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씨 측에 400억 원대 뇌물을 건네거나 약속한 혐의로 구속기소 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현재 재판을 받고 있다. 구속되기 전까지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보였던 많은 언론이 정작 구속 이후에는 ‘무관심’으로 돌아서는 분위기다. 관심을 보인다 해도 특검과 삼성 변호인단 공방위주로 보도하는 언론이 많다.
‘삼성 이재용 재판’에서 대다수 언론은 이 부회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 3차례 독대에서 무슨 말이 오갔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박 전 대통령이 경영권 승계를 도와주겠다며 그 대가로 정유라씨의 승마훈련 지원을 요구했는지, 이 부회장이 정유라씨의 승마훈련 지원을 사전에 알았는지 여부에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 그것도 삼성측 변호인단의 주장을 충실히 반영하는 기사가 대부분이다.
지난 13일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재판에서 공개한 문자메시지 내역은 그 자체로 충격이다. 국민연금이 투자위원회에서 삼성물산 합병건 동의안을 의결한 시점을 전후해 ‘삼성-언론간 유착의혹’의 한 단면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주요 언론사 간부가 삼성 관계자에게 ‘합병 축하’ 인사를 한 사실도 확인됐고, 삼성 입장에서 기획기사를 함께 준비한 정황 등도 드러났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추진에 있어 일부 언론이 삼성에 우호적 여론을 만드는데 적극적 역할을 했다는 반증이다. 이쯤 되면 당시 언론이 광고나 협찬 등을 기대하고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전방위적인 홍보에 나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통령과 재벌총수가 경영권 승계를 매개로 거액의 뇌물성 자금을 주고받았다는 사실이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고스란히 드러냈다면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발 벗고 나선 ‘친삼성 언론’은 우리 사회 또 다른 민낯을 보여주고 있다.
문제는 대다수 언론이 자신들의 이런 치부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점이다. 재판 과정에서 권력과 재벌, 언론간의 ‘부적절한 관계’가 드러났는데도 문제의 심각성을 느끼는 언론이 거의 없다. 대다수 언론이 박근혜 정권 비선실세들의 국정농단에 침묵하다가 막판에 입장을 바꿨던 것처럼 삼성과 ‘긴밀한 관계’를 형성했던 언론들 역시 박근혜와 이재용에게 모든 책임이 있다는 식의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작금의 상황을 볼 때 ‘삼성-언론간 유착관계’가 제대로 파헤쳐질 지는 미지수다. 최근 삼성그룹이 미래전략실을 해체한 상황은 이런 우려를 더욱 가중시킨다. 삼성 미래전략실이 매년 그룹차원에서 언론사 광고협찬을 전담해왔기 때문이다. 한국 언론에서 삼성이 차지하고 있는 광고 비중을 고려했을 때 미래전략실 해체가 가지는 상징성은 적지 않다. 벌써부터 주요 언론사 광고담당자들 사이에선 협찬과 광고수주 어려움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권과 재벌의 커넥션은 일정 부분 드러났지만 삼성과 언론의 커넥션은 여전히 드러나지 않았다. 삼성은 한국 언론에게 여전히 성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