서 양해 요구를 많이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밝혔다.

이 같은 블랙리스트가 청와대로부터 하달된 것인지 알고 있었는지에 대해 홍 부장은 “떠도는 이야기였으며, 청와대에서 하달된 것을 (이렇게까지 자세히) 당시에 알지는 못했다”면서도 “루머처럼 청와대와 국정원이 문체부를 경유해서 내려온다는 것이 암암리에 알려져 있었다”고 밝혔다.

당시 지원배제를 한 뒤 어땠는지에 대해 홍 부장은 “(지원배제 대상이 된 예술인과 우리가)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오랜 시간 동안 지원하고 사업하는 사람들이었다”며 “그러다보니 지원배제했던 상황이나 배제한 일이 생긴 이후 직원들이 예술인들을 만나는 것도 두려워했다”고 전했다. 그는 “젊은 직원들조차 ‘이 일을 왜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고, 그동안 기초예술을 지원함으로써 예술을 진흥시킨다는 자긍심이 있었으나 많은 직원들이 ‘그만두고 싶다’,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많이 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로고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로고
특히 현장의 문화예술인들의 경제 형편에 대해 홍 부장은 “(문예기금) 지원을 못받으면 이들의 창작활동이 이루어지기 어렵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기초예술의 진흥을 위해 설립된 민간자율기구인데, 예술위가 블랙리스트 부역 업무를 했다는 것을 시인하고 예술인에 사과드린다”며 “저 또한 아는 예술인이 많고, 호형호제하며 소주를 기울이는 사람 많다. 공정하게 지원하고 배분해야 할 조직원으로써 (이런 일에) 연루된 것에 창피하고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사과했다.

그는 “공정하고 제대로 된 법의 결정을 통해 향후 이런 일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덧붙였다.

부당하게 심의과정에 개입한 이유에 대해 홍 부장은 “문체부 산하기관인 예술위는 지원기구로서 기금고갈 등의 문제가 산재한 상태”라며 “예술가 지원을 할 수 있는 (마땅한) 재원이 없어 문체부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사업구조였다. 지원배제 지시를 무시하거나 따르지 않을 경우 불이익이 있을 것으로 판단했던 것으로 안다”고 털어놨다. 그는 “예술위 위원장도 장관이 임명하는 구조이다 보니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며 “그렇기 때문에 무리하게 (블랙리스트 업무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술가들이게 죄송스러운 일을 하지 않았나 싶다”고 덧붙였다.

▲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법정에 출두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법정에 출두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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