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보도담당 사장 손석희 앵커는 박근혜 탄핵에 이은 조기대선에서 ‘악명 높은’ 대선면접관으로 등장했다. 대선 후보들은 손석희에게 탈탈 털릴 수 있는 ‘위기’를 각오하고 통과의례처럼 ‘뉴스룸’에 출연해 압박면접에 응하고 있다. 선거에 이기기 위해서다.
직설화법은 2000년대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부터 유명했던 손석희의 스타일이다. 일종의 ‘아이스브레이킹’이 없기 때문에 지지자 입장에선 예의가 없다고 느껴질 정도지만 가장 묻고 싶었던 질문을 한 발 물러섬 없이 집요하게 던지며 뉴스수용자의 궁금증을 해소시키고 있다.
손석희의 대선면접에서 고배를 마신 이는 아쉽게 대선무대를 떠났다. 지난 2월20일자 ‘뉴스룸’에 출연한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20여 분간의 인터뷰에서 ‘선의’라는 표현 하나를 놓고 집중 추궁 당했다. “박근혜·이명박도 선한 의지로 정치를 하려 했는데 법제도를 따르지 않았다”는 발언을 주워 담기에는 이미 늦은 뒤였다. 안희정 지사는 ‘통섭’ 같은 철학적 개념을 동원했지만 손석희를 비롯한 대중을 설득시키지 못했다.이 무렵 20%까지 올랐던 안희정 지사의 지지율은 인터뷰 이후 급속히 꺾이기 시작했고, 민주당 경선에서 탈락했다. 안희정 지사는 4월5일 충남도정 직원조회에서 “손석희 ‘뉴스룸’에서 곤욕을 치렀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이처럼 손석희는 생방송 인터뷰에서 궁금증이 해소될 때까지 비슷한 질문을 반복하는 방식으로 인터뷰이가 진심을 털어놓게 만든다. 2016년 11월28일 출연한 문재인 민주당 대선후보에겐 ‘박근혜 즉각 퇴진이 조기대선을 의미하는 것이냐’는 질문을 9차례 반복했다.
손석희는 안철수 후보가 경선에서 승리한 날(4월4일) 곧바로 “(대선이) 1대1구도로 간다고 말했는데 현실적으로 다른 후보들도 있는데 단일화작업 없이 1대1로 간다고 보느냐”고 물었다. “국민들이 만들어주는 연대가 뭐냐”고 물었고, “광주경선에서 불법동원 의혹 제기됐다. 상황을 어떻게 파악하고 있나”고 물었다. 안철수 후보는 “위법적 부분 발견되면 단호하게 대처할 것”이라 답했는데 손석희는 이 답변이 충분치 않다고 판단한 듯 같은 질문을 세 번 반복했다. “사실이라면 새 정치와 동떨어진 구태”라고도 지적했지만 안 후보는 “단호하게 대처하겠다”고만 답했다. 결국 안철수 후보는 같은 답변을 세 번 반복했다. 손석희는 “상황파악이 잘 되시지 않은 것 같아 더 질문하지 못 하겠다”고 말했다.
손석희의 ‘압박면접’에 응수하는 방법 중에는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후보 같은 ‘자폭’ 전략도 있다. 홍준표 후보는 4월4일 손석희와 인터뷰에서 손석희 몇몇 질문에 “인터넷에서 찾아봐라”, “오랜만에 만나서 좋은 이야기하지 뭘 자꾸 따지냐. 작가가 써준 거 읽지 말고 편하게 물어라”라며 막말을 내뱉었다. 손석희를 싫어하는 보수층을 결집하려는 의도적인 도발이었지만 이후 4월7일자 한국갤럽 호감도 조사에서 그는 비호감 1위(77%)라는 불명예를 껴안았다.
손석희는 4월11일 국민의당 박지원 대표를 스튜디오로 불러 국민의당이 사드 배치 철회입장이었는데 안철수 후보가 사드 배치 찬성입장인 것에 대해 집중 추궁하며 “선거 유·불리에 따라 바꿀 수 있는 것이냐”고 물었고 박지원 대표는 “손석희 앵커께서는 늘 우리를 좀 회색적으로 보시는데 그러실 필요 없다”고 답해야만 했다. 박지원 대표는 이어 “왜 꼭 국민의당만 JTBC에서 그렇게 파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서운함을 드러냈지만 손석희에게 통할 리 없었다. 손석희는 “그런데 왜들 그러십니까? 저희는 민주당 문제도 다루고 있다”고 응수했다.
손석희는 4월10일자 뉴스룸 ‘소셜라이브’에서 “검증해봤더니 훌륭하다하는 경우는 어느 언론도 없다. 양측에서 다 욕을 먹는게 숙명”이라고 말했다. 손석희는 4월12일자 앵커브리핑에서 “선거철이나, 중요한 정치적 사건이 벌어지면 언론은 늘 어느 쪽으로 부터든 공격을 받는다. 저희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질문할 수밖에 없다. 따지고 보면 지금의 상황이란 것은 지난 4년 동안 제대로 질문하지 못했거나 질문했어도 무시당했기 때문이 아닌가”라고 되물었다.
반면 손석희가 진행하는 ‘뉴스룸’은 특정 후보를 지지하지 않고 모든 후보에게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는 저널리즘 원칙을 채널의 고정관념으로 만들어냈다. 그래서 사람들은 뉴스가 있을 때 손석희를 찾고, 손석희는 악명 높은 대선면접관으로 이에 화답하고 있다. 십 수 년 간 정치권으로부터 폴리널리스트라는 달콤한 유혹을 물리치고 인터뷰이와의 사사로운 인간적 관계를 만들지 않으며 대가를 바라지 않았던 삶이 갖는 손석희만의 무게감이 오늘의 ‘압박면접’을 가능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