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길을 걷고 있다. 차를 탄 남성이 말을 건다.
“수요일과 목요일 12시에 항상 여기를 지나가네요?”

영국 30대 페미니스트 작가 로라 베이츠(Laura Bates)는 이 말을 들은 후 성차별을 느꼈다고 한다. 로라 베이츠는 이 경험에 대해 “길거리 희롱은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성차별, 성희롱, 성폭행 스펙트럼을 가장 뚜렷하게 드러내는 현상”이라며 “시작은 작지만 그 작은 침해를 허용한다면 더 심각한 희롱에도 면죄부를 주게 되고 나중에는 전면적 폭행을 허용하게 될 것”(로라 베이츠의 책 ‘일상 속의 성차별’, 180p)이라고 밝혔다.

이후 로라 베이츠는 일상적인 성차별 경험을 기록하고 모으는 아카이빙 사이트 ‘일상 속 성차별 프로젝트(everyday sexism)’라는 사이트를 만든다. 이 사이트에는 2015년에 게시글이 10만 건이 돌파할 정도로 인기를 얻었다.

▲ 영국 '가디언'에서 칼럼을 연재하고 있는 로라 베이츠.
▲ 영국 '가디언'에서 칼럼을 연재하고 있는 로라 베이츠.
이 사이트에는 성기사진을 받았다는 9살짜리 소녀부터 남편의 절친에게 맞았다는 여성, 백인 친구들과 함께 클럽을 갔다가 혼자만 입장을 거부당한 흑인 여성, “강간당할 일이라도 있으면 다행이다”라는 말을 들은 장애인 여성 등 다양한 일상 속 성차별 사례들이 접수됐다.

사이트에 접속하면 누구나 자신의 성차별 경험을 쓸 수 있다. 실명이나 가명을 써도 되고, 자신의 기록을 남기는 것이 찝찝하다면 로라 베이츠에게 메일을 보내 간접적으로 포스팅할 수도 있다. 게시물에는 일터, 공공장소, 집, 대중교통, 학교, 대학, 미디어 등 어떤 일상적 장소에서 성차별을 경험했는지 카테고리를 나눌 수 있고 자신만의 태그를 곁들일 수 있다. 이용자들은 강간, 성희롱, 언어차별 등 다양한 태그를 첨부해 자신의 글을 올리고 있다.

▲ 에브리데이 섹시즘 홈페이지.
▲ 에브리데이 섹시즘 프로젝트의 홈페이지.
2012년부터 시작된 프로젝트지만 사이트 내에는 지금도 활발하게 제보가 올라오고 있다. 4월23일 올라온 한 글에서는 길거리 성희롱을 당했다는 여성, 남편과 함께 있었지만 ‘남성적’ 대화주제에 대해 여성은 알지 못할 거라 생각된 탓에 대화상대에서 완전히 배제된 여성, 운전을 하며 폭언을 들은 여성 등 하루에도 수십건의 글이 업데이트 되고 있다.

로라 베이츠는 이러한 차별이 너무나 일상화돼 무시돼 왔다며 사소한 성차별 사건들을 한데 모으면 결국엔 중요한 문제로 인식될 것이라 생각했다고 한다. 로라베이츠는 2015년 대영 제국 메달을 받고, 영국 ‘가디언’에 매주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로라 베이츠는 가디언 칼럼을 통해 이 프로젝트가 시작할 당시를 묘사했다. 로라 베이츠는 프로젝트를 시작하자마자 ‘강간 협박’을 받았다고 한다. 페미니즘에 반대하는 남성들이 “잘난 척 그만하고 탐폰이나 갈아라” 같은 말부터 “강간하겠다”, “네 남편이 불쌍하다”는 메시지를 보냈고 생방송 인터뷰에서는 “유머감각이 없으니 친구도 없지 않느냐”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이러한 협박은 로라 베이츠의 프로젝트가 일상적 성차별 경험과 같은 ‘사소한’ 것들을 다루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로라 베이츠는 “‘사소한 문제들’이야말로 여성이 2등 시민으로 취급받는 현실을 정상적인 것, 일상적인 것으로 만드는데 기여한다”며 “이 사소한 차별은 세상의 모든 차별과 불평등으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로라 베이츠는 “지난 5년 간 일상 속의 성차별 프로젝트 사이트를 운영한 경험 속에서 절망보다 희망을 본다”며 “여성들이 분노와 슬픔, 트라우마를 쏟아낸 것을 두고 5주년을 축하하자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 과정에서 드러난 강인함, 연대, 저항을 떠올려보면 마냥 슬퍼할 일은 아니다”라며 이 사이트의 5주년을 자축하는 글을 남겼다.

번역참고: 뉴스 페퍼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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