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오늘은 오늘부터 제19대 대통령 선거 언론보도와 관련해 연속 칼럼을 게재합니다. 이번 칼럼 연재는 전국언론노동조합과 한국언론정보학회 저널리즘학 연구회의 공동기획으로 진행됩니다. -편집자주


여론조사인가 아니면 여론조작인가?

촛불혁명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될 것이라는 기대를 심어주었지만 언론의 대선보도 행태는 이러한 기대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선거의 주인공인 유권자들은 안중에 없고 대선후보들에 대한 단편적인 보도만 난무한다는 것이다. 언론사들의 대선후보에 대한 여론조사 관련 보도가 그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각 당의 대선 후보가 확정되면서 언론사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대선후보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를 집중 보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들이 의뢰한 여론조사는 후보들의 지지율 조사에 멈춰있다. 유권자들이 후보들에게 무엇을 바라는지를 알아보는 여론조사는 찾기 힘들다. 이러한 방식이 경마식 보도를 양산하고 유권자의 권리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속적인 비판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한국의 선거 관련 여론조사가 보여주었던 행태를 똑같이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이러한 여론조사가 과연 신뢰할 만한 것인지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도 커지고 있다. 급기야는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 샘플링 방식 등 의혹이 제기돼 선관위에서 심의 조사에 착수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 2016년 12월22일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와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왼쪽)가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보수와 진보, 함께 개혁을 찾는다’ 토론회에서 남경필 경기도지사의 발언을 듣고 있다. ⓒ 연합뉴스
▲ 2016년 12월22일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와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왼쪽)가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보수와 진보, 함께 개혁을 찾는다’ 토론회에서 남경필 경기도지사의 발언을 듣고 있다. ⓒ 연합뉴스
여론조사 내용의 문제나 신빙성 유무를 떠나 상당수의 여론조사가 ‘문재인-안철수 양자대결’에 관한 조사를 실시하고 있다는 것도 문제다. 대선 때만 되면 우리 언론은 가상 대결에 관한 여론조사를 실시하고 후보들의 지지율 추이분석에 매달려왔었다. 그러나 대선주자의 양자구도가 현실성이 낮음에도 이러한 상황을 일부러 가정을 해서 여론조사를 실시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심지어 이러한 조사들은 대부분 단일화 배경에 대한 설명조차 하지 않고 있다. 혹 언론이 양자대결구도를 통해 특정 후보에게 유리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여줌으로써 여론을 왜곡하려 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심마저 든다. 보수언론사들은 안철수 후보를 중심으로 한 반문연대를 부추기는데 이러한 양자대결을 전제로 한 여론조사 결과를 이용하고 있고, 언론사에 따라서는 특정 후보가 앞지른 여론조사만 골라서 보도하는 곳도 존재한다. ‘언론은 이미 기울어졌다’라는 말까지 들린다. 문제는 이러한 언론사의 보도가 일부 유권자의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한국 언론의 자세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일간지, 르 파리지앵의 행보를 떠올리게 한다. 이 매체는 지난 1월, 선거여론조사 의뢰를 중단할 것을 선언했다. 사회적 이슈에 관한 유권자들의 의견을 묻는 여론조사는 실시하되 후보 지지율에 관한 조사는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 매체가 이처럼 극단적인 선택을 한 이유는 자명하다. 지난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의 승리, 영국의 브렉시트 국민투표, 프랑수아 피용 전 프랑스 총리의 공화당 대선후보 결정 등 여론조사가 실제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문제의식 때문이었다. 이로 인해 르 파리지앵은 여론조사보다는 유권자의 요구를 파악하고 현장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현장 저널리즘’에 집중하면서, 정치적 토론을 활성화하는 저널리즘 본연의 임무로 돌아갈 것을 약속했다.

한국 역시 2016년 총선에서 이미 여론조사가 허구임이 증명되었지만, 그 어떤 언론사도 이런 선택을 한 경우는 없다.

불공정성, 편파성… 언론의 선거보도 관행은 여전

언론의 대선보도에 민주시민의 권리를 위해 유권자가 알아야 하는 후보 검증이나 정책 공약 보도는 거의 없고 피상적인 보도가 주를 이룬다는 것도 문제다. 더군다나 이 보도들은 많은 경우 공정성을 잃은 편파보도나 단순 받아쓰기 보도에 가깝다.

4월 초, 각 당 대선후보가 결정된 이후, 각 캠프에서는 정치공세 차원에서 다른 당 후보를 목표로 삼는 의혹제기와 공방이 이어졌다. 문제는 정치권의 소모적 정치공방에 휘말리지 말고 정책대결로 유도해야 할 언론이 이들의 네거티브 전략을 사실상 부풀리고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문재인 아들 특혜 의혹’이다. 물론 후보 검증은 필수고 의혹이 있다면 밝혀야 한다. 그러나 몇몇 언론은 사실여부를 확인하지도 않고 의혹 제기 주체의 주장만을 옮기거나 의혹을 둘러싼 설전을 가십성으로 보도하는 것에 그쳤다. 대선 주자 검증이라는 명목으로 검증은 없고 받아쓰기 보도만 한 셈이다.

▲ 4월12일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열린 주한미국상공회의소, 주한유럽상공회의소 초청 ‘주한외국경제단체와의 대화’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 4월12일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열린 주한미국상공회의소, 주한유럽상공회의소 초청 ‘주한외국경제단체와의 대화’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문재인 후보에 대한 보수언론의 공격은 상당히 노골적이다. 에를 들어, 지난 4월4일자 조선일보에 실린 ‘반문선거컨설팅’에서 제공한 “대선은 지금부터가 시작이다”라는 제목의 칼럼은 여권을 향해 선거용 조언을 내놓으면서 ‘문재인 후보에 대한 흑색선전을 하라’, ‘안보불안을 부추기라’는 등의 주장을 담았다. 유권자를 가장 효과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두려움이므로 핵에 대한 위협을 부추겨 보수 우파 유권자들이 투표장에 가게 해야 한다는 식이다. ‘한국 최고의 1등 신문’이라 자타가 공인한다는 언론사에서 언론으로서의 최소한의 양심마저 저버린 것 같아 씁쓸하다.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왔지만 각 후보들이 어떤 공약과 정책을 내세우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그 타당성 분석에 공을 들이는 언론사들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그저 구도 싸움, 네거티브 공방, 가십성 기사에 더 골몰하는 분위기다.

언론은 후보자들의 정책과 도덕성을 검증하는 것뿐 아니라 유권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단순히 지지 후보가 누구냐가 아니라 그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대선 주자들의 공약과 정책이 이에 얼마나 부합한지를 분석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유권자들의 요구가 정책에 반영되는 것을 기대할 수도 있고, 후보를 최종적으로 선택하는 데도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지금처럼 공정성을 잃은 편파보도나 분별없는 받아쓰기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이런 역할을 언론에게 기대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낡은 편가르기에 갇혀 네거티브 공방만을 지속적으로 보도하거나 대선후보에 대한 근거 없는 비난을 쏟아내는 방식은 정치에 대한, 나아가 언론에 대한 혐오만을 양산할 뿐이다. 물론 언론사가 특정 후보를 지지할 수는 있다. 그러나 자사의 입맛에 맞지 않는 후보라고 해서 ‘느낌’에 근거한 부정적인 코멘트만 늘어놓는다면 그건 유사저널리즘 행위에 불과하다. 이제부터라도 유권자가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최대한 공정한 후보 검증 및 정책과 공약의 집중 분석에 힘써 주기 바란다. 그것이 언론이 해야 할 최소한의 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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