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정당이 24일 의원총회를 열고 유승민-홍준표-안철수 3자 ‘원샷 단일화’를 제안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지지율 차이로 보면 사실상 백기투항이다. 장기적으로는 바른정당을 없애는 것 아니냐는 해석까지 가능하다. 유승민 후보는 완주를 목표로 했지만 당내에서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도 힘든 대선을 이 상태로 치르는 건 불가능하다. 여당의원으로서 대통령 탄핵에 합류하며 합리적 보수를 지향했던 바른정당은 왜 몰락했을까?

지역조직 이탈

대선이 끝나면 당장 내년 6월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있다. 지방선거에 출마할 바른정당 소속 정치인들은 이대로 선거를 치를 수 없는 상황이다. 단일화 찬성파인 장제원 의원은 지난 21일 한겨레TV 김어준의 파파이스에서 “완주의 조건이 있다”며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지지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 뒤 “국회의원은 선거가 3년 남았지만 지방 표를 가지고 오는 사람은 광역의원·구의원·시의원 등 지역의원들”이라며 “1년 후에 있을 지방선거는 대선이 결정적 역할”이라고 말했다. 국회의원 입장에서 자신의 표를 가져다 줄 지방의원들의 눈치를 봐야한다는 뜻이다.

▲ 유승민 바른정당 대선 후보가 19대 대통령 선거를 2주 앞둔 25일 오전 서울 용산구 한국여성단체협의회에서 열린 대선 후보 초청 성평등정책 간담회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 유승민 바른정당 대선 후보가 19대 대통령 선거를 2주 앞둔 25일 오전 서울 용산구 한국여성단체협의회에서 열린 대선 후보 초청 성평등정책 간담회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그는 “(나와) 정치적 생명을 같이하고 나온 분들도 (자유한국당으로) 돌아가겠다고 하고 있고, 이미 돌아가고 있다”며 “이런 상황이 되면 (유승민 후보가) 완주하는 것이 맞느냐, 완주하는 것이 바른정당의 미래와 유승민의 정치생명에 도움이 되는지 의문이 생긴다”고 말했다. 바른정당의 미래와 유승민의 정치생명을 명분으로 하지만 실제로는 각 의원들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지난 16일 유승민 캠프 선대부위원장 이종구 의원은 기자들에게 “바른정당 의원들이 안철수 후보 지지선언을 해야한다”고 말했고, 지난 20일 김재경 의원은 기자들에게 문자를 통해 “보수후보들은 대한민국의 존립과 국민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 즉시 단일화에 나서야 한다”며 “유승민, 홍준표 후보는 물론이고, 안철수 후보도 이를 부정하지 않는다면 단일화 논의에 동참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내년 지방선거를 위해 보수성향의 후보가 분열돼 있어선 안 되며 선거를 위해선 당도 하나로 통합된 상태를 원할 가능성이 크다.


선거 자금문제

지지율이 낮으면 돈 걱정도 하게 돼있다. 득표율 15%를 넘으면 선거운동에 사용한 돈을 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전액 보전받을 수 있고, 10~15%를 득표하면 쓴 돈의 절반을 받을 수 있다. 10%미만이면 돈을 모두 날리게 된다. 공보물 인쇄·발송에만 40억원 이상의 돈이 든다고 하고, 선거운동원 밥값 등 부대비용을 합하면 실제 사용액은 60억원을 훌쩍 넘는다고 한다.

▲ 지난 21일 국회 둔치축구장에서 열린 '유승민 후보 자전거유세단 발대식'에 참석한 유 후보와 바른정당 소속 국회의원, 캠프 관계자들이 대선승리를 다짐하며 취재진을 향해 손을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지난 21일 국회 둔치축구장에서 열린 '유승민 후보 자전거유세단 발대식'에 참석한 유 후보와 바른정당 소속 국회의원, 캠프 관계자들이 대선승리를 다짐하며 취재진을 향해 손을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바른정당이 선거유세차량이 아닌 자전거를 타면서 유세를 하는 등의 모습은 소탈한 이미지를 위한 전략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실제론 선거비용이 없어서다. 민주당·국민의당·한국당은 펀드발행, 당사를 담보로 대출을 받는 등 최대 250억원까지 마련했지만 바른정당은 대출이나 펀드 발행 없이 선거보조금 한도 내에서 대선을 치른다는 방침이다. 선거비용을 보전받을 가능성이 극히 낮은 상황에서 대출을 상환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 18일 선관위에서 바른정당에 지급한 보조금은 63억원이다. 정책공약집을 25일 현재까지 발행하지 못한 이유 역시 이와 무관하다고 볼 수 없다.

문제는 낮은 지지율

결국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 적폐세력과 선 긋고 합리적 보수정당을 만들겠다는 명분은 낮은 후보 지지율 앞에서 무너졌다. 유승민 후보는 최근 의석수 6석에 불과한 정의당 심상정 후보에게도 오차범위 내라곤 하지만 지지율이 밀리게 됐다. 유 후보 발언에 무게감이 실릴 수 없다.

바른정당의 후보 지지율이 낮은 이유는 여러 가지다. 일단 적절한 후보를 찾지 못한 게 크다. 차기 대권후보가 마땅치 않았던 건 박근혜 정부의 새누리당 시절부터 여권의 고민이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제대로 거취를 정하기도 전에 사라지면서 바른정당의 위기는 예견됐다. 김종인 의원, 정운찬 전 총리 등과 접촉도 있었지만 대중적 호감도나 지지율 모두 부족해 영입할 유인을 찾지 못했다.

또 다른 원인에는 언론의 냉대도 있다. 구 여권 진영은 조중동 등 신문이나 종편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선거를 치러왔다. 하지만 이들은 유승민을 구 여권의 후보로 인정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후보가 20일 오전 인천 남동구 모래내시장에서 선거유세를 펼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후보가 20일 오전 인천 남동구 모래내시장에서 선거유세를 펼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지난달 마지막주 주간조선에는 이런 분위기가 잘 담겨있다. “홍준표는 바른정당과의 후보 단일화도 ‘필수’라고 보고 있다. 현재 유승민 의원과 남경필 경기지사가 경쟁하고 있는 바른정당 후보 경선에서 누가 후보가 되더라도 자유한국당 후보와의 단일화가 필수적이다.”, “홍준표는 정치 이력만 보면 사실 바른정당과 척을 질 이유가 없다. 그 스스로 친박, 친이도 아닌 무계파로 홀로서기를 해왔다고 주장해왔기 때문이다. “친이계는 동업자일 뿐”이라고 강조해왔지만 이명박 대통령과의 친분 때문에 오히려 친박들의 경계 대상이 됐었다.“

비박으로 분류된 홍준표와 바른정당의 단일화가 어색하지 않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밖에 언론에서도 안철수 후보를 적극 띄우고 홍준표 후보에 주목하는 모양새지만 유승민 후보는 찬밥신세다.

▲ 지난 21일 국회 둔치축구장에서 열린 '유승민 후보 자전거 유세단 발대식'에서 캠프 관계자들이 선거로고송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지난 21일 국회 둔치축구장에서 열린 '유승민 후보 자전거 유세단 발대식'에서 캠프 관계자들이 선거로고송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유승민 책임론

대부분 대선이 그렇지만 특히 이번 대선은 개인기로 구도를 이겨내기 힘들다. 유 후보가 반드시 부족하다고만 볼 순 없다. 바른정당은 유승민-남경필 당내 경선에서부터 수준 높은 정책토론을 보여줬다는 호평을 받아왔고, 유 후보는 1,2,3차 토론에서도 대체로 심상정 후보와 함께 토론을 잘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럼에도 유 후보는 지지율이 낮다. '유승민 책임론'이 나오는 이유다.

내부분열을 막지 못했다는 비판도 나올 수 있다. 장제원 의원은 대선주자를 가장에 비유한 적 있다. “아버지가 밖에 나가서 돈을 잘 못 벌어오면 아들들 모아놓고 ‘같이 잘 살아보자’ 이러면 아들이 아르바이트하고 어머니도 돈을 벌어 넓혀 나갈텐데, 아버지는 ‘난 바른데 너는 왜 그래’ 그러면 안 된다. 33명(바른정당 의원 수)이 똘똘 뭉쳐 뛰게 하는 리더십을 유승민 후보가 보여줘야 한다.”

득표 전략에 있어 유승민 후보가 홍준표 후보에 밀린 것도 일부 사실이다. 홍준표 후보는 ‘돼지발정제’ 사건으로 지지세가 주춤했지만 여전히 상승국면에 있다. 홍준표의 막말은 계산된 발언이라는 분석이 우세하고 지지층 결집에 성공하고 있지만 유 후보는 갈수록 전략이 모호해지고 있다. 한 예로 합리적인 보수 이미지를 내세웠지만 문재인 후보를 향해 “주적이 누구냐”고 묻는 등 홍 후보와 차별성 없는 전략을 사용했다.

▲ 유승민 바른정당 대선 후보가 19일 오전 서울 노원역 인근 거리에서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 선거운동원들과 인사하고 있다. 사진제공=유승민 캠프
▲ 유승민 바른정당 대선 후보가 19일 오전 서울 노원역 인근 거리에서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 선거운동원들과 인사하고 있다. 사진제공=유승민 캠프

바른정당은 합리적인가

바른정당에 대해 다수 언론이 합리적이라고 평가했고, 소속 의원들도 합리적 보수정당을 추구했다. 하지만 유권자들에게 합리적 보수로 다가가는 데는 실패했다고 볼 수 있다.

그간 대선에서는 기존 양당구도에서 구 새누리당 계열의 정당과 민주당 계열의 정당이 권력을 주고받아왔다. 박근혜 탄핵 이후 시민들의 선택은 정권교체가 됐다. 이는 민주당 계열의 정당을 택하겠다는 뜻이다. 양당이 각각 똘똘 뭉쳐 지지를 몰아줬던 지난 대선에 함께 했던 세력이 박근혜만 제거했다고 합리적 세력이 된다는 건 설득력이 떨어진다. 2012년 대선당시 박근혜 후보 중앙선대위에는 김무성 의원이 의장단으로 남경필, 유승민 의원은 부위원장으로 합류했다. 

▲ 지난 21일 국회 둔치축구장에서 열린 '유승민 후보 자전거 유세단 발대식'에 참석한 정병국(왼쪽), 김무성(오른쪽) 바른정당 선거대책위원장이 유승민 후보와 자전거를 타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지난 21일 국회 둔치축구장에서 열린 '유승민 후보 자전거 유세단 발대식'에 참석한 정병국(왼쪽), 김무성(오른쪽) 바른정당 선거대책위원장이 유승민 후보와 자전거를 타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바른정당 의원들의 탄핵찬성은 큰 결단이었지만 구 여권진영 내부에서는 배신의 이미지로 남을 수밖에 없고, 그 외 유권자들에게는 비박계가 반대 계파를 숙청한 사건 이상을 이미지를 주지 못했다. 특히 구 여권 진영이 이념과 정책으로 선거를 치르고 다음 선거에서 이에 대해 평가받지 않았고, 주로 인물과 이해중심으로 이합집산을 반복해왔던 세력임을 국민들은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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