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이 욕망을 만들어낼까, 아니면 욕망이 물건을 만들어낼까? 애매모호하면, 물건 대신 상품이라고 해보자. 양자의 차이는 구매자가 전제되느냐의 차이다. 정성들여 만든 물건은 본인이 직접 사용하거나 가까운 친구에게 그냥 줄 수도 있다. 하지만 상품은 판매를 전제로 만들어진다는 점에서 그 성격이 완전 다르다. 그러니까 상품은 그것을 구매하는 사람의 욕망을 전제로 만들어진다. 판매를 위해서라면 ‘없던’ 욕망도 만들어내야 한다. 이렇게 상품이 욕망을 만들어내는 시스템을 우리는 자본주의 시장경제라고 부른다.

그런데, 없던 욕망은 누가 만들어낼까. 바로 미디어다. 드라마로, 영화로, 음악으로, 예능으로 그리고 무엇보다 광고로써 미디어가 만들어낸다. 이것이 이른바 미디어 자본주의이고, 오늘의 디지털 시대엔 디지털 자본주의가 된다. 이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네트워크 경제는 더 촘촘하고 세밀한 욕망을 생산할 수 있는 기술경제다. 그것은 사회를, 계급·계층을, 우리의 소비생활을 더 세분화 시키고, 개인의 취향(개취)마저 만들어 낸다. 없던 욕망이 생긴 시청자들은 이제 스스로 그 욕망을 더 크고 세밀하게 키운다.

집단의 취향에 익숙하던 근대는, 거대한 공룡의 시대는 이렇게 디지털 미디어가 해체하고 있다. 소규모 팟캐스팅만 1만 여개에 달한다. 아프리카TV도 게임, 먹방, 스포츠 등 수 천 여개의 채널이 개인의 취향에 맞춰 개인들이 방송한다. 사정이 이러니, 오늘 미세한 일상의 흐름을 포착하기엔 대형 방송사들의 몸집은 너무 큰 것일지 모른다. 예컨대 MBC가 아프리카 TV를 모방하여 ‘마리텔’을 방영하고 있지만, 자유분방한 아프리카TV의 BJ들을 따라가기에 역부족이다. 동시간대 방영되는 JTBC ‘아는 형님’에도 밀리면서 아무리 새로운 출연진을 내보내도 시청률은 5%에도 못미친다. 이전에 모르던 세밀한 맛을 알게 했으니 이젠 더 맛있는 것을 내놓으라는 시청소비자의 커져버린 욕망이다. 상품과 욕망의 ‘부정변증법’이다.

▲ JTBC 예능프로그램 ‘아는형님’
▲ JTBC 예능프로그램 ‘아는형님’
이렇듯, 종합편성의 시대는 근대자본주의의 해체와 함께 저물고 있다. 몇 개 프로그램을 제외하곤 전체 시청률은 몇 년째 계속 하락세다. 아니, 아예 시청률이라는 근대적 방송의 철의 법칙 자체가 무너지고 있다. 종이신문이나 온라인신문은 구독자나 방문자수를 비교적 자세히 판별하고 취향 파악도 용이하다. 반면, 선별된 시청가구 표본을 대상으로 조사되는 TV시청률은 전체적으로 감소추세일 뿐 아니라, 표본에 선정된 가족구성원들은 시청 중에도 자신이 일종의 관찰대상임을 이미 인지하고 있어서 실질적인 취향과 사실 거리가 멀다. 더구나 광고주들도 점차 이 사실을 알기 시작했다. 막강한 힘을 자랑하던, 근대적인 시청률의 개념은 이렇게 그 공허함을 드러내며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KBS나 MBC 같은 지상파 종편이야 이런 상황에 대해 막강한 ‘절대 자본’을 투하해서, 예컨대 디지털 전문채널을 설립하는 방식으로 세분화된 시청자층을 확보하면 그래도 버텨낼 수는 있겠지만, 상대적으로 영세한 케이블 종편은 살아남기 위해, 비용절감과 시청률을 잡기 위해서 방송의 공정성 따위 던져버리는 참담한 방송을 내보내고 있다. 대선국면이니만큼 정치 프로그램만 놓고 보자.

모두 30여개가 넘는 케이블 종편들의 정치시사 또는 정치예능 프로그램들은 우선 출연진들이 겹쳐서 어떤 게 어떤 프로그램인지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최근 민주언론시민연합이 3월24일부터 4월4일 총 11일간 종편3사(TV조선, 채널A, MBN)를 모니터링한 바에 따르면, 겹치기 전문 출연자들의 허망하고 영혼 없는 발언들도 문제지만, 보수성향의 출연자가 5명 출연할 때 진보성향 출연자는 1명만 출연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정치 시장(市場)에서의 자유경쟁조차 무색해지고 있다. 현직의원의 출연도 잦은 편인데, 이 기간 정의당 소속 의원은 단 1명도 없다. 더구나 정치인보다 더 많이 출연하는 직군은 다소 황당하게도 언론인이다. TV조선은 조선일보 기자, 채널A는 동아일보, MBN은 매일경제 기자들이 대거 출연하고 있는데, 현직의원·정치인의 비율이 21%, 변호사가 13%인 반면, 언론인은 35%에 달하는 높은 출연비율을 보이고 있다. 계열사의 기자를 출연시키면 비용절감 효과를 볼 수 있겠다.

맥락에 맞지 않는 막말도 많다. MBN ‘판도라‘의 한 전직 의원은 안경을 쓰지 않아야 대통령이 된다는 취지의 황당 발언도 거리낌 없이 한다. 다른 정치적 견해를 가진 상대방에 대한 인신공격도 자주 눈에 띈다. 정적의 이견에 대해 예컨대 독일의 전 총리 빌리 브란트(Billy Brandt)는 호통을 치며 포효하는 모습으로 유명했는데, 마녀사냥에 대한 단호함이었지 인신공격성 막말은 아니었다. 한편, 정치예능 프로그램들은 연예인들을 진행자로 내세우고 있다. 남희석씨가 채널A ‘외부자들’을, 배철수씨가 MBN ‘판도라’, 그리고 최고 시청률 11%까지 올렸던, 나름대로 자리를 잡은 것으로 평가받는 JTBC의 ‘썰전’은 한때 막말로 유명세를 탔던 김구라씨가 진행한다.

▲ 채널A 프로그램 ‘외부자들’
▲ 채널A 프로그램 ‘외부자들’
정치시사에 치우쳐서 종편이라는 이름이 무색한 케이블 종편들은 이렇듯 그마저도 예능으로 만들고 있다. 정치예능은 얼핏, 복잡한 정치에 쉽게 다가가도록 하는 것처럼 보인다. 나름 재미도 있다. 다만 대선 후보들의 정책 점검을 집요하게 파고들기 보다는 그들 개인에 대한 집착이 난무하고 있다. 채널A는 안철수 후보의 연설 스타일이 루이 암스트롱과 닮았다며 광대놀음 같은 가벼운 이야기들로 채웠다.

문제는 이래도 시청률이 별로 오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치적 균형을 버리고, 정치 비전문가인 연예인이 진행을 맡는 등 정치시사 프로그램의 자존심을 버리면서까지 예능으로 만들고 있는데도 말이다. 그 원인은 TV시청률이라는 근대적 개념의 해체가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찾아야할지 모른다. 오늘 시청자의 욕망은 더 큰 욕망으로, 더 분화된 욕망으로 진화하고 있다. 여기 종편의 대응은 그러나, 여전히 시청률이라는 근대적 개념에의 집착이다. 자신들이 만들어낸 욕망이 자신들의 목숨을 옥죄어오는 이 황량한 디지털 자본주의의 시대에 종편은 어쩌면 마지막 콘서트에 올인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것은 시청률에 대한 향수가 담긴 슬픈 연가처럼 느껴진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