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보자 간 네거티브 공방을 전달하는 데 급급해 유권자들의 ‘정치 혐오’를 부추기는 뉴스, 신뢰도가 떨어지는 여론조사 등 경마식 보도가 판치는 선거 국면에서 독자들은 ‘흥미’만이 아니라 ‘내용’도 있는 뉴스 콘텐츠에 목말라 있다.

선거 때마다 후보자들의 경쟁이 과열될수록 언론이 국민의 올바른 선택을 도울 수 있는 정책과 공약 검증 보도에 더 집중해야 한다는 지적은 나오지만, 당장 ‘잘 팔리는’ 뉴스를 위해서는 정치인들의 공격적·자극적인 발언에 집중하게 되는 게 정치 뉴스의 현실이다.

그런 점에서 19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천편일률적인 정치 뉴스에서 탈피해 현재 수면 아래서 정치판을 움직이는 시스템에 주목, 키워드별로 대선 기획 기사를 쏟아내고 있는 머니투데이 정치부(the300)의 시도는 눈여겨볼 만하다.

the300은 지난 2월17일 ‘오피니언 리더의 지지선언’을 시작으로 매일 지면을 통해 대선 기획 기사를 보도하고 있다. 주된 기획의 줄기는 ‘키워드’다. the300은 이번 대선 기획을 준비하면서 지난 1월부터 30여 개의 키워드를 뽑아냈다. 이후 팀을 나눠 사전 인터뷰 등을 진행하고 시의성과 관심도에 맞춰 보강 취재로 기사의 완성도를 높였다.

지난 2월24일일자 머니투데이 the300 대선 기획 ‘팬덤, 어떻게 선거의 주인공이 됐나’
지난 2월24일일자 머니투데이 the300 대선 기획 ‘팬덤, 어떻게 선거의 주인공이 됐나’
박재범 머니투데이 정치부장은 “현직 대통령 탄핵과 구속으로 유례없는 조기 대선이 치러지고 촛불혁명으로 정권 교체를 넘은 시대 교체가 시대정신으로 떠올랐다”며 “역사적인 19대 대선을 각 키워드를 통해 미시적으로 분석하면서 각 요소들이 어떻게 작동해 대선이라는 큰 정치 이벤트를 만들어내는지 조명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지난 2월부터 시작한 ‘팬덤’을 키워드로 한 기획에서는 후보별 팬클럽이 어떻게 형성돼 왔고 어떤 과정을 거쳐 분화와 진화를 거듭해왔는지 추적했다. the300은 “유력 대선주자 팬클럽 운영자들은 성별과 직업, 나이 등 면면이 각양각색이었지만 관통하는 것 하나는 순수한 팬심이었다”며 “팬덤 별로 가장 치열하게 지향하는 게 바로 순수성이다. 반대로 경계하는 것은 팬덤에 대가성이 개입하는 것이었다”고 전했다.

과거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를 근간으로 하는 ‘문팬’(문재인 팬클럽)은 지난해 1월 ‘문사모’(문재인을사랑하는사람들의모임)에 오프라인 토대의 ‘문풍지대’, 온라인 기반의 ‘노란우체통’, 영상과 사진 중심의 ‘젠틀재인’ 등이 합치며 거대 조직으로 탄생했다.

the300이 만난 문 후보의 최대 팬클럽 ‘문팬’ 전국 대표이자 카페지기 ‘지리산반달곰’은 50대 가정주부였다. 그는 “안희정 팬클럽 카페지기와도 얘기를 나눴는데 대의는 정권교체”라며 “경선 결과에 따라 모두 서로 도와줄 거라는 믿음이 있다. 난 노무현 정신을 믿고 노무현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믿는다”고 말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의 팬클럽은 2001년 ‘우리 안철수’란 이름으로 시작됐다. 정치인이 아닌 경영자 안철수에 대한 팬클럽 성격이었다가 안 후보가 서울시장으로 거론되던 2011년 ‘안사모’(안철수를 사랑하는 모임)’와 ‘안변희’(안철수와 함께하는 변화와 희망)이란 이름으로 확대됐다. 이후 ‘안팬’, ‘안전모’, ‘안변희’ 등 개별로 존재하던 팬클럽들은 지난해 10월 ‘국민희망’이란 이름으로 연합체를 구성했다.

한 후보 팬클럽에서 어떤 기사나 콘텐츠 주소를 공개해 집중 공략하기 위한 ‘좌표’를 찍으면 지지자들이 순식간에 수많은 댓글을 달거나 공유하는 현상도 선거 국면에서 자주 발생한다. 한 진영에서 좌표를 찍어 공세를 가하면 반대 진영에서도 가만있지 않는다. 이 같은 팬클럽 간 뜨거운 온라인 전쟁에 대해 the300은 “팬덤 사이에선 인터넷 여론에서 밀리면 끝장이라는 절박함이 느껴진다”고 소개했다.

지난달 22일자 머니투데이 the300 대선 기획 ‘대선주자사용설명서-홍준표’
지난달 22일자 머니투데이 the300 대선 기획 ‘대선주자사용설명서-홍준표’
박재범 부장은 “현장에 나온 ‘지리산반달곰’을 만나고 (곰처럼 생긴 남성을 떠올렸던) 기자들도 깜짝 놀랐다”며 “황교안 팬덤을 취재하는 과정에서는 기자 취재를 엄격히 금지한 오프라인 첫 모임을 취재하기 위해 기자가 회원으로 가입하고 회비 납부, 현장에서는 기자 신분을 숨기고 잠입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the300은 ‘팬덤’ 키워드 기획 외에도 ‘커뮤니티의 정치학’, ‘팟캐스트’, ‘SNS 플랫폼’, ‘조기대선의 숨은 실력자 정치컨설턴트’, ‘대선 후보를 만드는 사람들’ 등 여타 연속 기획에서도 그래픽과 도표를 활용해 기사의 가독성과 완성도를 높이는 세심한 노력을 기울였다.

‘커뮤니티 정치학’에서는 ‘오늘의유머’(오유)부터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에 이르기까지 인터넷 커뮤니티 성향과 주요 주제, 주 이용층, 연혁과 특성까지 상세히 분석했다. ‘대선 후보를 만드는 사람들’과 관련해선 각 대선 후보 캠프별 수행자와 스타일리스트, 사진·동영상 촬영, 연설 전담자 등을 파악해 대선 후보는 혼자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유권자의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해 캠프가 만들어내는 종합상품’이라고 설명했다.

정치 콘텐츠가 중년 이상의 남성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20~30대 젊은 층과 여성들도 재밌게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에서 시작된 the300의 대선 키워드 기획은 후보들이 내놓는 공약 검증도 이 같은 접근 방식을 취했다. 경제 공약, 복지 공약 등 단순히 분야별로 정책 공약들을 소개하는 게 아니라 실제 공약 수혜자들 입장에서 쉽고 친숙하고 전달해 보자는 의도다.

지난달 31일자 머니투데이 the300 대선 기획 ‘대선 후보를 만드는 사람들’
지난달 31일자 머니투데이 the300 대선 기획 ‘대선 후보를 만드는 사람들’
안철후 후보의 ‘단설 유치원 억제’ 발언으로 논란이 된 대선 후보 보육 공약에 대한 기사도 실제 부모들이 아이를 공립 단설 유치원에 보내기 위해 얼마나 애를 태우는지에 대한 생생한 현장 묘사로 시작된다.

“아이 엄마 100명의 눈이 한 곳을 향한다. 입구가 좁은 플라스틱 박스다. 순서가 돌아온 엄마는 긴장감에 거의 울기 직전이다. ‘도저히 못 뽑겠다’며 아이를 대신 내보낸다. 재밌는 뽑기 놀이인 듯 아이는 머뭇거림 없이 손을 넣어 탁구공 하나를 뽑는다. 도장이 찍히지 않은 하얀 탁구공. 엄마는 끝내 눈물을 쏟는다. 다음 순번엔 환호가 뒤따른다. 파란 도장이 찍힌 탁구공을 보자 탄식과 박수가 좁은 공간을 채운다. 12개의 당첨 탁구공 중 하나가 줄었다는 아쉬움의 탄식, 그리고 감출 수 없는 부러움의 박수다.”

‘Mom(엄마) 공약만? Dad(아빠) 공약도 대세’ 기사에서는 각 대선 주자들이 직장맘(mom)뿐 아니라 아빠의 마음을 잡기 위한 공약에 어떤 게 포함돼 있고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도 비교해 보도했다. the300은 남은 대선 기간에도 15대 공약을 추려 독자들이 궁금해하는 공약을 맞춤식으로 볼 수 있는 기사를 선보일 계획이다.

박재범 부장은 “공약이 워낙 딱딱하니까 ‘육아 휴직’ 이런 식으로 보게 하는 것보다 ‘아빠 공약’처럼 수혜자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틀로 보여주려고 한다”며 “우리는 남은 대선 20여 일 동안 15대 공약과 함께 다음 주부터는 인수위원회 없는 새 정부가 출범하면 준비해야 할 것들을 미국의 사례와 한국의 인수위 경험에 비춰 체크리스트로 정리하는 기사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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