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현 전 중앙일보·JTBC회장은 전두환 정권 때 청와대에서 일했다. 대통령 비서실장의 ‘특별보좌관’이라는 자리를 30대인 홍석현을 위해 만든 이유에는 홍석현 개인의 스탠포드 경제학 박사·세계은행 근무 등의 경력만 있지 않다. 이승만 정권에서 법무장관·내무장관을 역임한 아버지 홍진기, 이건희 당시 삼성그룹 부회장의 부인인 누나 홍라희, 김기춘과 함께 유신헌법을 만든 장인 신직수 등 주변인물과 무관할 수 없다.

홍석현은 노무현 정권 때도 국정에 참여했다. 언론인 이봉수가 “남북문제 등에서 조선·동아일보보다 전향적이지만, 자본의 이익을 대변하는 데는 어디보다 열렬”하다고 평가한 ‘실용보수’ 중앙일보의 사주라는 사실을 외면할 수 없다. 노무현 정권은 미국정부의 사전 동의 없이 홍석현을 주미대사로 내정했다. 당시 홍석현이 주미대사를 발판 삼아 유엔 사무총장을 하려는 게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왔다. 분명한 건, 1000여개의 차명계좌를 통해 보광그룹에서 탈세를 저질러 실형을 선고받은 홍석현 개인 자질을 고려한 인사로 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 노무현 대통령과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이 2004년 2월14일 오후 청와대 상춘재에서 회견에 앞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노무현 대통령과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이 2004년 2월14일 오후 청와대 상춘재에서 회견에 앞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홍석현은 세 번째 국정 참여를 눈앞에 두고 있다. 지난달 중앙일보·JTBC 회장직에서 물러난 뒤 직접 출마할지, 누굴 지지할지 관심을 모았다. 지난 12일 한겨레 인터뷰에서 불출마를 선언하며 “정의당 심상정 대표나 노회찬 원내대표가 노동부 장관을 하면 좋겠다”고 진보적 스탠스를 취했다. 안철수 후보가 아닌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지지하는 메시지로 해석됐다.

문재인은 즉각 화답했다. 홍석현은 문재인 후보가 12일 자신의 집으로 찾아와 장관을 제안했지만 ‘내가 장관할 군번은 아니’라며 거절했고, 대신 북한특사나 미국특사를 원한다는 뜻을 전했다고 밝혔다. 문재인 캠프 박광온 공보단장은 “구체적 자리를 (제안)한 것은 아닌듯하다”며 반박했지만 “자택에 방문해 외교안보 관련 사항에 있어서 많은 얘기가 있었다”고 일부 내용은 인정했다. 대선출마설이 나돌았던 인사를 만난 것만으로 충분히 문제제기가 가능하다. 16일 홍석현은 청와대가 삼성을 통해 JTBC의 손석희 사장 교체압력을 행사했다는 내용을 폭로했다.

홍석현은 대선출마와 관련해 그간 모호한 태도를 보였다. ‘대권도전이 불가능하다’는 지적과 ‘JTBC는 대권용’이라는 불편한 의심을 받았다. 대선불출마 선언과 JTBC 외압에 대해 폭로하면서 이런 지적과 의심을 어느 정도 피해간 셈이다. 당선이 유력한 문재인 후보는 손석희에 대한 외압을 막은 정의로운 인물로 거듭난 홍석현에게 손을 내민 모양새가 됐다.

홍석현, 왜 문제인가

홍석현의 등장은 언제나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속으로 홍석현과 삼성의 관계가 일부 틀어졌다는 보도도 나왔지만 홍석현은 삼성집안사람이다. 홍라희가 리움과 호암미술관장에서, 홍석현이 중앙일보·JTBC 회장에서 내려온 이유를 삼성과 관계개선으로 보는 분석도 있다. 일각에서 홍석현-중앙일보-삼성-참여정부의 연관성을 지적했지만 문 후보는 홍석현에게 손을 내밀었다.

▲ 지난 1월21일 열린 13차 촛불집회에서 한 시민이 이재용 구속을 주장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최창호 작가
▲ 지난 1월21일 열린 13차 촛불집회에서 한 시민이 이재용 구속을 주장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최창호 작가

박근혜 탄핵을 외친 촛불광장엔 “이재용을 구속하라”는 구호가 함께 존재했다. 적어도 이번 ‘촛불대선’에선 뇌물을 주고받은 박근혜와 삼성에 대한 단죄가 필요하다. 이는 반세기동안 이어진 부정한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는 역사적 기회다. 하지만 ‘촛불대선’ 직전 문 후보의 행보를 보면 ‘삼성X파일’의 금품 전달자로 의심받는 홍석현에게 정치적 면죄부를 줬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당선을 위한 정치공학적 판단으로 보기도 어렵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기울어진 운동장 때문에 각각 김종필·정몽준 등 보수세력과 손을 잡은 것에 대해 국민들이 이해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자신의 지지층만으로 정권교체가 가능한 상황에서 왜 홍석현과 손을 잡아야할까? 홍석현은 전국적 지지도 뿐 아니라 문 후보 지지층에서 호감을 얻는 인물도 아니다.

문 후보의 최근 우클릭·친재벌 성향은 공약에도 반영되고 있어 의문을 더한다. 지난 14일 문재인 캠프가 발표한 10대 공약에는 ‘반부패·재벌개혁’ 공약에 “기존 순환출자 해소 추진” 내용이 있었지만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최종 제출한 10대 공약에는 이 부분이 빠졌다. 박영수 특검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관련 조사에서 중점을 둔 것 중 하나가 ‘순환출자 해소’를 앞두고 청탁이 있었는지 여부였다.

▲ 지난 14일 문재인 캠프가 발표한 10대 공약에는 ‘반부패·재벌개혁’ 공약에 “기존 순환출자 해소 추진” 내용이 있었지만(사진 윗부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최종 제출한 10대 공약(아랫부분)에는 이 부분이 빠졌다.  자료=문재인 캠프, 선관위 홈페이지
▲ 지난 14일 문재인 캠프가 발표한 10대 공약에는 ‘반부패·재벌개혁’ 공약에 “기존 순환출자 해소 추진” 내용이 있었지만(사진 윗부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최종 제출한 10대 공약(아랫부분)에는 이 부분이 빠졌다. 자료=문재인 캠프, 선관위 홈페이지

문재인 캠프 관계자는 24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김상조 교수(문재인 캠프 새로운대한민국위원회 부위원장)가 재벌개혁을 강조해왔고 입장이 바뀐 건 아니”라며 “현대차 정도를 제외하고는 해소된 상황이라 우선순위가 낮아졌을 뿐”이라고 말했다.

박근혜의 ‘줄푸세’를 만들었던 김광두 서강대 교수와 리셋코리아 기업지배구조 분과에 참여하고 있는 김상조 한성대 교수가 문재인 캠프에 합류해 만든 ‘J노믹스’에 대해 JTBC는 경제민주화가 빠지고 성장이 강조됐다고 지적했다.

뗄 수 없는 지식과 권력

홍석현은 모든 지식은 그 자체가 권력을 지니고 있으며 어떤 권력도 지식의 정당성 없이 행사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인물로 볼 수 있다. 권력의 성장은 지식의 성장과 연결돼있다. 그간 권력은 비판적인 지식인을 탄압하는데 앞장섰지만 민주주의 사회의 권력은 지식의 생산적 측면에 더 집중한다. 삼성가는 정치인 양성이 아닌 언론을 소유하며 일찍부터 지식의 중요성을 알았고, 최근엔 중앙일보(보수)-JTBC(진보) 뿐 아니라 드라마·영화·광고 등 의식산업을 장악하는데 성공했다.

홍석현이 참여하는 여시재 이사회는 매달 전문가를 초청해 토론회 형식으로 조찬모임을 연다. 저서 ‘제3의 개국’에서 홍석현 대망론을 주장한 조한규 전 세계일보 사장은 도올 김용옥, 이홍구 전 총리, 정운찬 전 총리, 사공일 전 재무부 장관, 송호근 서울대 교수 등이 중앙일보와 JTBC를 통해 목소리를 내며 홍석현과 직간접적 관계가 있음을 소개했다.

▲ 지난달 24일 유튜브에 공개된 유홍준과 홍석현 인터뷰. 사진=유튜프 화면 갈무리
▲ 지난달 24일 유튜브에 공개된 유홍준과 홍석현 인터뷰. 사진=유튜프 화면 갈무리

호남과 민주화운동을 껴안는 의미가 큰 박석무 전 의원이 이끄는 다산연구소를 중앙일보 건물 7층에 내줄 정도로 지식과 지식인에 대한 그의 애착을 조 전 사장은 높이 평가했다. 김종필 전 총리 증언록을 펴내 삼성과 JP간 서먹했던 관계를 개선한 것 역시 홍석현의 영향력을 높이는 활동이었다. 회장직에서 내려온 직후엔 유홍준과 인터뷰로 자신의 뜻을 밝히기도 했다. 홍석현의 강연을 들어본 사람은 그가 단순한 인맥관리를 넘어 그의 식견도 뛰어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설 경우 문재인이 삼성 혹은 홍석현에게 의존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여시재 이사장)는 지난달 주간경향 인터뷰에서 “이광재 전 강원지사는 예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삼성자동차 문제 해결 대책위원장을 맡은 시절(1999년)에 만났다”며 “당시 내가 금융감독위원장이었는데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함께 수시로 나를 찾아왔다”고 참여정부 인사들과 인연을 회고했다.

그의 다음 말이 인상적이다. “2002년 선거 당시 삼성에서 국가경영전략서를 만들었는데, 당시 한나라당은 여의도연구소가 있으니 전략서를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노무현 캠프는 당시 급조된 캠프여서 삼성에서 나온 보고서 몇 개를 참고했을 뿐이다.”

인수위 없는 조기대선으로 출범할 차기 정부는 노무현 정부보다 더 준비됐다고 볼 수 있을까? 선거가 2주 앞으로 다가왔는데 정의당·국민의당과 달리 문재인 캠프는 최종 정책공약집조차 나오지 않았다.

차기 정부가 참고할만한 정책과 인사 풀은 여시재와 리셋코리아를 벗어나기 어려울 수 있다. 총 13개 분과로 이뤄진 리셋코리아 각 분과별 구성을 보면 해당 분야 정책이나 인사를 차기정부가 바로 끌어갈 수 있는 구조다. 또한 통일문제와 외교문제에 전문성을 보이고 있는 여시재의 경우 홍석현이 ‘유연한 싱크탱크’의 모델로 높이 평가하고 있어, 외교특사 자리를 노리고 있는 홍석현의 영향력을 차기 정부가 쉽게 뿌리치기 어려울 수 있다.

세간엔 홍석현이 2022년에 출마하더라도 김대중 전 대통령 출마 때와 같은 나이기 때문에 차기 정부에서 어떤 역할을 맡을지 중요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문재인 후보는 “병역·부동산·세금·위장전입·논문에 문제없는 사람만 고위공직자가 될 것”이라고 약속했다. 재벌에겐 예외가 될까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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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후보는 세금 문제가 없는 인사를 약속했지만 홍석현은 탈세로 대법원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인물이다. 사진=문재인 후보 선거공보물.
▲ 문재인 후보는 세금 문제가 없는 인사를 약속했지만 홍석현은 탈세로 대법원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인물이다. 사진=문재인 후보 선거공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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