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은 박근혜 정권 출범 초기부터 문제가 돼 검찰 수사 대상이 됐다. 남북대화록 유출 사건에도 국정원이 개입했다. 간첩 조작 사건은 박근혜 정권에서도 일어났다. 최근엔 국정원의 헌법재판소 사찰 의혹에 더해 국정원 지시에 따라 민간인들이 여론을 조작하는 알바부대를 운영한 게 드러났다.

이번 대선에서 국정원 개혁 방안이 주목받는 이유다. 국정원이 개입된 사건이 불거질 때마다 정치권에선 공방을 주고 받았지만 제도 개선은 이뤄지지 않았다. 하지만 대선 주자들 입에서 국정원 조직이 거론되면 무게감이 다를 수밖에 없다. 대선 주자들 말 한마디에 따라 향후 국정원 조직의 존폐가 달려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대권주자 중 국정원 개혁에 가장 앞서 있는 후보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심상정 정의당 후보다.

민주당이 정책으로 발표한 국정원 개혁 방안은 다음과 같다.

"- 국가정보원의 국내 정보수집 업무를 전면 폐지하고, 대북한 및 해외, 안보 및 테러, 국제범죄를 전담 정보기관인 ‘해외안보정보원’으로 개편
- 국정원의 수사기능을 폐지하고, 대공수사권은 국가경찰 산하에 안보수사국을 신설하여 대공수사에 빈틈이 없도록 함
- 불법 민간인 사찰, 정치와 선거개입, 간첩조작, 종북몰이 등 4대 공안 범죄에 연루․가담한 조직과 인력에 대한 엄중한 책임추궁 및 처벌 형량 강화
- 테러 및 사이버 보안업무와 관련해 정보기관이 권한을 남용하거나 인권침해 행위를 하지 않도록 국회 통제장치 강화"

사실상 국정원의 국내 정치 개입을 전면 차단하고 대공수사권을 통제하는 방안이다.

문 후보는 줄곧 국정원 개혁에 대한 소신을 밝혀왔다. 민주당이 국정원 정치 개입의 최대 피해자였기 때문이다. 문 후보는 지난 1월 정책 발표 자리에서 "미국의 CIA도 국내 정보 수집을 하지 않고 대공 수사권이 없다"고 강조했다. 문 후보는 지난 4월 매일경제와 인터뷰에서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을 통해 국민들은 부패 기득권 세력의 생생한 민낯을 보았다. 반칙 특권 부정부패 정경유착 국가권력의 사유화 같은 공정하지 못하고 정의롭지 못한 그런 모습들"이었다며 "권력 사유화의 도구였던 권력기관 개혁이 그 출발점이다. 청와대와 검찰, 국정원 등 3대 권력기관의 권한 남용만큼은 뿌리를 뽑겠다"고 밝혔다.

심상정 후보의 공약도 민주당과 대동소이하다. 정의당은 '국정원 해외정보처로 개편, 국내업무 폐지'를 개혁 방안으로 제시했다. 심 후보는 지난 2014년 간첩 조작 사건이 불거지자 "범죄 집단으로 전락한 국정원은 더 이상 국가정보기관으로서 소임을 수행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위상이 추락했다. 국회 차원의 국정원개혁특위를 새롭게 다시 구성해 현재의 국정원은 폐쇄하고 국가정보기관을 해외정보원으로 다시 세우는 방안에 대한 논의에 국회가 즉각 착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심 후보는 당시 박근혜를 향해서도 "박 대통령의 입장표명이 대통령 직속기구인 국정원에 대한 비판이 자신에게 향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미봉책이 되어서는 안 된다"며 "연이은 국기문란 사건의 주범인 국정원에 대해 어떤 조치를 취하느냐 하는 문제는 박근혜 대통령이 민주주의를 수호할 의지가 있는지와 직결되는 하나의 시험대"라고 비판했다.

안철수 후보는 국정원 개혁 방안을 명시적으로 밝히지 않다가 뒤늦게 “국내 정보 수집권, 정보 및 보안 업무 기획조정권, 수사권을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18일 한국일보와 참여연대가 공동 진행한 정책평가 질의를 통해서다.

하지만 이 같은 입장은 캠프와 조율되지 않은 모습이다. SNS상에서 안 후보가 국정원 국내정보 수집기능 폐지를 공약했다는 얘기가 돌자 캠프에서는 정작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기 때문이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김근식 정책대변인은 “우리는 국정원에 국내 정보파트를 두느냐, 없애느냐는 문제는 말한 적이 없고, 국내 정치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안 후보는 지난 3월 국정원 직원이 헌법재판소를 사찰했다는 의혹 보도가 나오자 “정말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자 국민에 대한 도전”이라며 “진상을 밝히고 책임자를 찾아내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안 후보는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재발방지책을 만들겠다”고 했지만 당시 구체적인 국정원 개혁 방안은 내놓지 않았다. 후보 정책과 당 정책 발표 자료에도 국정원 정책은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안 후보는 대검찰청과 국정원에서 정책 정보보호 자문위원을 지낸 경력을 내세워 국정 경험을 강조하기도 했다. 안 후보는 자신의 책 '안철수의 생각'에서 "검찰의 컴퓨터 수사 자문위원과 국가정보원의 정보보호자문위원을 하면서 공안기관을 들여다볼 기회가 있었다"고 밝혔다.

▲ 한국기자협회와 SBS 공동으로 3월13일 오전 서울 마포구 상암동 SBS프리즘타워 공개홀에서 열린 대선후보 첫 합동토론회에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 심상정 정의당 후보 등 5개 주요 정당 후보들이 토론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 SBS프리즘센터에서 진행된 대선후보 토론회에 참가한 후보들. 왼쪽부터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 심상정 정의당 후보,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사진=차현아 기자.
국정원 개혁 방안과 가장 거리가 먼 인물은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다.

그는 경남도지사직 시절인 2013년 국정원 선거 개입 사건에 대해 "국정원직원 댓글 3개가 110만 표를 움직였다면 참 대단한 국정원"이라면서 "국정원이 잘못을 하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라 그것을 빌미로 대선불복종 정치 투쟁을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트위터를 통해 밝혔다.

그해 10월에도 홍 후보는 국정원 선거 개입 사건과 관련해 "사과를 해야 한다면 이명박(MB) 전 대통령이 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홍 후보는 문화일보 인터뷰에서 “국정원 댓글 사건은 사법기관이 처리하도록 놔둬야 하는데 정치권이 논란을 만들어서 대선 불복종 시비가 나오고 있는 것”이라며 “대통령은 무한 책임의 자리이기 때문에 집권시절에 있었던 잘못에 대해서는 당시 대통령이 나와서 하는 게 맞다고 본다”고 말했다. 국정원 선거 개입 사건이 정치권의 유불리에 따라 논란이 불거진 것으로 인식하고 당시 '불필요한' 논쟁을 피하기 위해 전직 대통령이 사과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2011년에도 홍 후보는 국정원 문제는 조직보다는 개인의 문제가 크다고 지적했다. 당시 국정원은 인도네시아 특사단 호텍 숙소 침입 절도 사건에 개입된 게 드러나면서 비난을 받았다.

홍 후보는 "최근 국정원 사태를 보면서 이 나라 최고 정보기관으로서의 국가정보원의 능력과 자질을 의심하게 된다. 천문학적인 예산을 쓰면서도 국제적 웃음거리로 전락하고 있다"면서 "국정원이 쇄신되어야 한다. 그 쇄신의 출발은 국정원장의 경질"이라고 주장했다.

'당연히' 홍 후보의 공약과 자유한국당 정책 발표집에 국정원 개혁 방안은 없다.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는 2007년 이명박과 박근혜가 대통령 후보 선출을 놓고 겨룰 때 박근혜 측 인사로 나서 국정원을 맹비난했다. 유 후보는 이명박 후보 측이 최태민 보고서 유출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는 국정원 간부를 내세워 박근혜 관련 자료를 이 후보 측에 제공했다고 주장했다. 유 후보는 "이게 캠프인가, 범죄 집단인가"라며 강하게 반발하면서 국정원을 항의방문하고 관련자 처벌을 촉구했다. 박근혜로부터 배신자로 찍히고 탄핵에 찬성하며 자유한국당을 뛰쳐나간 유승민 후보가 과거엔 박근혜 편에 서 국정원을 질타한 것이다.

유 후보는 국정원 조직을 뜯어고치는 방안보다는 인력 수급을 통한 개혁에 방점을 찍고 있다.

유 후보는 지난 14일 대한상공회의소 초청 특별강연에서 국세청과 검찰, 경찰, 국정원, 금융감독원, 공정거래위원회 등을 언급하면서 "이런 기관들부터 정부와 기업의 관계를 바로 잡으려면 대통령과 장관만 정신차릴 게 아니라 제도적으로 작동원리를 뜯어고쳐야 한다"며 "필요하다면 인력을 외부에서 대폭 수혈하고 기존인력을 내보내더라도 그런 개혁을 꼭 하고 싶다"고 말했다.

2015년 한나라당 원내대표 시절 유 후보는 "행정부는 지금 8000억원 이상의 특수활동비를 사용 중이다. 여기엔 청와대와 국정원, 경찰, 검찰, 국방부 등 모든 부처가 해당된다"며 제도개선을 하겠다고 밝혔다.

유 후보의 공약집과 바른정당의 정책 발표 자료집에 국정원 개혁 방안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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