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대선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서울특별시선거관리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장애인도 참정권을 정당하게 행사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장애인에게도 한 표가 주어지지만 이들이 후보자를 꼼꼼하게 점검하고 투표까지 무사히 마치기란 쉽지 않다.

이날 참석자들은 2층에 설치된 투표소 건물에 엘리베이터가 없거나, TV 정책토론회에는 화면 해설이 제공되지 않아 정보를 파악할 수 없거나 장애인거주 시설에 선관위 직원도 없이 자신들끼리 거소투표를 하고, 정신병원에 입원한 이들은 투표날짜도 알 수 없었다는 등의 문제를 지적했다.

▲ 19일 2차 대선후보 TV토론회에는 5명의 후보와 1명의 사회자가 하는 말을 1명의 수화통역사가 담당했다. 사진=KBS 화면 갈무리
▲ 19일 2차 대선후보 TV토론회에는 5명의 후보와 1명의 사회자가 하는 말을 1명의 수화통역사가 담당했다. 사진=KBS 화면 갈무리

지난 19일 대선후보 2차 TV토론회는 첫 스탠딩토론회라며 큰 관심을 모았다. 이날 방송에 등장하는 주 인물은 후보자 5명과 사회자 등 총 6명이다. TV화면 아래엔 이들이 하는 말을 수화통역자 1명이 모두 전달하고 있다. 후보간 질문과 답변이 뒤섞인 자유토론이 진행되는 가운데 수화통역자는 이들의 발언을 온전히 전달할 수 있었을까? 두 명 이상이 동시에 공방을 벌일 경우 수화통역으로 전달된 메시지는 대체 어떤 후보가 한 말인지 파악하기 어렵다.

이런 문제점에 대안으로 주목받은 TV토론이 있다. 지난해 미국 대선후보 1차 TV토론을 D-PAN이 중계한 화면을 보면 토론자와 사회자에게 각각 한 명의 수화통역사가 배치돼있다. 청각장애인을 위한 자막도 나왔다. 여러 명이 동시에 말해도 이를 누가 말했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D-PAN은 비영리 공영기구로 수화통역전문 콘텐츠를 만들어왔다. 미국 방송사들이 수화통역을 준비하지 않자 이곳에서 자체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한 것이다.

▲ 지난해 미국에서 열린 대선후보 TV토론회에서 D-PAN TV는 토론 참가자 각각 수화통역사를 담당하게 해 주목을 받았다. 사진=D-PAN 화면 갈무리
▲ 지난해 미국에서 열린 대선후보 TV토론회에서 D-PAN TV는 토론 참가자 각각 수화통역사를 담당하게 해 주목을 받았다. 사진=D-PAN 화면 갈무리

사실 한국에서도 이미 2004년 11월 국가인권위원회가 국회의장과 중앙선관위 위원장에게 “선거방송에서 수화통역 의무화가 필요하다”고 의견을 표명했다.

“지난 제17대 총선시 후보자합동연설회 등에서 자막 또는 수화통역 방영을 제대로 하지 않아 청각장애선거인을 차별했다”며 한국농아인협회 대표 주아무개씨(68세)가 2004년 4월 각 정당 대표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을 상대로 진정했고, 당시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김창국)는 국회의장 및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에게 공직선거및선거부정방지법에 청각장애선거인을 위해 자막 또는 수화통역을 임의적으로 방영할 수 있도록 한 규정을 의무규정으로 개정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표명했다.

현재 공직선거법엔 수화통역이나 자막이 의무사항이 아닌 ‘할 수 있다’라는 임의 조항으로 돼있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된다. 다분히 시혜적인 접근이다.

지난 20일자 조선일보에는 “오늘 ‘장애인의 날’… 유세 현장에 수화통역사 대동하는 대선후보는 3명뿐”이라는 의미있는 기사가 실렸다. 민주주의 꽃이라고도 불리는 대통령 선거 공식운동이 시작됐고 유세현장은 축제를 방불케하는 가운데 장애인들은 이에 동참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유세 활동 시 수화통역사를 배치하는 건 문재인 민주당 후보,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 심상정 정의당 후보 뿐이었다. 모두 당 역사가 오래되고 조직이 갖춰진 정당들이다. 반면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수화통역사를 배치하지 않았다.

▲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 캠프 유세현장에는 수화통역사가 배치돼있다.
▲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 캠프 유세현장에는 수화통역사가 배치돼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5명의 후보 모두 선거공보물을 제출했는데 대부분 후보들은 점자형 공보물에 일반 공보물과 똑같은 양으로 공약 내용을 충실히 반영했다고 조선일보는 전했다. 하지만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 측은 점자형을 ‘요약본’으로 만들었다. 문자형은 16매인 데 비해 점자형은 4매에 불과했다. 장애인들이 선거정보에 접근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정의당 심 후보는 문자형과 점자형 선거공보물 모두 8매로 제작하고,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명함도 추가 제작해 배포하고 있었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장애인 관련 공약에서도 후보들 간 격차가 컸다. 19일 기준으로 홍준표 후보는 4건, 안철수 후보는 7건, 유승민 후보는 2건의 장애인 공약을 냈다. 가장 많은 장애인 공약을 제시한 심상정 후보는 수십 건에 달했다.

언론에서 지적하진 않았지만 장애인들에게 필요한 장치는 더 있다. 시각장애인의 입장에서 투표 보조도구들을 설치해 기표가 정확하게 됐는지 확인할 수 있도록 점자촉지로 만드는 것 등 의견을 더 듣고 개선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장애인들은 평소 가던 투표장소가 바뀌는 것만으로도 투표하러 가기 꺼려지기 마련이다. 시설에 사는 장애인들은 자신의 의사대로 투표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한 노력과 시간이 다른 만큼 선관위와 각 정당들이 자신들의 눈높이가 아닌 유권자의 눈높이에서 참정권이 평등한 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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