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이 삼성그룹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추진안에 우호적 여론을 만들어주는 등 삼성그룹과 조력관계를 맺어 온 정황이 드러났다. 일부 언론사 간부는 합병 성사 후 삼성그룹 임원에게 직접 축하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이 같은 사실은 지난 1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김진동)의 심리로 열린 ‘이재용 등 5인의 삼성 뇌물공여 국정농단 사건’ 공판에서 확인됐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이수형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미전실) 기획팀장, 김종중 전 미전실 사장, 황영기 한국금융투자협회장, 이왕익 삼성전자 전무 등이 장충기 전 미전실 차장(사장)과 주고받은 문자메시지 내역 및 내용 일부를 공개했다.

▲ 뇌물공여 등 혐의로 구속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4월13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2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 뇌물공여 등 혐의로 구속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4월13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2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이수형 전 팀장은 2015년 7월10일 장 전 사장에게 ‘매일경제 손아무개 편집국장이 오후 8시 홍완선(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불구속 기소)과 통화했다’ ‘전문위원회로 안 넘긴다고 한다. 톱 나간다’ 등의 내용이 담긴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7월10일은 삼성물산 대주주인 국민연금관리공단 투자위원회(지분 11.21%)가 삼성물산 합병안에 찬성하기로 결정한 날이다.

실제로 다음날인 11일 매일경제 1면 톱엔 “삼성물산·제일모직 국민연금 ‘찬성’”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이 기사는 찬성 결정에 “향후 합병 삼성물산이 지주사로서 바이오 사업 등을 중심으로 2020년 매출 60조원의 기업으로 성장할 것이란 삼성 측이 제시한 비전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해외 투기자본의 공격으로부터 국가경제의 버팀목이 돼야 한다는 여론도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란 분석을 내놨다.

매일경제는 7월6일부터 10일까지 관련기사 22꼭지를 냈다. 하루 평균 4꼭지 이상을 5일 연속 다뤘다.

이 팀장은 같은 날 동아일보 편집국 간부가 최치원 삼성물산 사장에게 ‘축하한다. 최대 고비를 넘겼다’고 인사한 사실을 문자로 장 전 사장에게 전달했다.

동아일보는 7월8~9일 이틀에 걸쳐 ‘경영권 방패 없는 한국기업’ 기획기사 7꼭지를 보도했다. 헤지펀드 등 해외 투자자들의 투기 목적의 투자 공세에 기업 경영권 보호장치가 부실하다는 내용이 골자였다. 당시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하던 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을 비롯해 대부분의 외국인 투자자들이 ‘주주 이익 침해’를 근거로 합병을 반대하던 상황이었다.

▲ 사진은 서울 서초동 삼성 사옥. ⓒ 연합뉴스
▲ 사진은 서울 서초동 삼성 사옥. ⓒ 연합뉴스
통신사 간부의 조력 정황도 확인됐다. 황영기 협회장은 7월8일 장 전 사장에게 ‘밖에서 삼성을 돕는 사람들이 많다. 연합뉴스 이아무개 편집국장도 있다’ ‘소액주주 표에 도움되는 기사를 실어달라고 했다’ 등의 내용이 적힌 문자를 보냈다.

연합뉴스는 7월13일 “전문가들 ‘삼성물산 소액주주, 기회를 발로 찰 이유없다’” 기사에서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7.12%)과 이에 동조하는 일부 기관, 외국인 투자자들이 반대표를 던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삼성물산이 합병에 필요한 안정적 지지율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소액주주들의 의결권 위임이 절실한 상황”이라며 “전문가들은 대체로 삼성물산 소액주주들이 이번 합병 건을 단기적인 매매차익보다는 중장기적인 기업가치 관점에서 바라보도록 주문했다”고 분석했다. 삼성물산 합병안이 최종 결정될 17일보다 나흘 앞선 시점이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와의 기획보도로 삼성 측에 우호적 여론을 만든 정황도 있다. 이승철 당시 전경련 부회장은 장 전 사장에게 ‘언론과 기획기사를 통해 저희 의견을 전달했다. 포이즌필 등 경영권 방어 제도 도입 필요성을 강조했다’ ‘국민연금의 현명한 판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엘리엇에 대한 방어권 제도가 필요하다는 자료를 기자들에게 제공해라고 했다’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전송했다.

실제로 7월6~10일 동안 매일경제 9건, 동아일보 7건, 연합뉴스 2건 등 문자에 언급된 매체에서 기업 경영권 방어 제도 도입을 역설하는 기사가 다수 게재됐다. 이밖에 머니투데이, 서울경제, 파이낸셜뉴스, 한국경제 등 다수 경제지와 조선일보 등 일부 일간지도 2015년 6~7월 경 기획기사 및 연속 보도를 통해 한국 대기업 경영권이 외국계 투자기관에 의해 위협받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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