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27일 미국 LA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89회 미국 아카데미 영화상 시상식에서 케이시 애플렉이 ‘맨체스터 바이 더 씨’로 남우주연상을 타자 논란이 일었다. 애플렉이 2010년 다큐멘터리 ‘아임 스틸 히어 (I’m Still Here)’를 촬영하면서 프로듀서 아만다 화이트와 카메라 감독 마그달레나 고카로부터 성추행 및 성희롱 혐의로 고소를 당한 사건 때문이었다. 이들은 애플렉이 촬영 당시 여성 스태프를 ‘암소’라고 부르고, 다른 남성 스태프를 시켜 성기를 보여주게 하는 행동을 했다고 주장했다. 이후 에플렉에 대한 비난이 일었지만 아카데미는 그와는 상관없이 상을 줬다.

한국에서도 지난해 10월 ‘○○ 내 성폭력’이라는 해시태그 운동이 시작되면서 영화계 내 성폭력 사례가 나왔다. 올 1월 한 여성 배우는 촬영 전 15세 관람가로 노출신은 없을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지만, 촬영 당일 현장에서 노출신을 찍게 됐다. 상대역인 남성 배우는 여성 배우의 속옷을 찢고, 가슴을 만지고, 바지 안으로 손을 넣었다. 이에 여성배우는 강제추행으로 남성배우를 고소했지만 법원은 “배역에 몰입해 연기했고 업무상 행위”라며 무죄를 결정했다. 이 사건 이후 ‘영화계 성폭력’에 대한 담론이 커졌고 각종 토론회 등이 열리며 영화계 내 성폭력 사건에 대한 영화계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에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는 최근 △스웨덴 △미국 △프랑스 △아르헨티나 △브라질의 영화계 내 성폭력 사례와 대처 시스템에 대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미디어오늘이 영진위가 발표한 보고서를 종합해 해외 영화계의 성폭력 관련 대처 시스템을 정리했다.

1. 스웨덴

영진위는 해당 보고서에서 스웨덴을 가장 모범적인 사례로 뽑았다. 스웨덴 영화계는 영화계 내에 남성중심적인 문화를 바꾸는 시도를 해왔기 때문이다. 스웨덴영화진흥원에서는 영화제작 지원에 남녀 감독 쿼터제를 시행하고 있다. 스웨덴 영진위는 △여성 영화인이 투자를 받고 배급할 수 있는 멘토 프로그램 개발 △첫 번째 작품 이후 차기작을 만드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여성 영화인 재조명 △여성과 남성이 50대 50으로 똑같은 기회를 얻는 것을 목표로 하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그 결과 2005년 19%에 불과했던 여성감독은 2015년 기준 44%로 증가했다.

2. 미국

미국의 영화촬영 현장에서 조합원은 기본계약서에 따라 안전과 처우를 법적으로 보장받는다. 또한 미국영화방송제작자연합(AMPTP)은 누드(노출)나 섹스 장면을 촬영해야 할 경우 특수계약서를 작성해야 한다. 이 특수계약서는 △제작사는 배우 등에 첫 번째 인터뷰에서 노출 혹은 섹스 장면이 포함돼 있음을 사전 통보 △오디션이나 인터뷰에서 배우에게 완전한 노출 요구불가 △노출 혹은 섹스 장면을 촬영할 경우 업무적으로 관계없는 이의 출입 차단 △배우의 사전 서면동의 없이 제작자가 노출 혹은 섹스 장면 스틸 촬영금지 등의 조항이 명시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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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프랑스

프랑스의 경우 성폭력에 관련한 세부지침이 따로 존재하지 않고 ‘직장 내 성희롱’ 차원에서 다뤄진다. 직장 내 성희롱의 경우 형법과 노동법에 의해 처벌되며 직장 내 성희롱은 징역 2년, 3만 유로(약 3600만원)의 벌금형이 부과된다. 지위를 남용한 성희롱의 경우에는 징역 3년, 4만5000유로(약 5400만원)의 벌금이 부과된다.

프랑스 배우의 노동조건을 명시한 단체협약의 경우, 배우의 신체에 관한 사항도 포함돼 있다. 특수한 촬영 환경에 대한 것을 명시한 조항으로 ‘위험한 장소에서 촬영하거나 촬영 자체가 위험한 경우를 대비해 제작사는 관련 보험을 들 의무가 있다’, 또 ‘계약 기간 동안 배우는 신체나 목숨에 해를 가할 수 있는 모든 행동을 삼가야 한다’는 규정을 두고 있다.

4. 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 영화계(2014년 기준)의 경우 공인된 노동조합 수만 1500여 곳에 이른다. 아르헨티나배우연합과 아르헨티나 영화산업노동조합(SICA-APMA)이 대표적이다.

성희롱, 성폭력과 관련해 배우들은 아르헨티나배우연합을 통해 보호받는데 아르헨티나배우연합에서 승인한 계약서에 기초한다. 이 계약서에 따르면 예상하지 않았던 신(노출, 베드신 등)이 추가될 경우에는 계약서를 수정하고, 이에 따른 공증 절차를 반드시 받아야 한다.

5. 브라질

브라질의 경우 매 12분마다 여성에 대한 성폭력이 발생되고 있다는 공공안전부 조사 보고(2016년 통계)가 있을 정도로 성폭력 발생률이 높은 편이다. 브라질 배우의 권리는 노동조합의 권리를 통해서 인정받지만 폭력(성폭력 포함)에 관련해 특별한 규정은 없다.

연기 지도를 위해 신체 접촉이 이뤄질 수 있는 범위를 논하는 것도 계약서(문서)에는 포함되지 않고 역시 구두로 간단히 언급하는 정도다. 현재 한국의 실정과 비슷한 셈이다. 브라질 에서는 ‘Mulher no cinema(Women in the cinema)’라는 단체가 최근 등장해 영화계 내 여성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하고 있다.

영진위는 이 같은 보고서를 최근 발표하며 영화산업 내에서 발생하는 성폭력 등 성범죄와 관련한 정확한 실태 확인을 통해 효율적이며 즉각적인 대응 체계를 갖추겠다고 밝혔다.

영진위는 지난 3월 △영화산업 내 성범죄 실태조사 시작 △피해자를 위한 상담전화(1855-0511) 개설 △영화 현장에서 성희롱, 성폭행 예방을 위한 안내 가이드 책자 제작 △현장 영화인 직업훈련사업에서 ‘영화현장 성평등 교육’ 필수 개설 △지원 사업 신청 시 대상자가 성범죄로 벌금형 이상의 유죄 확정 판결을 받은 적이 없음을 확인하는 확인서 제출 절차 마련 등을 준비했다.

한인철 영진위 공정환경조성센터 팀장은 “영진위가 보다 빠르게 대처하지 못한 것에 반성한다”며 “올해를 영화산업 내 성폭력 근절 원년으로 만들어보려고 한다”고 전했다.

참고자료 : 영화진흥위원회 ‘모두를 위한 영화 현장을 꿈꾸며’(이화정 씨네21 기자)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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