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정한 4월20일 ‘장애인의 날’이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억압을 은폐하는 날로 기능하는 걸 거부하고 모든 차별에 맞서는 ‘장애인차별철폐의 날’로 만들기 위해 싸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2017년 현재 장애인의 인간다운 삶을 가로막는 적폐는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입니다. 2012년 8월부터 광화문광장 지하도에서 1700일 넘게 농성하고 있지만 제2의 도가니, 제2의 형제복지원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장애인 수용시설 정책 때문입니다. 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과 미디어오늘은 5월9일 촛불대선을 앞두고 ‘장애등급제 폐지’, ‘부양의무제 폐지’, ‘장애인 수용시설폐지’ 등 3대 핵심의제를 고민하고자 이 글을 연재합니다. - 편집자주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폐지를 요구하는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의 광화문 지하보도 무기한 농성이 1700일을 넘게 진행되고 있다. 2012년 18대 대선 시기부터 시작해 박근혜 정부 4년을 견디며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낸다”는 어느 원주민의 마음처럼 투쟁해오고 있다.

1700일의 기우제는 고난의 시기이기도 했다. 농성장 바로 앞에는 13개의 영정사진이 놓여있다. 저마다 다른 이름과 사연을 가진 죽음들이지만 공통점이 있다. 바로 국가가 만든 잘못된 제도와 우리 사회의 침묵 속에 내몰린 죽음이라는 것이다. 활동보조서비스가 충분하지 못 해 활동보조인이 없던 야간에 집에 불이 나 피하지 못 하고 죽어간 장애여성 故김주영의 죽음을 시작으로,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 그리고 ‘수용시설’로 인해 13명이 죽어갔다.

▲ 지난 2012년 8월 21일부터 광화문 역에 마련된 농성장에는 세상을 떠난 13명의 장애인들의 영정사진이 마련돼 있다. 사진=장슬기 기자
▲ 지난 2012년 8월 21일부터 광화문 역에 마련된 농성장에는 세상을 떠난 13명의 장애인들의 영정사진이 마련돼 있다. 사진=장슬기 기자

“피고인은 피고인 집 안방에서 다른 가족들이 없는 틈을 이용하여 집안에 보관하고 있는 망치로 잠자고 있던 피해자의 후두부를 3회 힘껏 가격하고, 목 졸라 그 자리에 사망하게 하였다.”

2015년 8월 26일 친족살인 사건에 대하여 재판부는 아버지인 피고인에게 ‘징역3년, 집행유예5년’을 선고했다. 피해자였던 피고인의 자녀는 발달장애가 있는 성인 중증장애인이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수십 년간 정성스럽게 보살폈다는 점을 정상 참작했다. 사연은 비극적이었지만 죽음을 둘러싼 해결과정은 장애인과 그 가족에 대한 한국사회의 시선이 담겨있었다. 재판부의 선처에만 언론은 집중했고 그렇게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었던 장애인의 삶은 다뤄지지 않았다. 그리고 짐작할 수 있다시피 피고인은 자신이 죽고 난 뒤 남은 가족들에게 중증장애인 아들이 짐이 될 것을 걱정해 살인을 저질렀다고 했다.

대한민국은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통해 생활이 어려운 국민의 최저생활을 보장하도록 했다. 그러나 가난하다고 수급을 받을 수 있지는 않으며, 가족이 있는 경우 그 가족에게 ‘부양의무’가 있다고 보고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적용을 제한했다. 국가가 만든 이러한 ‘부양의무자 기준’을 통해 수급자 수에 육박하는 빈곤의 사각지대가 만들어졌으며, 국가는 가난한 이들을 방치하고 감시해왔다. 중증장애인 아들에 대한 부양의무를 졌으나, 그 부양의 의무를 다하기에 힘에 부치고 가난했던 늙은 아버지는 스스로의 손으로 자기 자식을 살해하기에 이른다. ‘부양의무제’에 의한 이 같은 친족 살해 사건은 한두 번이 아니며, 우리 사회에서 반복해서 일어나는 참극이다. 자신의 아버지에게 망치로 맞아죽어야 했던 비극의 당사자 그 아들, ‘중증장애인’은 우리 사회에서 어떤 존재인가. 그리고 그들의 삶은 어떠한가.

▲ 2014년 5월12일 오전 서울 시청광장에서 열린 '장애등급제 희생자 故 송국현 동지 장애인장'에서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가 슬픔에 잠겨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 2014년 5월12일 오전 서울 시청광장에서 열린 '장애등급제 희생자 故 송국현 동지 장애인장'에서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가 슬픔에 잠겨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2014년 4월17일, 세월호가 침몰하던 그 때 한 장애인의 숨이 끊어지고 있었다. 바로 장애인수용시설에서 30여년을 살다 시설에서 나와 지역사회에서 자립생활을 시작한 장애인 송국현이었다. 송국현은 장애 3급이었다. 하지만 그는 밥을 혼자 해먹을 수 없었고 혼자서 일상생활을 해나갈 수 없었다. 장애인의 일상생활과 사회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유급보조서비스인 활동지원서비스가 있었지만, 신청자격이 1,2급으로 제한돼 신청조차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활동보조서비스의 취지에 부합되고 필수적으로 필요했던 중증장애인이었다.

송국현은 항의했고 국가에 구조요청을 보냈다. 자신의 몸에 등급을 매기고 심사하는 국민연금공단 장애등급심사센터에 수차례 찾아갔다. 절차적으로 이의신청도 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여전히 ‘장애 3급’이라는 낙인이었다. 그리고 정말 절박한 마음으로 2014년 4월14일 장애등급심사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했던 그날, 송국현의 집에서 불이 났다. 그는 불을 피할 수 없었다. 침대에서 꼼짝도 못 한 채 불이 번지는 것을 지켜봤고, 천장으로 불이 옮겨 붙고 그의 몸에 불씨가 떨어졌다. 3도 화상이었다.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3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그때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은 현재 구치소에 수감돼 있는 문형표였다. 송국현을 살려내라는, 그리고 사과하라는 장애계의 요구에 그는 ‘유감’만을 표명했다.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약속도 그는 지키지 않았다. 세월호처럼 송국현도 국가가 구하지 않았던 죽음이었다. 그는 장애 3급이었고 그의 사정에도 국가는 외면하였으며, 그렇게 송국현이 죽었다.

송국현 그가 30년간 살아왔던 곳은 ‘꽃동네’라는 대표적인 장애인거주시설이다. 물 좋고 산 좋은, 사람들의 인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곳에 위치한 시설이라는 곳은 어떤 공간인가. 시설은 중증장애인을 마치 죄인처럼 수용하는 곳이다. 똑같은 옷, 똑같은 머리를 하고 똑같은 시간에 하루 일과를 시작하고 하루 일과를 마감한다. 자유는 없다. ‘보호’라는 이유로 장애인들은 통제받고, 내일을 기대할 수 없는 쳇바퀴 도는 삶만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국가는 그곳을 중증장애인들을 위한 사회복지서비스 중의 하나라고 말하고, 중증장애인들은 시설이 최선의 선택인양 강요받고 내몰린다.

지난해 방송사 프로그램을 통해 알려진 대구시립희망원은 반짝 관심 이후에도 여전히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고 인권침해 문제는 계속 밝혀지고 있다. 대구천주교유지재단에서 운영하는 희망원에서 수용인들이 수년에 걸쳐 하나 둘 죽어갔다. 지난 7년간 시나브로 309명이 죽었다. 사망한 309명 중에 최소 29명 이상이 사망 원인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의문사다. 그리고 다수의 사망사건이 조사 없이 단순 병사로 처리된 것도 밝혀졌다. 중앙정부는 현재까지 뚜렷한 대책을 갖고 있지 않으며, 관리감독의 책임이 있는 대구시는 검찰 수사에 맡긴다며 미온적 입장만 반복하고 있다. 천주교교구는 여전히 책임지지 않았고 교구 차원의 책임과 대책 마련을 촉구하며 명동성당을 방문한 활동가들을 짐짝처럼 들어냈다.

시설은 국가권력이 중증장애인을 폐기물 취급하며 교묘하게 통제·관리하기 위해 고안한 곳이다. 그리고 복지라는 이름으로 치장한 수용시설이다. 국가와 사회의 ‘침묵의 카르텔’속에 수많은 시설들이 유지되고 있으며, 그곳을 ‘꽃동네’, ‘희망원’, ‘형제복지원’처럼 좋은 이름으로 사람들은 불러댄다. 시설은 한국사회의 복지의 잘못된 폐단이자 적폐이며, 장애인을 포함해 부랑인과 홈리스 등을 대규모로 가두고 인권을 유린해온 우리의 어두운 역사이다.

시설이 아니라 이곳 지역사회에서 인간다운 삶을 꿈꾸는 장애인들이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를 위해 2012년 8월21일부터 농성하고 있다. 부양의무자 기준을 규정하여 ‘가난을 개인과 가족의 책임’으로 쉽게 전가해 버린 국가권력. 바로 가난한 사람들을 ‘문제’ 삼았던 권력이다. 그리고 장애등급제를 무기로 중증장애인의 삶을 파괴하는 국가권력. 바로 장애인을 ‘문제’ 삼았던 권력이다. “문제로 정의된 사람이 그 문제를 다시 정의할 수 있는 힘을 가질 때 혁명은 시작된다”는 어느 사회학자의 말처럼, 우리는 국가권력에 맞서 ‘가난’과 ‘장애’를 새롭게 정의하려고 한다.

19대 조기대선이 이제 20일도 남지 않았다. 후보자들은 저마다의 이유와 근거를 앞세워 자신이 대통령이 돼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지난해 10월부터 20회가 넘게 이어져온 광장촛불은 무엇을 열망하였는가. 바로 박근혜 퇴진만이 아니라 박근혜로 상징되는 한국사회의 폐단을 청산하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었다. 장애인의 인간다운 삶을 가로막고 소외시켰던 ‘적폐’는 바로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 그리고 ‘수용시설’이다. 3대 적폐의 청산 없이 장애인의 삶을 함부로 논하지 말라.

우리는 계속해서 기우제를 지내는 마음으로 3대 적폐를 청산하기 위해 투쟁할 것이다.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자 기준, 그리고 장애인수용시설을 폐지하고 장애가 있더라도 바로 이곳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가기 위함이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혁명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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