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후보 TV 토론회가 이번 대선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지 주목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미 지지 후보를 정한 유권자의 표심엔 큰 변동이 없겠지만 지지 후보를 정하지 못한 부동층에 일정부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토론회와 달리 19일 KBS TV 토론회는 대본 없이 스탠딩 형식으로 진행된다는 점에서 각 후보들의 대처 능력이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지지율 1위 후보는 최대한 안정감을 유지하는 전략을 취할 가능성이 높고, 추격하는 후보들은 지지율 반등을 위한 모험을 감행할 수 있다.

과거 대선 후보 TV 토론회도 대세후보를 따라잡기 위한 싸움이 성공했느냐, 실패했느냐로 승자와 패자가 결정됐다.

대선 TV토론회는 1997년 대선 당시 처음으로 도입됐다.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와의 TV 토론회는 김 전 대통령의 압승으로 결판이 났다. 김 전 대통령은 1970년대부터 대선TV토론회 도입을 주장했지만 무려 20년 만에 도입돼 최대 수혜자가 됐다.

김 전 대통령에게 TV 토론회는 절호의 기회였다. 간첩조작 사건 등 각종 북풍 조작으로 뿔만 없는 ‘빨갱이’로 낙인찍힌 김 전 대통령이 이회창 후보에 맞서 논리적인 언변을 구사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자체로 이미지를 쇄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희호 여사는 지난 2016년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남편의 대통령 당선은 TV 토론 덕분”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여사는 “TV토론회에서 남편은 신문 기사나 방송 뉴스가 왜곡하지 않은 모습을 그대로 국민에게 보여줄 수 있었지요”라고 말했다.

2차 TV 토론회 직전 안기부는 월북한 오익제가 김 전 대통령에게 11월말 편지를 보냈다며 수사에 돌입했다. 김 전 대통령 측은 조작이라고 했지만 안기부는 수사를 강행했다. 오익제 편지 사건은 대선 이후 조작으로 밝혀졌다. 북풍에 이어 나온 공세가 김 전 대통령의 치매설이었다. 건강 이상설이 치매설로까지 확산된 것이다.

이희호 여사는 이에 대해 “한나라당이 유포한 건강이상설 때문에 2차 텔레비전 토론 때 애를 먹기도 했지요. 전날 남편이 감기 기운이 있어서 코를 훌쩍거려요…(중략)…나는 맑은 머리로 토론해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약을 먹지 않고 토론에 임했는데 다행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요”라고 회상했다.

2차 TV토론회 쟁점은 국제통화기금 추가협상 필요 여부였는데 김 전 대통령이 추가 협상을 주장하자 토론회 직후 국제신인도를 떨어뜨려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언론보도 공세가 쏟아졌다.

악재 속에서도 두차례 TV토론회에서 자신의 소신을 밝히면서 김 전 대통령은 이회창 후보보다 10%p 이상 토론회를 잘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실제 지지율 격차는 더 벌어졌다. 한국리서치 결과를 보면 토론회 직전인 11월 26일 김대중 전 대통령 지지율은 32.1%, 이회창 후보는 31.5로 0.6%p 차이로 접전을 벌였지만 1차 토론회가 끝난 직후엔 5%p 격차로 벌어졌다.

TV 토론회 최대 수혜자가 된 김 전 대통령은 지지율 격차를 유지하며 대통령에 당선됐다. 당시 언론들은 TV토론회가 김 전 대통령의 이미지 쇄신에 도움이 됐다고 평가했다.

▲ SBS프리즘센터에서 진행된 대선후보 토론회에 참가한 후보들. 왼쪽부터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 심상정 정의당 후보,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사진=차현아 기자.
▲ SBS프리즘센터에서 진행된 대선후보 토론회에 참가한 후보들. 왼쪽부터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 심상정 정의당 후보,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사진=차현아 기자.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회창 후보의 양자 대결 구도로 펼쳐진 지난 2002년 대선에서는 의외의 인물이 TV토론회 승자가 됐다.

권영길 민주노동당 후보가 첫 TV토론회에서 선전하며 인기를 얻었고, 노 전 대통령과 이회창 후보가 접전을 벌이는 가운데 권 후보의 득표가 당선에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왔다.

권 후보는 2002년 9월 MBC 100분 토론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과 연대 문제에 대해 “정책의 차이가 크기 때문에 연대는 어렵다. 신자유주의를 반대하는 나와 김대중 정권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계승한 노 후보간 차이는 노 후보와 한나라당 이회창 대통령 후보간 차이보다 크다”고 말해 3당 후보의 차별성을 부각시켰다.

또한 권 후보는 자신이 빨치산 아들임을 공개한 것과 관련해서도 “아버지를 아버지로 섬기는 게 천륜 아니겠냐”며 “이 땅에서 빨갱이의 아들로 낙인 찍힌 후엔 살아길 갈이 막히기 때문에 가슴 졸이며 살아왔으나 대통령이 되면 다 드러내야 한다고 보고 밝힐 것은 밝힌 것”이라고 정면으로 돌파했다.

권 후보는 “나는 오늘 처음 TV 토론에 나왔는데 인지도가 높아지면 지지율도 오르리라 확신한다”고 말했는데 실제 TV대선 토론회가 시작되고 이변이 일어났다.

권 후보는 그를 상징하는 “살림살이는 좀 나아지셨습니까”라는 발언으로 TV 토론회에서 3당 후보의 존재감을 확실히 부각시켰다.

권 후보는 미국 대선에서 앨 고어 민주당 후보와 지지가 겹친 랠프 네이더가 주목을 받아 부시 공화당 후보의 당선을 도왔다는 ‘네이더 효과’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분석까지 나오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긴장시켰다.

결국 TV토론회 영향에 힘입어 권 후보는 약 100만표를 득표하면서 진보 정당 후보의 힘을 과시했다. 권 후보의 표는 조봉암 이후 진보 정당 후보가 얻은 표 중 가장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

(주) 에스티아이 박재익 연구원은 “1차 토론회에선 누가 우위를 점해 지지를 바꿀 만큼 영향을 주지 않았다. 토론회 평가 여론조사로 보면 본인 지지율보다 잘했다고 하는 후보가 유승민과 심상정 후보였다”며 “이번 대선은 조기 대선으로 치러지고 이슈나 쟁점이 크게 형성되지 않은 면이 있다”고 말했다.

1차 토론회가 끝나고 한국리서치는 지난 15일과 16일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토론회 평가 여론조사 결과를 내놨는데 토론을 잘한 후보로 28.1%가 유승민 후보라고 응답해 유 후보가 1위를 차지했다. 토론을 못한 후보 1위는 홍준표 후보(49.3%)였다.

토론회 후 후보 지지도 변화 의사를 물은 결과 ‘지지후보를 좋아하게 됐다’는 응답은 23.0%, ‘후보 지지여부에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56.2%로 나왔다. ‘지지하던 후보에 실망했지만 지지 후보를 바꾸거나 철회할 생각은 없다’는 응답은 14.9%, ‘지지하던 후보에 실망해 지지후보를 바꾸거나 철회했다’는 응답은 2.6%에 그쳤다. (유무선 RDD / 포본오차 ±3.1%P )

박 연구원은 "2012년 토론에선 후보 3자간 공방전이 비교적 밀도 있게 진행되었다. 박근혜 후보를 겨눈 이정희 후보의 날선 공세도 흥미를 유발하는 요소 중 하나였다. 그에 반해 이번 5자간 토론회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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