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로 지칭되는 소위 비선실세의 전횡은 국민주권에 기반을 둔 대의제의 원칙을 파괴한 것이며 대통령의 권력이 견제 받지 못하는 한 언제든지 유사한 행태의 국정농단이 일어나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이는 한국의 민주주의가 제도적으로 ‘견제와 균형’의 원칙을 실현하지 못하고 특정인이나 특정 집단의 사적인 이익을 위해 전용될 수 있는 대단히 취약한 정치적 구조를 지니고 있음을 여실히 드러내 준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촛불의 정치동학이 사태의 해결을 주도하면서 한국 민주주의의 저력을 보여주었다. 향후 정치개혁은 촛불민심으로 표출된 국민의 정치적 요구에 기반을 두어 국민들의 의사가 정치권에 반영될 수 있고 국민들에 의한 견제 기능이 강화되는 방향으로 제도 개혁이 이루어져야만 할 것이다. 이는 현재의 정치구조를 보다 민주적이고 공공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재설계하는 과정이 되어야만 한다.

정치개혁은 따라서 대통령의 권력을 효율적으로 견제하는 방향으로 정부 형태를 개혁하고, 지역구 간의 불공정한 대표성을 최소화하고 정당 간 불공정한 의석 배분을 타파함과 동시에 공직자 선거의 조작가능성을 최소화하기 위한 선거제도 개혁을 이뤄내야 한다. 또한 국회의 권한과 기능을 대폭 강화하되 개별 의원들의 특권은 입법 활동과 감시⦁견제 기능을 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세비를 포함하여 대폭 줄이는 ‘입법부 개혁,’ 그리고 소위 ‘대의의 위기', '대의의 실패'를 초래한 현재의 기형적 보수정당체제를 극복하기 위한 ’정당개혁’을 포함해야만 한다.

정부형태 개혁은 대통령 권력의 견제에서

국민들 다수가 지지하고, 대권유력주자들이 선호하는 4년 중임제 대통령제로 정부형태가 합의되면, 선거제도 개혁의 핵심은 대통령 선거에 결선투표제를 도입하는 것이며, 이를 전제로 정부형태의 합의를 도모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국회의원들과 다수의 전문가들이 선호하는 분권형 대통령제 혹은 의원내각제로 정부형태가 합의될 경우에는 대통령 선출에서 결선투표제는 그 의미를 갖기 어려우며, 핵심적인 것은 국회의원 선거제도 개선이 될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의원내각제 정부형태는 4.19 이후 짧은 기간 동안 경험하였으나, 당시의 정치적 경험은 이미 역사가 되어 대부분의 국민들에게는 생소한데다, 분단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상황에서 전면적으로 채택되기는 아무래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또한 유력한 대선 후보가 되면 누구도 스스로의 권력을 제한하는 내각제를 지지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현실적인 제약도 무시할 수 없다. 따라서 대통령제가 당분간 지속된다는 전제하에서는 정부 형태의 개혁은 대통령의 권력에 대한 견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현실적이고 바람직할 것이다.

▲ 박근혜씨  사진=사진공동취재단
▲ 박근혜씨 사진=사진공동취재단

박근혜 정부 뿐 아니라 이전 정권들에서도 대통령에 의해 임명되는 비선출직 공직자들이 행정부는 물론 정부와 정권을 장악해 온 것이 모든 문제의 출발이었음을 상기하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청와대의 수석 제도를 폐지하거나 수석 임명시 국회 청문회 제도 도입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나아가 차관 임명시에도 국회의 임명 동의를 요구하는 제도 개선도 고려해볼 만하다. 대통령의 절대적 권력이 검찰권력의 전횡을 통해 가능했던 점을 고려하면 검찰의 기소권 독점을 폐지하거나, 검찰총장을 임명직에서 선출직으로 전환하는 것도 고려해야만 할 사항이다.

박근혜라는 부패한 절대권력을 끌어내린 탄핵제도 또한 역시 개선되야할 필요가 있다. 현재 헌법재판관이라는 비선출 공무원들이 사실상 탄핵을 결정하는 권한을 지니고 있는데, 지난 탄핵심판 과정에서 나타났듯이 헌법재판소를 압박하거나 심판과정을 지연시키고 왜곡시킬 수 있는 여지가 많으므로, 법리적 논쟁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국회의 탄핵의결 요건을 강화하고, 국회에서 탄핵안이 통과될 경우 탄핵은 국민투표에서 2/3 이상의 투표로 결정하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대통령의 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 최선의 대안은 국회의 기능 강화이므로, 정부형태의 개혁은 국회 개혁 문제와 밀접하게 연관될 수 밖에 없다.

민의를 제대로 대변하는 선거제도

현행 선거제도는 다수의 사표 발생과 왜곡된 양당체제로 민의의 대변이라는 측면에서 매우 취약하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개편이 용이한 제도부터 검토하면, 먼저 국민의 참정권 확대를 위해 선거연령을 18세로 낮춰 오는 선거에서 바로 적용할 수 있도록 선거법을 개정할 수 있겠다. 여러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현재의 4당체제, 여소야대, 그리고 수세적인 보수정치 등을 고려할 때, 성과를 바로 낼 수 있는 어젠다라고 생각된다. 또한 결선투표제를 도입하는 방향으로 공직선거법을 개정해 대규모 사표발생을 억제할 필요가 있다. 물론 결선투표제가 개헌사항인지 법률개정 사항인지에 대해선 논란이 있지만, 현재의 여소야대 상황에서는 여러 정치세력의 이해관계를 조정할 수 있는 상대적으로 용이한 개혁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또한 대통령제의 안정성, 정치공학적인 후보단일화 억제, 그리고 연립정부 구성 등에 있어서도 도움이 되는 것으로, 선거연령 18세 인하와 결선투표제는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정치개혁의 과제이다.

좀 더 장기적으로는 국회의원 선거제도를 비례성이 높은 독일식 비례대표제(권역별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포함해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쪽으로 개정할 것을 심각하게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국회의원 선거제도는 첫째, 현행 선거제도가 가진 높은 불비례성을 극복하기 위해 비례성을 제고하고 왜곡된 부분을 정상화시키는 방향으로 개혁되어야만 한다. 비례성을 높이기 위해 비례대표제를 전면적으로 도입할 것인지, 아니면 현재의 비례대표 비중을 높일 것인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비례성 제고라는 원칙에 비추어볼 때, 비례대표제의 전면적인 도입이 더욱 적합하다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민의를 왜곡시키는 지역주의를 약화시키기 위해 지역독점의 의석구조를 방지하기 위한 방향으로의 선거제도 개혁이 요구된다. 현행 소선거구제가 지역분할 정당체계를 강화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이에 대한 보완으로서도 비례대표의 확대도입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지역정당이 전국적 지지를 가진 전국 정당으로 발전할 수 있으며, 지역 정당들 간의 극한 패권경쟁구도 또한 완화될 수 있다.

셋째, 새로운 정치세력과 군소정당의 원내진출을 확대하는 방향으로의 개혁이 요구된다. 현행 최다득표제(plurality)의 승자독식 방식은 정당의 대표성을 크게 약화시키고, 유권자들의 전략투표를 강요함으로써 신생정당 및 소수정당의 의회진출을 어렵게 만들기 때문에 비례대표의 확대로 원내 진입장벽을 낮추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정당정치가 지역대결보다는 정당 간 정책경쟁을 유인하고 강화시키는 긍정적인 효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한국의 정치현실에 적합한 선거제도는 비례성을 향상시킬 수 있으며, 신진 정치세력의 진출을 가능하게 하고, 지역주의를 완화시키는 효과가 있는 비례대표제의 확대 도입으로 요약된다. 특히 분권형 권력구조로 정부형태를 개혁할 경우, 의회권력의 대표성과 다양성 확대가 전제되지 않는다면, 거대 양당 독점체제인 의회의 권력만 강화되는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이는 오히려 개악이 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의회권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사회균열을 반영할 수 있는 선거제도의 개선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비례대표제를 전면적으로 확대할 때엔 공천제도의 상향식 방식 또한 제도화되어야만 한다. 비례대표의 비중이 높아지면 비례대표의 명부작성을 둘러싼 갈등이 심화될 수 있고, 기존처럼 비례대표의 명부를 정당지도부가 작성하는 것은 당의 비민주성을 강화하는 결과를 야기해 정치개혁의 목적을 후퇴시킬 수도 있다. 따라서 각 정당이 공개적인 방법으로 투명하게 비례대표 명부를 작성하도록 규정하는 것이 비례대표제의 도입이라는 선거제도 개혁의 정치적 효과를 보장할 수 있는 방안이라 할 것이다.

강하고 민주적인 국회와 정당을 만들자

대통령에 의한 국정농단 사태의 전말을 보면서, 이제 대통령의 절대 권력을 견제하기 위해 입법부가 강화되어야 한다는데 이견을 갖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개혁의 방향은 국회의 기능과 권한은 대폭 강화하되, 개별 의원들의 특권은 최소화시키는 것이 되어야 한다. 현재 개별 의원들의 높은 세비와 특권은 과거 권위주의 정권하에서 의원들에게 일종의 뇌물의 형태로 부여된 특권이었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즉, 새로운 국회는 개별 의원의 권한은 약하되 국회의 권력은 높이는 것이어야 한다.

무엇보다 먼저 국회의 권한을 강화하고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현재 정부가 행사하는 예산 편성권을 국회에게 부여하여 방안을 고려해 볼 수 있다. 이는 동시에 비선출직 경제 관료들이 장악하고 있는 예산권을 민주화하고 국민의 감시 하에 놓을 수 있는 제도 개혁이기도 하다. 또한 입법 기능 강화를 위해 입법조사처, 사무처 등의 기능을 강화하고 보좌관 수를 늘리되 개별 의원들이 임명할 수 있는 정치 보좌관은 최소화하고 국회에서 배정해 주는 정책 보좌관을 늘리는 것이 중요하다.

한편 강화된 국회를 제어하기 위해서는 임기에 제한을 두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국회의원을 제외한 모든 선출직에 임기 제한이 적용되고 있는 바, 국회의원들의 특권을 줄이고 의정활동의 효율성을 위해 3선 정도로 임기 제한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주민소환제를 본격 도입하여 선거 이후에도 개별 의원들이 언제나 국민들의 감시 하에 놓여 있도록 해야 한다.

국회를 이념과 정책 경쟁을 통해 운영할 정당들도 개혁되어야만 한다. 정당개혁의 핵심은 공정한 정당경쟁이 가능하도록 하고 민주적 공천 제도를 의무화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기성정치의 기득권을 타파하고 당내 의사결정과정에서 다양한 의사를 반영해 대표성과 민주성을 확보하며 지역 간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정당창당 요건의 완화, 국고보조금 배분의 공정성 강화, 당원가입 범위의 확대, 지역정당의 활성화, 권역별 비례대표제의 도입, 당내 선거권의 지역별, 계층별 할당제 마련, 강제적 당론의 권고적 당론으로의 전환 등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당장 정당법 개정을 통해 실시할 수 있는 것은 지구당 제도의 부활과 지역 정당 설립 허용이다. 2004년 지구당 제도가 폐지되면서 한국의 정당들은 중앙당과 시도당이라는 기형적이고 이중적인 조직구조를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지방자치⦁주민자치 이념을 실현하고 지방정부의 정책결정에 보다 많은 주민이 참여케 하기 위해서는 지방의 정당정치 활성화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선 정당 설립 요건을 완화해 지방정당의 등장과 활동을 독려해야 한다. 지방정당은 중앙의 이슈보다는 지역 현안에 집중하는 정치세력의 등장을 가능하게 하여 주민의 생활정치를 강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오늘날 지역사회가 안고 있는 각종 문제들은 많은 경우에 자치단체 고유의 영역에서 해결될 수 있는 것으로 지방정당의 활성화를 통해 정치의 다원화와 지방화 추세를 가속화 시킬 필요가 있다.

이번 국정농단 사태는 대통령에 의한 권력집중의 폐해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촛불 민심을 두 번 다시 이와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대의 민주주의의 회복울 요구하고 있다. 어디에도 완벽한 제도는 없다. 그러나 대의제의 원칙에 보다 충실하고 권력을 보다 효율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보다 민주적이고 공공적인 제도는 존재한다. 지금이 그 제도를 향해 큰 한 걸음을 디딜 때이다.

(관련기사 : 촛불 시민혁명과 주권자 시민의 탄생, 그리고 민주·평등·공공성의 민주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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