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대선 이후 기구 축소 및 폐지 가능성이 거론되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미디어 규제의 정당성을 찾는 연구를 학계에 의뢰한 것으로 확인됐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와 언론분야 학계측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달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한국언론학회, 한국방송학회, 한국언론법학회 등 언론관련 3개 학회에 ‘스마트미디어시대의 규제 방안 연구’를 추진하며 각 학회에 2000만 원씩 총 6000만 원을 지원했다.

현재 주요 대선후보 중 미디어 관련 정책을 공개적으로 발표하지 않은 홍준표 후보를 제외한 후보들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통신심의 등 기능을 축소하거나 기구폐지, 혹은 방송통신위원회에 통합하는 정책을 발표했다. 다수 선진국에서는 방송통신심의 규제를 사업자의 자율규제에 맡기기 때문에 조직의 지속가능성이 불투명한 상황이다.

▲ 관련 세미나가 기획되면서 처음에는 '정당성 고찰'이라는 주제로 기획됐고, 학계 내부에서도 이 같이 공지된 것으로 알려졌다.
▲ 관련 세미나가 기획되면서 처음에는 '정당성 고찰'이라는 주제로 기획됐다. 

따라서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입장에서는 불리한 조직개편을 앞두고 ‘스마트 미디어 시대’라는 명분으로 규제를 재정립해야 한다는 주장을 학계의 목소리를 빌리며 조직을 보호하려 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그동안 방통심의위측 연구원들은 세미나 등을 통해 뉴미디어 규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펼쳐왔다.

실제 미디어오늘이 입수한 초안에 따르면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최초 검토 단계에서 만든 토론회 주제 및 발제 주제는 ‘규제의 정당성 고찰’로 규제기관으로서 역할을 지속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그러나 공지된 최종 주제는 ‘규제방안 연구’로 바뀌었다.

학계 관계자에 따르면 방통심의위측은 ‘정당성 고찰’ 연구를 원했으나 학계에서 반발해 주제가 바뀐 것이다. 반면 방통심의위 조사연구팀 관계자는 “내부 논의 과정에서 ‘정당성 연구’는 여러 가지 안 중 하나로 나왔고, 당시는 확정이 되지 않았던 것”이라고 말했다.

대선을 앞두고 조직개편에 대응한 연구가 아니냐는 지적에 방통심의위 관계자는 “특별히 이 때라서 추진하는 건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기획단계에서 ‘방송통신 정책기구 개편 논의 등에 대비한다’고 학계에 알렸다고 지적하자 이 관계자는 “연구를 하기 위해 필요했던 하나의 목적이다. 소개하는 내용”이라고 해명했다.

▲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사진= 금준경 기자.
▲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사진= 금준경 기자.

학계가 후원을 받으며 연구를 해왔던 것은 관행이었다. 통상적인 연구과제와 비교하면 2000만 원이란 액수가 크다고 보기도 어렵다. 하지만 방통심의위측 문건에 나타나듯 사실상 정부기관 역할을 하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의도가 다분한 연구과제를 수용했다는 점에서 학계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나올 수밖에 없다.

지난 24일 한국방송학회와 한국언론학회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후원하는 토론회를 통해 관련 연구 내용을 발표했으며 27일 한국언론법학회의 토론회가 예정돼 있는데 방통심의위가 ‘홍보 효과’를 위해 토론회를 열도록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학계 관계자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조직보호를 위한 연구였고, 학계는 나름대로 저항은 했지만, 자율성과는 거리가 멀다”면서 “필요한 연구이긴 하지만 방통심의위가 제시하는 연구방향에 맞춰간다면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