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 지시 혐의(직권남용)로 구속기소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당시 대통령을 보좌하면서 선거운동 시절 박근혜 후보의 지지반대 여부에 따라 애국의 기준을 삼고 인사정책의 척도로 삼았다는 전직 청와대 수석의 주장이 법정에서 나왔다.

이에 대해 김기춘 비서실장은 전혀 그렇지 않으며 독단적인 주장이라고 법정에서 공개 반박했다.

조원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은 20일 오전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0부(재판장 황병헌 부장판사) 주재로 열린 김기춘 조윤선 등의 이른바 블랙리스트 사건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박근혜 정부의 청와대 인사정책의 실상에 대해 비판했다.

조 전 수석은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전임 비서실장이었던 허태열 실장의 비서실과 김 실장의 비서실의 차이에 대해 “인사문제였다”고 기억했다.

조 전 수석은 김기춘 전 실장의 경우 대통령이 인사할 수 있도록 도왔으며, 당시 대통령이 원하는 인사에 대해서는 “공개적으로 말한 바는 없지만 느낌상으로는 결국 정치적인 판단이 많이 들어간 것 아닌가 판단한다”며 “그래서 선거에서 도움 준 분들(을 중용하고), 선거 상대편 반대편에 있던 분들(을 배제하는 데)에 대한 게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전 실장이 애국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한 것을 두고 조 전 수석은 “내 주관적 견해지만 김 전 실장이 쓴 애국이 두가지 판단기준이었는데 첫째로는 적극적인 측면에서 선거에 도움주셨던 분들을 인사에 반영시키자는 것이 하나의 판단개념”이라며 “두번째로 소극적 측면에서 (선거의) 상대편 측면에 있던 분을 배제하는 것이었다. 이 두가지 척도가 같이 반영됐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 조원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이 20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문화·예술계 지원 배제 명단인 블랙리스트 관련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의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 법정으로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조원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이 20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문화·예술계 지원 배제 명단인 블랙리스트 관련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의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 법정으로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그는 ‘박근혜 대통령 편에서 선거 참여하면 애국인 반면, DJ 노무현 정부 편에 가담한 것은 반대로 설정한 것이냐’는 특검보의 신문에 “저는 그렇게 생각한다”고 답했다. 애국을 기준으로 보수와 진보를 판단하지만 실제로는 박근혜 지지 반대를 가려내는 것이냐는 특검보 신문에 “그렇다고 본다”고 답했다.

보수의 개념도 박근혜에게 긍정적인 역할을 했는지이며, 이를 잣대로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것으로 보이느냐는 질문에 그는 “결과적으로 그렇게 보인다”고 주장했다. ‘보수와 좌파의 시각이 김기춘 실장의 시각에 따라 반영됐느냐’는 질문에도 그는 “그렇다고 본다”고 말했다.

조 전 수석은 보수가치의 확산이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김기춘 실장이 보수가치 확산을 강조하면서 박근혜의 보호막을 치고 애국을 빙자해 보수와 좌파를 편갈라 국정을 운영했다는 것이 맞느냐’는 특검보 신문에 조 전 수석은 “결과적으로 그렇다”고 말했다.

‘아무런 이의제기를 하지 않은채 대통령 주장이 일방적으로 이행돼 조직을 마비시켰다는 것이냐’는 질문에 조 전 수석은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다”며 “그 부분을 상당히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답했다.

김영한 수석과 안종범 수석의 비망록과 관련, 특검보가 ‘업무수첩에 꼼꼼하게 메모했는데, 이런 메모를 작성하려면 대수비(대통령주재 수석비서관 회의), 실수비(비서실장주재 수석비서관 회의)가 대화와 토론보다 대통령과 비서실장의 지시를 무조건 받아쓰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느냐’고 묻자 조 전 수석은 “제가 근무할 때와 상황이 많이 다른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피고인 김기춘의 변호인은 “관료시스템을 마비시켰다면 관료조직이 돌아가지 않아야 하는데 돌아가지 않았느냐, 그런 표현이 과하지 않느냐”고 따졌다. 조 전 수석은 “마비라는 측면은 정상적으로 의견개진이 흘러가는 상태에서 원활하게 작동해야 하는 것에 지장을 초래하고 한 방향으로만 가게 되면 문제”라고 반박했다.

변호인은 김영한 안종범의 메모를 다 봤느냐, 전체를 정확히 안봤으면 그렇게 얘기하면 안된다고 반문했다. 그러자 조 전 수석은 “제가 전체를 본 적은 없기 때문에 말씀 못드리겠으나 (수첩에) 빼곡하게 실수비(비서실장주재 수석비서관 회의) 내용을 작성했다”며 “언론에서 봤던 내용이 따옴표 쳐 있고 발언자 별로 다 나온다”고 답했다.

법정에서 조 전 수석의 이 같은 증언을 들은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증인이 증언을 마치고 나갈 무렵 일어서서 사실과 다르다는 의견을 밝혔다.

▲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지난 12일 블랙리스트 재판에 피고인으로 출석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지난 12일 블랙리스트 재판에 피고인으로 출석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김 전 실장은 “인사권자의 지침과 생각이 있다. 원활하게 국정철학이 되도록 보좌한다”며 “보고할 때 마다 저도 일일이 인사권자에게 ‘곤란합니다’라고 많은 얘기를 했지만 이를 일일이 수석에게 ‘이렇게 반대했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에 수석이 그것을 모르고 제가 (대통령 말을 일방적으로) 따른다고 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김 전 실장은 박근혜 후보지지 여부를 애국의 기준이자 인사의 기준으로 삼았다는 조 전 수석의 주장에 대해 “애국 기준이 박근혜 후보 도운 사람이 애국이고, 이를 부정하거나 반대하는 사람은 애국이 아니라는 주장은 지극히 주관적 견해일 뿐 아니라 독단적인 생각으로 믿는다”며 “저는 젊은 공무원 시절부터 ‘한반도에서 대한민국이 유일한 합법정부’라는 이념에 충실하면 애국이라 생각하고, ‘북한의 선전에 동조해서 혼란을 초래하고 주한미군 철수, 국보법 철폐에 동조하고 온정적인 것은 애국이 아니다’라는 것을 확고하게 여기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김 전 실장은 “어떤 후보에 찬성 반대하는 것으로 애국의 기준으로 삼았다는 것은 그런 생각도 없고 그런 말을 표출한 일도 없다고 말씀드린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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