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은 ‘현장을 사랑하는 기자’였습니다. 그는 늘 민주주의 현장을 지켰습니다. 목소리를 잃은 이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마다하지 않고 달려갔습니다.”(25일, 이제훈 한겨레 편집국장 조사弔詞 중)

지난 22일 오후 ‘불의의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고 손준현 한겨레 기자(대중문화팀 공연담당)가 경북 상주시 서곡동 선영에서 영면에 들었다. 향년 53세. 한겨레는 25일 오전 서울 마포구 한겨레 사옥에서 영결식을 열고 동료의 마지막 길을 추도했다. 이날 침통한 분위기 속에서 한겨레 기자들은 서로를 부둥켜안고 흐느끼거나 눈물을 삼키고 고인의 영정에 헌화했다.

동료 기자와의 다툼이 화를 불러왔다. 손 기자는 지난 21일 오후 공연 취재를 마친 뒤, 한겨레 편집국 국제에디터석 안아무개 기자(46) 등과 술자리를 가졌다. 22일 새벽 2시30분경 두 사람 사이에 시비가 붙었고 말다툼은 몸싸움으로 번졌다. 경찰은 이 과정에서 안 기자가 손 기자를 밀었고 손 기자가 테이블 의자 모서리에 가슴을 부딪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 고(故) 손준현 한겨레 기자가 22일 세상을 떠났다. 동료의 사망 소식에 한겨레 기자들은 깊은 슬픔에 빠졌다. 한겨레 임직원 300여 명은 25일 서울 마포 한겨레 사옥에서 열린 영결식에서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사진=한겨레신문사 제공
▲ 고(故) 손준현 한겨레 기자가 22일 세상을 떠났다. 동료의 사망 소식에 한겨레 기자들은 깊은 슬픔에 빠졌다. 한겨레 임직원 300여 명은 25일 서울 마포 한겨레 사옥에서 열린 영결식에서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사진=한겨레신문사 제공

손 기자는 응급실로 옮겨져 치료와 수술을 받았으나 22일 오후 4시15분경 숨을 거뒀다. 24일 실시된 부검은 ‘외부 충격에 의한 간 파열’로 1차 소견이 나왔으나 공식적인 결과는 25일 오후 현재 경찰에 회부되지 않았다.

안 기자의 경우 22일 오후 9시 경찰에 자진 출석해 조사를 받았고 경찰은 혐의가 있다고 판단해 안 기자를 긴급체포한 뒤 24일 폭행치사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서울중앙지법 강부영 영장전담 판사는 25일 오후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하면 구속 사유와 필요성이 인정된다”며 안 기자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이 사건은 최초 보도되기 전 한겨레 기자가 타 언론사 기자들에게 ‘사건 보도를 자제해주실 수 있을지 간곡히 요청한다’는 내용을 담은 글이 SNS상에서 돌아 보도 통제 논란이 일었다. 

이에 대해 안수찬 전 한겨레21 편집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두 사람이 모두 소속된 조직이 여러 측면을 감안하지 못하는 단발성 사건 보도를 자제해달라고 여러 언론사에 요청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대단한 조직이 아니라 평범한 유족들도 그렇게 요청한다. 이를 수용할지 말지 보도할지 말지는 각 매체의 판단이다. 다만 그 보도의 내용과 수준은 각 매체가 책임질 일”이라고 밝혔다. 

한겨레는 23일 온라인 사과문을 통해 “한겨레신문사 구성원 사이에 불미스러운 사건이 발생해 독자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드리게 된 점을 깊이 사과드린다”며 “뜻하지 않은 불행한 사태로 유명을 달리한 고 손준현 기자의 명복을 빌며, 유족들께 헤아릴 수 없는 죄송한 마음과 깊은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 아울러 한겨레신문사는 이번 사건의 진상이 명백히 규명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두 사람의 정치적 성향 차이 때문에 다툼이 발생했다는 등 근거 없는 소문도 ‘찌라시’ 형태로 퍼졌다. 하지만 서울 중부경찰서 관계자는 25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정치적 견해 차이로 다툼이 일어났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며 “조서나 현장에 있었던 동석자들, 해당 행위자의 이야기를 종합해도 그런 이야기는 전혀 근거가 없다”고 밝혔다.

▲ 고(故) 손준현 기자의 유가족들이 25일 영결식에 앞서 한겨레 편집국을 방문해 손 기자의 빈자리를 어루만지고 있다. 사진=한겨레신문사 제공
▲ 고(故) 손준현 기자의 유가족들이 25일 영결식에 앞서 한겨레 편집국을 방문해 손 기자의 빈자리를 어루만지고 있다. 사진=한겨레신문사 제공
기자들의 과열된 취재도 한겨레 기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지난 23일 서울 중구 서울백병원에 마련된 빈소에 카메라를 대동한 TV조선 취재진들이 ‘정치적 견해 때문에 다툼이 있다고 들었다’며 취재를 요청해 한겨레 측이 거부했다는 것. 한겨레 관계자는 “그날(23일) 오후 TV조선 취재진 3명이 빈소를 찾았는데 정치적 견해에 따른 다툼이냐고 말해 사실과 다르다고 했다”며 “그 뒤에도 또 다른 TV조선 기자가 와서 유족 인터뷰를 요청했다. 유족들은 언론 대응을 한겨레에 일임하겠다는 입장이었고 거부 의사를 밝혔다”고 말했다.

한겨레 기자들은 동료의 죽음에 깊은 슬픔에 빠져 있다. 한겨레의 한 기자는 “안 기자가 체포된 사실을 몰랐을 정도로 우리도 소식을 듣고 정말 깜짝 놀랐다”며 “언론 보도와 사과문 이후 네티즌들의 비난 댓글에 구성원들이 적지 않은 상처를 입은 상태”라고 말했다. 

최성진 언론노조 한겨레지부장은 24일 “확인되지 않은 사실관계에 입각한 기사, 그릇된 정보를 주요하게 키우는 기사는 큰 슬픔으로 몸을 가누기 힘든 유족과 저희를 아예 망가뜨릴지도 모른다”며 “보도하더라도 조금 더 단단한 팩트에 입각한 기사를 내보내달라”라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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