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 이명박에서 박근혜 정권까지 MBC는 9년 동안 철저하게 망가졌다. 부당한 권력에 비판적인 MBC 언론인들은 2012년 파업 이후 비제작부서로 쫓겨나고 해고당했다. 뉴스는 정권 편향적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PD수첩’ 등 송곳 같던 시사 보도 프로그램은 무뎌진 지 오래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를 통해 근현대사에 드리운 그늘을 조명하던 MBC는 이제는 말할 수 없는 방송사가 돼 버렸다. 1987년 6월 항쟁으로 언론장악 빗장을 푼 방송사 노동조합 활동도 위축됐다. 미디어오늘은 87년 체제 30년을 맞아 전·현직 MBC 언론인과 전문가들의 생각을 담고 권력의 언론장악 구조를 분석해 MBC 사태를 되짚으려 한다.>

“tbs가 잘 되니 배 아프지 않으세요?”, “tbs가 잘 되니까 되레 내 이름이 거론되던 걸. 우리처럼 전임, 후임 사장이 소통하고 친한 곳이 있을까? 나랑 정찬형 tbs 사장은 MBC에서 언론 운동도 열심히 했어요. 난 체포됐지만 그 친구는 구속됐지.(웃음) 아, 손석희도.”

질문 하나를 던졌더니 유려한 입담 뽐내기다. 성경환 전 tbs 대표다. 그는 1982년 MBC에 아나운서로 입사했다. 1987년 방송민주화추진위원회, MBC 노동조합 결성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MBC 집회 현장에서 마이크는 그의 몫이었다. 그를 만나봐야겠다고 생각한 건 ‘오상진의 눈물’ 때문이었다. 2012년 파업 이후 MBC 아나운서들이 회사를 떠나는 상황을 ‘아나운서 명가’를 일군 그가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인터뷰는 지난 14일 서울 목동의 한 카페에서 이뤄졌다.

▲ 성경환 전 MBC 아나운서 국장이 지난 14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며 과거를 회상하고 있다. 그는 MBC를 떠난 아나운서들에게 “선배로서 호시절만 보낸 것 같아 미안하다”고 말했다. 사진=김도연 기자
▲ 성경환 전 MBC 아나운서 국장이 지난 14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며 과거를 회상하고 있다. 그는 MBC를 떠난 아나운서들에게 “선배로서 호시절만 보낸 것 같아 미안하다”고 말했다. 사진=김도연 기자
- 시청자들이 MBC 앞을 떠나고 있다. 다시 신뢰를 회복하기 어려워 보인다.

“이해가 안 된다. 불과 7~8년 만에 이토록 국민의 사랑을 잃어버릴 수 있단 말인가. 20년 동안 ‘만나면 좋은 친구’였는데…. 시청자들은 당시 TV를 켜면 MBC에 채널을 고정시켰다. 재미가 없으면 다른 채널로 돌렸다. 지금은 전혀 아니다. 안타까울 따름이다. 현재는 역량있는 기자, PD, 엔지니어, 아나운서가 그 안에 없지 않나. 이들이 제자리에서 일할 수 있는 처지가 되지 못한다.”

- 신뢰도 회복 방안이 있을까?

“지금 상황을 단번에 올릴 수 있는 방안이 있을까? 시청자들을 설득시킬 수 있는 무언가가 있어야 하는데 지금으로선 많이 어렵다. 다만, 밖에 있는 사람들이 복귀하고 이 사실이 알려지기만 해도 최소의 신뢰는 회복되지 않을까 싶다.”

MBC 노동조합이 주도했던 방송민주화운동은 ‘1987년 체제’ 산물이었다. 1987년 6월 항쟁 거리에서 시민들은 MBC 취재진을 향해 짱돌을 던져댔고 이에 차량이 박살나는 등 MBC 기자들은 부끄러움을 느끼며 각성하기 시작했다. 그해 방송민주화추진위원회(방민추), MBC 노동조합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성 전 대표는 “그땐 진짜 시민들이 돌을 던지던 시대 아닌가. 사실 MBC를 굉장히 자랑스러운 방송사라고 생각했었는데 시민들에게는 전혀 아니었다”고 술회했다.

- 5·18광주민주화운동 유공자라고 들었다. 그 시절 MBC 입사가 쉽지 않았을 텐데.

“학생 운동을 하다가 1980년 광주에서 감옥 생활도 하고 헌병들에게 폭행도 당하고 그랬다. 그런 전과를 가지고 MBC에 합격했는데 나를 뽑아준 사장이 이웅희 사장이었다. 독재 정권에서 장관도 지내고 했지만 동아일보 기자였을 때 박정희 3선 개헌 날치기 현장을 책상 밑에 숨어서 특종한 사람이다. 무슨 생각으로 뽑았나 싶지만 MBC에서 운동권 몇몇을 뽑았다.”

- 초창기 MBC 노동조합 결성 때 이야기를 듣고 싶다.

“6월 항쟁 열기가 뜨거워지면서 반성의 차원에서 내부적으로 움직임이 있었다. 내 경우 실제 시민들과 함께 시위에 참여한 적이 있다. MBC 중계차에 돌이 날아오는데 그때 느꼈다. 내가 생각하는 MBC와 시민들이 생각하는 MBC가 다르다는 거. 타 방송사보다 연예, 오락 프로그램이 월등했고 뉴스도 상대적으로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각성하는 계기였다.”

- 1992년 MBC 노동조합 50일 파업 땐 체포되기도 했다. 초창기 방송 민주화 운동에 열성적이었다.

“방민추 결성하고 열심히 활동했다. MBC 아나운서협의회, 한국아나운서연합회를 만들 때도 회칙을 비롯한 정관 제정에 참여했다. 노조가 생기면서 조직부장을 맡았는데, 초창기엔 마이크도 많이 잡았다. 그때가 입사 5년차였다. 노태우 정부는 여소야대로 시작했고 그러한 정치적 환경이 방송 민주화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1990년 1월 3당합당이 이뤄지면서 권력이 무소불위가 됐다. 방송이 민주화되던 시기에 제대로 찬물을 끼얹은 거다. 그런 권력의 흐름에 역행해보고자 했던 게 파업이었다.”

▲ 성경환 전 MBC 아나운서 국장이 지난 14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 도중 열변을 토하고 있다. 그는 MBC 아나운서 후배들이 회사를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 경영진들을 비판했다. 사진=김도연 기자
▲ 성경환 전 MBC 아나운서 국장이 지난 14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 도중 열변을 토하고 있다. 그는 MBC 아나운서 후배들이 회사를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 경영진들을 비판했다. 사진=김도연 기자
그가 소개한 몇 가지 사례가 있다. 1989년 3월 MBC ‘베스트셀러극장’에서 방영된 단막극 ‘신용비어천가’는 전두환 정권 찬양과 미화로 신군부에 일조한 어용 언론을 풍자했다. 극본을 쓴 이는 현재 ‘썰전’으로 유명한 유시민 작가다. 영화배우 문성근은 이 드라마로 TV에 첫 출연했다. 방송사 최초로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MBC ‘어머니의 노래’가 방영된 것도 이때였다. 성 전 대표는 “언론이 스스로 비판하고 자성하는 드라마를 방송한 것”이라며 “MBC는 이런 식으로 금기를 풀어갔다. 구성원들이 얼마나 자부심을 느꼈겠나”라고 말했다.

하지만 MBC는 1990년 9월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을 비판적으로 다룬 ‘PD수첩’의 ‘농촌, 그래도 포기할 수 없다’ 편을 방송 몇 시간 전에 불방 조치했고 1991년 1월부터 방송됐던 사회 고발성 대하드라마 ‘땅’도 일방 지시로 조기 종영시켰다. 사측은 ‘PD수첩’ 불방 사태에 항의한 안성일 MBC 노조위원장과 김평호 당시 사무국장을 해고했다. 1992년 MBC노조가 유례없었던 50일 파업에 돌입한 배경이었다.

- 손석희 앵커와 함께 구속되지 않았나.

“손석희와 정찬형은 구속됐는데 나는 체포돼 검찰청에서 조사만 받았다.(웃음)”

- 보수 진영 등 MBC 파업을 곱지 않게 보는 시선도 있다. ‘정치 파업’ 프레임이다.

“혹자들은 말한다. ‘파업하면서 왜 보도를 거론하느냐’고. 파업 이후엔 뉴스가 확실히 나아졌다. 표현의 자유 바로미터는 보도였다. 보도에 자율성이 보장되면 드라마, 다큐멘터리, 예능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보도 자율성이 방송의 모든 장르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지금은 어떠한가.”

- 현 경영진과 간부들은 그때 그 시절 노조 활동 함께 했던 동료들인데.

“눈앞에 정당하지 않은 이익이 있는데 그걸 거부하느냐 마느냐 문제다. 그런 용기가 없는 사람이 결국 후배들에게 못된 일을 하게 되는 거다. 걔네들도 다 젊었을 때 열심히 노조 운동했거든. 씁쓸할 뿐이다.”

손석희 앵커 이야기가 나왔다. 손 앵커는 성 전 대표의 1년 후배다. “아나운서로서 시사 프로그램의 제1인자가 되고 싶었는데 내 앞에 감히 넘을 수 없는 산이 버티고 있었다. 그게 손석희였다.” 손 앵커에 대한 찬사가 이어졌다.

- 손 앵커와 친분이 깊은 걸로 안다. 손 앵커는 어떤 동료였나?

“나도 아나운서로서 시사 프로그램의 제1인자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 앞에 감히 넘을 수 없는 산이 버티고 있었다. 그게 손석희였다. 그는 들어올 때부터 특출 났다. 천부적인 방송인이었다. 남들보다 몇 배는 성실했다. 그리고 책임감과 완벽성까지. (기자 질문 : 그 정도라면 질투를 느낄 법한데?) 내 역량이 그와 어느 정도 비슷해야 질투를 하지. 나는 손석희를 존경했다. 손석희에게 연예 프로그램을 시켰어도 잘했을 거다. 그중에서 그의 적성에 가장 맞는 옷이 저널리스트였다. 그러나 손석희가 MBC에 있을 때는 ‘100분토론’과 ‘시선집중’ 진행의 기회만 주어졌을 뿐 뉴스데스크 메인 앵커 기회는 없었다. MBC에서 그런 기회를 줬다면 지금 JTBC에서 하는 걸 그대로 했을 거다. 자신에게 권한이 주어지니 생각했던 꿈을 실현하고 있다. 나는 방송 진행자보다는 ‘역량 있는 관리자’에 대한 꿈을 키웠다. 부장 때 국장 연습을 했다.(웃음) 내 역할은 최고의 후배들을 양성하는 거였다. 손석희 덕에 스스로 그렇게 규정했다.”

- MBC에는 스타 아나운서가 많았다. 그 배경은 무엇이었나?

“엔터테인먼트 요소를 중시했다. 마치 연예 기획사처럼 아나운서 역량을 향상시키려 했다. TV에는 어떻게든 출연시켰다. 나를 포함해 2~3명을 빼고 거의 다 투입했다. 드라마, 코미디만 빼고 전 영역에 출연했다. 신입 아나운서의 경우 3년 정도는 모든 장르 프로그램에 투입했고 3년이 지난 후 자타공인이 되면 특정 장르에 전문화하게 만들었다. 인터넷과 케이블이 신장할 때였고 재미를 추구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보지 않으려 했다. 지상파 방송도 전통적인 방식만 고수하면 위태롭다고 생각했다. ‘아나테이너’라는 말이 그때 나온 것이다. 유재석, 김제동 같은 아나운서를 만들어내겠다는 포부였다.”

▲ 오상진 아나운서가 지난 5일 방송된 MBC 예능 프로그램 ‘라디오스타’에 출연해 눈물을 흘렸다. 그는 이날 방송 클로징에서 “고향에 와서 조명 밑에서 일하는 것 자체가 너무 감개무량하다”고 말했다. 사진=MBC 화면 캡처
▲ 오상진 아나운서가 지난 5일 방송된 MBC 예능 프로그램 ‘라디오스타’에 출연해 눈물을 흘렸다. 그는 이날 방송 클로징에서 “고향에 와서 조명 밑에서 일하는 것 자체가 너무 감개무량하다”고 말했다. 사진=MBC 화면 캡처
현재는 MBC를 떠났지만 2000년대 중후반 김성주 아나운서와 오상진 아나운서 등이 대표 케이스였다. 오상진 아나운서의 경우 지난 5일 방송된 MBC 예능 프로그램 ‘라디오스타’에 출연해 눈물을 흘렸다. 2012년 공정방송 쟁취 파업에 참여했다가 사측에 찍혀 한동안 일감이 주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이날 방송 클로징에서 “정말 오래간만에 MBC에 와서”라며 눈물을 떨궜다. “고향에 와서 조명 밑에서 일하는 것 자체가 너무 감개무량하다”는 그의 말은 ‘잃어버린 5년의 MBC’를 보여주는 말과 다르지 않았다. 2012년 파업 이후 박혜진·최윤영·서현진·나경은·오상진·최현정·문지애·방현주·김경화·박소현·김정근 아나운서가 MBC를 떠났다.

- MBC 후배들이 MBC를 떠났다.

“MBC에서는 더는 할 일이 없었기 때문에 떠났다고 생각한다. 일은 하고 싶은데 주어지지 않으니까. MBC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남아있는 사람대로 힘들다. 떠나는 이들을 붙잡지 못하는 것에 괴로워한다. 2012년 이후 방송이 정상화됐다면 10~20년 동안 스타 아나운서였을 친구들이다. 시청자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인재들인데 그 기회를 상실한 것 같아 안타깝다. 선배로서 호시절만 보낸 것 같아 미안하고.”

- MBC 정상화 방안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국회에는 언론장악방지법이 계류 중이다. 공영방송 이사진을 7대6으로 하자는 거다. 그럼에도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사 수를 늘릴 필요가 있다. 이사 수를 늘리면 누가 사장이 될지 예측이 어렵다. 사장 선임 과정이 투명해진다. 그렇게 되면 제대로 된 공영방송 사장을 선임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 하지만 김장겸 MBC 사장이 선임되는 등 박근혜 정부 체제 인사들이 MBC를 틀어쥐고 있다.

“법대로 하면 이들 임기는 보장된다. 현행법을 개정해야 하는데 정권이 옛 야당으로 교체된다고 해도 당장 가능한 일인지 의문이다. 현실적으로 어려운 측면이 있다. 저들이 불법을 저질렀다고 해서 새로운 정권도 똑같이 불법을 저지를 순 없는 노릇이다. 노태우 정권 초기 상황이랑 똑같다. 이 때문에 이른 시일 내 희망을 점치긴 어려울 수 있으나 미래는 아무도 모른다.”

성 전 대표는 2011년 12월 tbs 사장에 임명돼 2015년 12월까지 재직했다. 후임은 MBC 라디오 PD 출신 정찬형 현 tbs 사장이다. 두 사람은 입사 동기다. 지금도 정 사장과 손 앵커, 성 전 대표는 한 달에 한 번 만남을 갖는다고 한다. ‘tbs가 잘 나가서 배 아프지 않느냐’는 질문을 하자 “정찬형 사장이 최순실이라는 핵폭탄급 이슈를 완벽하게 받아먹었다”고 웃었다.

▲ 성경환 전 MBC 아나운서 국장. 사진=김도연 기자
▲ 성경환 전 MBC 아나운서 국장. 사진=김도연 기자
- tbs가 라디오 시장 청취율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내가 있을 때도 tbs에는 자기검열이라는 게 없었다. 제작진 실력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시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만큼 시민이 주인이라는 생각을 갖고 방송하라’는 주문만 했다. MBC가 그랬듯 국장에게 권한을 위임했다. tbs PD, 기자 등 방송인들 역량이 탁월했다. 그 자율성의 한계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걸릴 때까지였다.(웃음) 그런데다 정 사장의 뛰어난 감각이 맞아떨어진 거다. 최순실이라는 핵폭탄급 이슈를 완벽하게 받아먹었다. 다른 곳에서는 그런 역량이 없고 스스로들 감당할 수 없으니 고민만 하고 있었다.”

- 박원순 시장의 언론관은 어떠한가?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 시민 운동할 때부터 언론 생리를 잘 아는 분이다.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고자 했다. 자율성 보장은 제작진들의 자율성과 책임으로 이어졌다.”

- 정권 교체가 가시화됐다고들 말한다. 차기 대통령 언론관은 어떠해야 하나?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언론과 권력 관계는 건강한 긴장 관계여야 한다. 권력은 비판을 감수해야 한다. 언론을 자기 무릎에 올려놓고 애완견이 되길 바라면 안 된다. 그 결과가 어떠했는지 우리가 목도했지 않나. 지난 5년 동안.”

[이제는 말할 수 없는 MBC 기획 1-①] 시민의 희망이었던 MBC, 시민의 절망이 되다
[이제는 말할 수 없는 MBC 기획 1-②] 김재철·안광한·백종문, 그들도 한때 파업 전선에 있었다
[이제는 말할 수 없는 MBC 기획 2-①] 5·18 기획 다뤘더니 특전사 웃통 벗고 시위까지 열었는데
[이제는 말할 수 없는 MBC 기획 2-②] MBC PD수첩 반대집회에 추선희와 주옥순도 있었다
[이제는 말할 수 없는 MBC 기획 3-①] “공영방송 정상화 되는 길에 다시 만나자”
[이제는 말할 수 없는 MBC 기획 4-①] 시청자의 눈과 귀, 그리고 심장이 되고 싶었던 아나운서
[이제는 말할 수 없는 MBC 기획 4-②] MBC 아나운서들은 어디로 갔을까
[이제는 말할 수 없는 MBC 기획 5-①] “용마에게 한마디 전하고 싶다. 절대 포기하지 마라”
[이제는 말할 수 없는 MBC 기획 5-②] 
방송기자상 받은 MBC 기자들 어디 갔나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