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태경 토지정의시민연대 사무처장이 기고문을 보내왔습니다. ‘안철수 대통령’이 불안한 이유에 대한 입장을 정리한 글입니다. 이 글에 대한 반론이 있다면 반론글 역시 게재할 생각입니다. 미디어오늘은 다양한 견해와 토론을 환영합니다.

대한민국처럼 학벌이 신분인 사회에서 서울대를 나온 사람들은 자신을 고귀한 혈통으로 여기기 쉽다. 서울대를 나오고 법조인, 의사, 기자, 교수, 관료 등 전문직을 20년 남짓한 중년의 남성들은 직업정치를 꿈꾼다. 이들은 입시를 치러 서울대를 가고, 서울대를 간 후 고시를 봐 법조인이 되고, 법조인이 된 후 승진을 하고, 승진을 한 후 국회의원, 지자체장, 장관, 대통령이 되는 인생만을 성공한 인생이라 여긴다.

나는 안철수가 이 범주에 해당하는 건 아닌지 근심된다. 안철수 팬덤의 정체는 서울대 출신, 의사, 성공한 벤처 기업가, 교수, 갑부 등 안철수가 지닌 화사한 이력이 한국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열광하고 간절히 열망하는 성공코드를 정확히 터치한데 힘입은 바 크다.

안철수를 둘러싼 성공신화의 아우라에서 한 발짝 떨어져 안철수를 보자. 나는 성공신화의 아우라를 벗어난 안철수에게서 정확한 역사인식도, 확고한 정의관도, 악에 대한 견결한 투쟁심도, 공적 가치에 대한 헌신성도,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한 애틋한 연민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안철수에게 강하고 정의롭고 자유롭고 평등한 대한민국에 대한 비전과 이를 실천하기 위한 정책패키지가 있는 것 같지도 않다. 그리고 박근혜가 신물나게 보여줬듯 중요한 건 정책의 우수성 보단 정책을 실현하려는 의지와 열망이다.

▲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가 11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에서 열린 한국유치원 총연합회 '사립유치원 교육자대회'에 참석해 교육 정책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가 11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에서 열린 한국유치원 총연합회 '사립유치원 교육자대회'에 참석해 교육 정책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거의 모든 언론이 상찬하는 정치인 안철수의 진화도 내 보기엔 시험 공부하듯 정치공학을 습득한 것에 불과하다. "강철수"니 "독철수"니 하는 레토릭은 안철수 자신을 위한 것일 뿐 새로운 대한민국을 향해 있진 않아 보인다.

게다가 안철수는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특권과두동맹의 간택을 받은 것처럼 보인다. 특권과두동맹의 나팔수라 할 거의 모든 언론이 일치단결해 안철수 대통령 만들기에 올인하는 것, 언제나 새누리당을 지지하던 유권자 대부분이 안철수 지지로 돌아선 것 등이 그 방증이다.

나는 안철수에게 좋은 대한민국을 만들려는 선의가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안철수에게 설사 그런 의지가 있다고 해도 과점언론의 전폭적인 지지와 새누리 지지성향 유권자들의 몰표로 집권한데다 한줌 밖에 되지 않는 국회 의석을 가지고 안철수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겠는가? 특권과두동맹과의 정면대결을 통한 대다수 유권자들의 사회경제적 지위 향상은 고사하고 변변한 개혁도 어려울 것이다.

누가 대통령이 되건 대한민국을 근본적으로 개조해 정의롭고, 강하고, 자유롭고, 평등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서는 특권과두동맹과의 정면대결이 불가피하다. 그런데 내 상상력의 범위 내에서는 특권과두동맹과 장엄한 싸움을 벌이는 안철수가 잘 그려지지 않는다. 안철수를 바라보는 내 눈동자는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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