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호 전 MBC ‘PD수첩’ PD(현 뉴스타파 앵커·56)는 MBC 역사에 굵은 획을 그었다. 2012년 MBC 파업 와중 해고된 뒤 뉴스타파에서 국정원 간첩 조작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자백’을 제작하며 탐사 저널리스트로서 주목받았지만, 그가 PD수첩에서 일군 PD저널리즘의 빛나는 성취는 자백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2005년 한학수 MBC PD와 함께 밝혀낸 ‘황우석 논문 조작 사건’, 2010년 ‘검사와 스폰서’, ‘4대강, 수심 6미터의 비밀’ 등이 그러했다.

그를 다시 만난 까닭은 PD수첩 때문이었다. 지난 18일 방송된 ‘세월호, 101분의 기록’ 편은 긴박했던 세월호 침몰 순간을 재구성했고 시청자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얼마만인가. 사람들 입에 PD수첩이 회자된 것이. 한때 MBC 위상을 드높였던 PD수첩이 되살아난다면, 그 순간이 MBC 정상화의 시작일 거란 생각에 지난 22일 그를 찾아 물었다. MBC는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 최승호 전 MBC PD는 한국 PD저널리즘의 상징이다. 2012년 MBC에서 해고된 뒤 뉴스타파에서 국정원 간첩 조작 사건을 다룬 영화 ‘자백’을 제작하는 등 저널리스트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는 그. 하지만 그가 PD수첩에서 일군 PD저널리즘의 빛나는 성취는 자백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사진=김도연 기자
▲ 최승호 전 MBC PD는 한국 PD저널리즘의 상징이다. 2012년 MBC에서 해고된 뒤 뉴스타파에서 국정원 간첩 조작 사건을 다룬 영화 ‘자백’을 제작하는 등 저널리스트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는 그. 하지만 그가 PD수첩에서 일군 PD저널리즘의 빛나는 성취는 자백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사진=김도연 기자
- 공영방송에서는 권력 교체 움직임이 있으면 내부가 크게 요동쳤다. 그동안 일부 방송사 간부들은 줄을 갈아타며 변화에 순응하기도 했는데 MBC는 요지부동인 것 같다. KBS와는 또 다른 분위기다.

“KBS와 MBC를 어떻게 비교하나. KBS 경영진들도 많은 잘못을 저질렀지만 MBC와 비교하면 굉장히 부드럽다. 해고자도 없었고 좌천성 인사도 MBC와 비교하면 조족지혈 수준이다. 프로그램이 불방되는 경우도 MBC에 비하면 양반이지. KBS에선 탄핵 다큐도 방송됐지만 MBC는 다 만든 걸 불방시키고 해당 PD를 다른 곳으로 보내버렸다. (편집자주 : 지난달 방송될 예정이었던 MBC 스페셜 ‘탄핵’ 편이 불방되는 일이 있었다. 담당 PD는 방송 제작을 할 수 없는 부서로 전보돼 논란이 컸다.) 소송에서 사측이 진 비율과 숫자, 어떤 통계를 들이밀어도 KBS는 MBC에 비하면 양반이다. MBC는 권력을 바꿔 탈 여지가 전혀 없다. 구성원들이 너무나 많은 피를 흘렸다. 그런 걸 없던 일로 하고 줄을 바꿔 탄다는 건 불가능하다. 본인들도 그게 불가능하다는 걸 알 거다. ‘장렬하게 전사 하겠다’는 옥쇄전술이랄까. MBC가 회복되는 과정이 결코 순탄치 않겠구나 싶다. 부드럽고 순리적으로 해결되는 건 힘들지 않겠나?”

지난 2월16일 서울 MBC 상암동에는 희귀한 풍경이 펼쳐졌다. 친박 단체들이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MBC 응원 집회’를 연 것이다. 이들이 전날 KBS 앞에서 열린 집회에서 “KBS는 기생충 같은 XX들”, “KBS를 폭파해야 한다”, “빨갱이 방송”이라고 험한 말을 쏟아낸 것과는 다르게 MBC에는 “고맙다 MBC”, “힘내라 MBC”라고 환호했다. 당시 현장에서 최 전 PD는 이 광경을 두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 당시 현장을 영상에 담고 있었는데?

“다큐멘터리를 하나 만들고 있다. 공영방송 현실과 관련된 다큐멘터리다. ‘태극기 부대’들이 KBS에는 욕설을 퍼부었는데 MBC를 향해선 응원하더라. 김장겸씨가 사장되기 전이었는데, 태극기 부대들이 ‘김장겸을 사장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후 집회에서 MBC 제3노조 위원장들이 나오고, 박상후(시사제작1부장)라는 간부도 나와 사진 찍고 어울리는데…. 현직 공영방송 간부로서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행동이다. 태극기 부대와 손잡는 것이 MBC에서 아무 문제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김장겸씨가 사장이 되고 나서 박상후에게 대선 국면에서 가장 중요한 ‘100분토론’을 맡겼다.”

▲ 지난 2월22일 서울 상암동 MBC 신사옥 앞 광장에서 열린 친박집회에 박상후(왼쪽) MBC 기자가 극우논객 변희재씨(오른쪽) 옆에 서 있다.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지난 2월22일 서울 상암동 MBC 신사옥 앞 광장에서 열린 친박집회에 박상후(왼쪽) MBC 기자가 극우논객 변희재씨(오른쪽) 옆에 서 있다.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대선 국면이다. 다수의 대선 후보들이 공영방송 정상화를 이야기하는데, 옛 야3당이 발의한 ‘언론장악방지법’이 국회 계류 중이다. 정권이 교체되어도 법안 통과가 중요한가?

“현재로서는 국회 계류 중인 ‘언론장악방지법’을 통과시키는 게 현실적이고 합리적이다. 대선 이후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 바른정당까지 MBC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법안 통과에 동의해야 한다. 공영방송이 바로서야 한다는 대의에 반대할 국민은 별로 없다. 김장겸이나 이 지독한 MBC에 대해 방송 잘한다고 이야기할 사람이 몇 퍼센트나 되겠나? 정당들도 찬성하지 않을 이유와 명분이 없다. 언론장악방지법이 통과되면 몇 달 뒤엔 현 체제를 갈아엎을 수 있을 것이고, 새로운 법에 의거해 여·야 추천 이사들이 합의하고 새 사장을 뽑으면 된다.”

- 법안에 대한 여러 논의가 있다. 그 가운데 법이 통과되면 개혁적인 사장이 임명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여·야 눈치만 보다가 끝나지 않겠느냐는 지적이다.

“그런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 하지만 길게 공영방송 미래를 생각한다면 법안 통과는 바람직하다. 현재 ‘적폐세력 청산’을 내건 세력이 정권을 잡는다면 현행법 하에서 조금 더 강한 MBC 개혁과 변화가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건 그게 얼마나 갈 수 있겠냐는 거다. 다시 정권이 바뀌어 보복하는 과거가 되풀이된다면 공영방송은 사멸의 길로 들어설 수밖에 없다. 최선은 아니더라도 최악을 피해 차선 혹은 차악을 선택하자는 거다. 공영방송이 너무 오른쪽이나 왼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면서 정확한 ‘팩트’를 전달한다면 바람직하다고 본다.”

- 지금 말씀은 예전 MBC로 돌아가기 어렵다는 걸 전제한 것 아닌가?

“그렇게만 볼 수 없다. 관련 법안에는 ‘노사 동수 편성위원회’라든지 편집권을 독립시키는 장치들이 포함돼 있다. 편집권이 독립되면 개별 PD나 기자들이 만들고 싶은 프로그램과 보도를 마음껏 할 수 있다. MBC에서는 과거부터 경영진이 제작에 관여하지 않았다. 제도가 구비되면 언론의 자유가 꽃을 피울 수 있다. 보수적인 생각을 하는 이들도 자기 소신껏 프로그램을 제작할 수도 있다. 사실관계가 틀린 주장만 아니라면.”

한겨레21 취재진은 지난 17일 한겨레 지면을 통해 MB정부 국가정보원이 민간 여론조작 조직 ‘알파팀’을 통해 ‘알바부대’를 동원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국정원이 2009년 1월 종합편성채널을 만든 미디어법 개정 국면에서 알파팀에 전달한 문건을 보면 “MBC는 자신들의 기득권과 위선을 지키기 위해 ‘공영방송 사수, 언론자유 수호’라는 숭고한 명분의 참뜻을 훼손했다” 등의 대목이 있다. 미디어법 개정에 반대하는 MBC 구성원을 겨냥한 여론 조작인 셈이다. 또 미국산 쇠고기 수입 위험성을 지적한 PD수첩 제작진의 손을 들어준 재판부를 비난하라는 지시도 내려졌다.

▲ 최승호 전 MBC PD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영화 ‘자백’의 한 장면이다. 국정원 대선 개입과 관련해 최 전 PD가 MB정부의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상대로 밀착 취재를 하고 있다. 사진=영화 자백
▲ 최승호 전 MBC PD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영화 ‘자백’의 한 장면이다. 국정원 대선 개입과 관련해 최 전 PD가 MB정부의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상대로 밀착 취재를 하고 있다. 사진=영화 자백
- 한겨레의 ‘알파팀’ 보도를 봤나? 국정원이 MB정부와 대척에 있던 MBC에 대한 비난 여론을 조성하려는 정황과 지시가 담겨 있다.

“정권 차원의 여론 조작이 있을 거라고는 짐작했다. MBC에 대기업 광고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줄어들어 국정원이 광고까지 건드린 게 아닌가 싶었다. 이에 비춰보면, 이명박 정권의 국정원이 MBC에 대한 공격을 주도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2012년 대선 당시 국정원 댓글 사건에서 심리전단이 쏟아냈던 트위트·댓글 가운데서도 MBC PD수첩을 욕하는 게 많았다.”

- 이명박 정권은 MBC PD수첩을 눈엣가시처럼 여겼다. PD수첩의 ‘PD저널리즘’이 권력을 아프게 했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과거 MBC PD저널리즘을 평가한다면?

“MBC PD저널리즘의 최대 성과는 ‘황우석 편’이었다. 탐사 보도를 통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걸 밝혀냈다. 국민 대부분이 진실을 밝히는 과정을 원치 않았다. 어마어마한 대중의 압박을 받으면서 일궈낸 성취였다. 만약 MBC가 정상화가 되면 PD수첩을 반드시 과거처럼 살려야 한다. 다만, 정교해져야 한다. PD저널리즘은 빠르게 시청자 신뢰를 얻었지만 중요한 사회적 문제를 정제된 시각과 방법으로 다뤄야 한다는 요구도 있었다. PD수첩은 데이터저널리즘을 시도했으나 김재철(전 MBC 사장)씨가 모든 걸 갈아엎었다. 그때 PD수첩에서 함께 일하던 데이터저널리스트는 뉴스타파로 자리를 옮겼다.”

- 최 전 PD는 2003년 MBC 노조위원장을 맡기도 하는 등 방송 민주화 운동에 오랜 기간 참여했다.

“1986년 12월 MBC에 입사했는데 1년 뒤 노조가 생겼다. 막내 조합원으로 활동했고 1988년 첫 파업을 했다. 당시 황선필 사장은 전두환 정권 대변인을 하다가 MBC 사장에 임명됐다. ‘땡전뉴스’를 하지 않기 위해, 공정 보도를 하려고 파업에 돌입했고 낙하산 사장을 쫓아냈다. 1990년 3당 합당 이후 사측의 노조 탄압이 거세졌고 여기에 맞서 1992년 50일 파업을 하기도 했다. 파업의 목적은 공정방송 조항 보완과 복원이었다. MBC가 자율성을 보장받을 수 있었던 것도 본부장, 사장 등 윗선의 개입을 차단할 수 있는 ‘국장 책임제’ 덕분이었다. 지금은 그러한 조항들이 다 무너진 상태다.”

- 백종문 부사장, 김재철 전 사장, 이진숙 대전 MBC 사장 등 전·현직 경영진들은 과거 조합 활동을 같이 하던 동료들이었는데?

“누구나 언론인으로서 저널리즘 정신을 추구하려는 마음과 이익 추구 욕망이 혼재돼 있을 것이다. 자신과 동료들의 지위를 비교하면서 초심을 잃게 된 사람들 아닐까. ‘왜 나를 대우해주지 않느냐’는 자격지심도 작용했을 거고. 압도적으로 구성원들이 반대했던 김재철씨는 소외된 사람들을 발탁하겠다고 했다. 그가 발탁한 게 현 경영진들이다.”

▲ 이진숙 대전 MBC 사장이 평기자 시절 노동조합 활동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 사장과 최승호 전 MBC PD는 동기다.
▲ 이진숙 대전 MBC 사장이 평기자 시절 노동조합 활동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 사장과 최승호 전 MBC PD는 동기다.
- 2012년 파업 관련 대법원 판결이 늦어지고 있다. 1·2심 재판부는 일관되게 “공정보도는 방송 종사자들의 근로조건”이라고 명시했다. 파업이 갖는 의미를 설명해준다면?

“먼저 2012년 파업 관련 재판이 늦어지는 데는 이유가 있다. 언론 자유에 대한 근본적 문제를 다루는 매우 중요한 판결이기 때문이다. 해고무효, 업무방해 무죄, 손해배상 기각 등이 결론이었다. 이것이 대법원 판례로 남는다면 앞으로 언론 자유를 침해하는 경영진에 맞선 언론인들의 파업은 정당성이 인정된다. 공정한 보도를 할 수 있는 권리는 방송사 구성원들의 근로조건이라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었다. 새로운 이정표가 될 것이다.”

- 야대야 구도로 정권 교체가 현실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언론에 대한 차기 권력의 리더십도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대표적으로 언론을 대하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의 입장은 많이 달랐고 결과도 천양지차였다.

“노무현 대통령은 공영방송에 관여하지 않았다. 차기 권력은 그만큼만 해줬으면 좋겠다. 노무현이 그랬듯 권력은 방송사에 대해 관심을 끄고 그냥 놔두면 된다. 방송사 내부의 언론 자유가 확보되고 정상적인 시스템이 복원될 수 있게끔 국회 정당들이 나서서 현행법부터 합리적으로 바꿔야 한다. 언론장악방지법은 정파의 극단을 잘라내는 법이라고 생각한다. 그 부분을 국회가 동의한다면 MBC 정상화가 이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 JTBC에 대한 선호가 높아지면서 시청자들은 공영방송의 필요성에 의구심을 갖기도 한다.

“잘하고 있는 JTBC에 더해 공영방송이 바로 선다면 기울어진 한국 언론 지형이 지금보다 나아질 것이다. 공영방송이 정상화하면 ‘북풍몰이’가 노골화할 수 없다. 국민들이 실제로 바꿀 수 있는 공영방송을 망가진 상태로 놔둘 이유가 없다. 조선일보 확성기 역할만 하고 있는 공영방송을 제자리로 돌려놔야 한다.”

▲ 최승호 전 MBC PD가 지난 22일 서울 목동의 한 카페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 최승호 전 MBC PD가 지난 22일 서울 목동의 한 카페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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