꼼꼼하더라. 특히 가족을 사외이사로 올려놓은 대목에서 실소가 터졌다. 경영학 교과서에 ‘가족이사’라는 개념을 만들어야 할 판이다. LG그룹 창업주 구인회의 4남 구자두(LB인베스트먼트 회장)와 그 아들, 딸, 며느리, 손자, 손녀가 함께 만들고 경영하는 콜센터업체 LB휴넷 이야기다. LB휴넷 경영진과 주주 대다수가 구씨다.

핏줄로 맺어진 LG와 LB의 관계는 형식적으로는 원·하청 갑을관계이지만 알고 보면 그룹-계열사보다 더 끈끈하다. LG유플러스에는 고객센터 전문 계열사가 있지만 굳이 LB휴넷에 일감을 나눠줬다. LB휴넷은 LG유플러스고객센터 세 곳을 운영 중인데 연간 LG를 통해서만 800억원에 이르는 매출을 올린다. 게다가 둘은 영업이익률을 ‘협의’로 결정한다.

이 회사에서 지난 1월 한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전주 LG유플러스고객센터에서 현장실습을 하던 특성화고 3학년 학생 홍수연양이다. 졸업을 보름 남짓 앞두고 일어난 비극이었다. 당차고 씩씩하고 강단 있던 고인은 이 회사에 다닌 뒤 울면서 집에 들어온 날이 잦았다고 한다. 그는 해지하려는 고객의 마음을 되돌리는 것도 모자라 고객사(LG유플러스)가 주문한 상품까지 팔아야 했다.

▲ 지난해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사고' 현장에 붙은 추모글과 국화꽃.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지난해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사고' 현장에 붙은 추모글과 국화꽃.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이 회사는 상담사들을 초 단위로 관리하고, 상담사들이 콜(call) 수를 못 채우면 감점을 주고, 벌로 빽빽이(깜지)를 쓰게 하고, 영업 1등의 녹취파일을 강제로 듣게 하고, 하루하루 실적순위를 매겨 줄 세우고, 2주에 한 기수씩 사람을 뽑아 소모하고 버리는, 평균근속연수가 0.85년밖에 안 되는 곳이다.

이 지옥 같은 곳에 고인이 있었다. 제대로 쉬지도, 끼니를 챙기지도 못했다. 첫 사회생활에 낙오하지 않으려 악착같이 버텼다. 회사는 수습기간에도 콜 수를 못 채웠다며 실적급을 삭감했다. 수습이 끝난 뒤에는 고인을 10등급 중 9등급으로 평가했다. LG그룹의 ‘정도경영’ 원칙을 어겼다며 단 4만원을 실적급으로 지급하기도 했다.

사실 시작부터 불법이었다. 이 회사 대표이사 구본완은 2016년 9월 2일 현장실습노동자 표준노동시간인 7시간을 기준으로 월급 160만5천원을 지급하겠다고 했지만, 일주일이 채 안 돼 하루 8시간에 기본급 113만5천원짜리 근로계약서를 내밀었다. 실습생에게 인바운드 해지방어와 아웃바운드 상품판매를 동시에 할 것을 지시했다. 근로기준법과 직업교육훈련촉진법을 대놓고 어겼다.

노동자들에게 LG유플러스고객센터와 LB휴넷은 ‘거대한 사기꾼’ 같았다. 고객센터 민원팀장으로 일하다 2014년 10월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서른살 청년 고 이문수씨는 회사가 시간외수당과 인센티브를 착복하고 있다는 유서를 남겼다. 유서를 담은 봉투에는 “노동부, 미창부, 방통위에 접수 부탁드립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그러나 LG와 LB는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다.

홍수연, 이문수 두 사람의 죽음은 ‘LG’와 ‘구씨’가 책임져야 한다. 상담사들이 자기착취를 경쟁하는 평가시스템을 만들고, 고객센터를 거대한 다단계 영업조직으로 만든 것은 바로 LG다. 그리고 상담사들을 갉아 넣어 만들어낸 이익을 챙긴 이들은 바로 구씨집안 2세 구자두와 그 아들, 딸, 며느리, 손자, 손녀다.

그런데 LG와 구씨는 두 노동자의 죽음에 대해 단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고인과 유족들에게 사과하라는 요구에 LG와 구씨는 ‘모르쇠’와 ‘꼬리자르기’로 일관하고 있다. 2014년에 그랬듯 이번에도 책임지지 않고 지나갈 수 있다고 믿는 듯하다. 그런데 이번엔 다르다. LG와 구씨, 당신들이 빠져나갈 수 없게 진을 쳤다. 어디 한 번 빠져나가 보라. 아니, 버텨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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