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주적' 개념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유승민 바른정당 대선 후보가 19일 2차 대선TV토론회에서 문재인 민주당 후보에게 "북한이 우리의 주적이냐"고 물었고, 문 후보는 "대통령이 될 사람이고 대통령은 남북관계를 풀어갈 사람이다. 국방부로서 할 일이지, 대통령이 할 일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유 의원은 "정부 공식문서에 북한이 주적이라고 나오는데 국군통수권자가 주적이라고 말 못하는 게 말이 되느냐"며 공세를 이어갔다.

이 같은 논쟁은 토론회가 끝난 이후 색깔론이라는 비판과 함께 문 후보의 안이한 안보관이 문제라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며 논란이 가열되는 상황이다.

그런데 유 후보는 북한 주적이란 개념이 정부 공식 문서에 있다고 믿고 문 후보에게 질문을 던진 것일까.

국방부 설명대로라면 주적이란 개념은 지난 1995년 처음으로 국방백서에 등장했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정상회담 이후 2004년 참여정부 시절 국방백서에서 삭제됐다. 대신 '북한의 재래식 군사력, 대량살상무기, 군사력의 전방배치 등 직접적 군사위협' 으로 표현해왔고 2012년 '북한 정권과 북한군은 우리의 적'이라고 명시해왔다. 유 후보가 말한 '정부 공식 문서에 북한이 주적이라고 나온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

유 후보가 국방백서에 이미 주적 개념이 삭제된 것을 알고 있음에도 문 후보를 몰아붙이기 위해 '거짓 공세'를 펼쳤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문재인 후보는 지난 2012년 대선 후보로 나왔을 당시 "참여정부에서 '국방백서'에 주적이라는 표현을 '현존하는 위협'으로 변경했지만 당시 단 한 명의 장병도 희생되지 않고 국토를 방위했다"면서 "북한을 국방백서에 주적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유 후보 역시 북한 주적 개념이 삭제된 것을 알고 있었다는 정황이 있다.

유 후보가 속했던 한나라당(구 자유한국당)은 국방백서에서 삭제된 주적 개념의 부활을 줄기차게 요구해왔다. 2010년 4월 김성조 한나라당 정책위 의장은 "많은 국민이 북한을 주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데 비해 국방부는 이를 명시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고, 황진하 한나라당 의원은 "북한 위협이 실존하고 도발 책동이 계속되는 안보 상황에서 보면 분명히 북한이 주적인데 대화 때문에 그 개념을 없앤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군에는 대적 관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지난 2010년 4월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천안함 사건과 관련한 책임 문제가 나오자 김무성 한나라당 의원은 "2004년 국방백서에서 주적 개념이 사라짐에 따라 군 기강이 해이해져 오는 현상"이라고 비판했다. 당시 이 발언을 유 후보는 옆에서 듣고 있었다. 김무성 의원과 함께 국방위원회 위원이었기 때문이다.
▲ 유승민 바른정당 대선 후보가 6일 창원 의창구 경남도의회 브리핑룸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정책 관련 발언하고 있다. 사진=유승민캠프, 포커스뉴스
▲ 유승민 바른정당 대선 후보가 6일 창원 의창구 경남도의회 브리핑룸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정책 관련 발언하고 있다. 사진=유승민캠프, 포커스뉴스

지난 2005년 3월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취임하고 미국을 방문했다. 그해 북한은 6자회담 무기한 중단을 선언한 때였고, 전년도에 국방백서에서 주적 개념이 삭제돼 논란이 이어지고 있었다.

박 대표는 미국과의 관계를 의식해 "통일의 대상이자 한국의 안보위협이라는 이중성이 있지만 군사적으로 북한은 한국의 주적"이라고 말했다. 박 대표의 미국 방문에 동행했던 인물이 유승민 후보였다. 국방백서 삭제 논란이 불거지면서 박 대표의 미국 방문 메시지가 중요했던 터였는데 유 후보가 박 대표를 옆에서 지켜봤던 것이다.

유 후보는 2차 TV토론회에 북한 주적 질문을 비장의 무기로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유 후보는 "정부 공식문서에 북한이 주적이라고 나오는데"라는 단서를 달지 않고 "주적 개념을 부활할 생각이 있느냐"고 물어봤어야 했다.

북한 주적 개념을 제기하는 자체가 시대착오적이라는 주장도 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일부 대선 후보들이 북한을 주적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주적이 있다면 부차적인 적도 있어야 한다"며 "그럼 북한이 주적이고 중국과 러시아는 부차적인 적인가"라고 반문했다.

정 연구실장은 "냉전이 끝닌지 곧 30년이 되는데 아직까지도 냉전시대의 주적 개념을 언급하는 것은 매우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며 "북한은 적이면서 또다른 한편으로 우리가 통합해야할 같은 민족이라는 이중성을 가지고 있는 대상이다. 이 중 어느 하나만을 대선 후보에게 선택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한 태도"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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