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는 유권자에게 최대의 축제다. 정치 머슴을 뽑는 행사이기 때문이다. 대의 민주주의제는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확립한 정치제도 가운데 최신의 것이다. 그러나 정보화시대가 되면서 변화가 생기고 있다. 직접 민주주의 형식이 실천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스마트폰, 인터넷이 매개체가 되어 신속한 의사소통과 집단지성의 실현, 대규모 동원 등이 가능해졌다. 한국의 경우 2008년 광우병, 2016-17년 박근혜 게이트 상황 속 촛불이 대표적이다.

대선이 코 앞인데, 흥미 위주 보도만 하는 언론

촛불이 박근혜를 파면시키면서 19대 대선을 앞당기게 만들었다. 이번 대선은 촛불의 열기와 눈물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래서 대선 결과는 촛불이 수개월 동안 광장에서 외친 민주화와 헌법 회복의 바람이 실천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벌써 촛불 광장에서 그런 요구가 커지고 있다. 대선 후보들이 촛불의 염원을 실천할 각오를 다지고 그에 걸맞은 공약과 비전을 제시해야 하는 이유다.

대선이 한 달도 남지 않았다. 그러나 전체 분위기는 아쉽고 실망스럽다. 언론은 누가 앞서다는 식의 경마식 보도에 매달리거나 후보 검증보다 시시콜콜한 신상 문제 등에 더욱 열심이다. 개를 무는 사람을 찾는 것이 언론의 체질이라 해도 과거 기레기 언론의 모습이 어른거리는 것 같다. 후보들도 촛불의 염원을 담아낼 국민에 무한 봉사할 정책과 통 큰 비전을 제시하는 믿음직한 정치 머슴보다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식의 흥분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3월2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국무회의에 앞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사진=국무총리실.
▲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3월2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국무회의에 앞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사진=국무총리실.
이번 대선이 촛불이 탄핵한 박근혜의 아바타인 황교안 대행과 행정부가 포진한 상태에서 진행되는 측면도 아주 볼썽사납다. 박근혜와 함께 국정 농단에 책임이 있는 공직자들이 다 버티고 있다 보니 87년 6월 항쟁 후 전두환 체제 속에서 치러진 대선을 연상케 한다. 파렴치한 박근혜 추종세력들이 박과 함께 축출된 상태에서 대선이 치러졌다면 하는 아쉬움이 너무 크다.

안보 불안 방치하는 대선 보도는 재앙이다

이번 대선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드를 놓고 미국과 중국이 힘겨루기를 하면서, 한반도가 얼마나 심각하게 외세에 종속되었는가 하는 점이 확인된 상태에서 진행되고 있다. 사드로 인해 한반도 정세가 냉전시대와 달라지는 조짐이 확연한데도 대선 후보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 점도 걱정스럽다. 중국이 남북한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면서 향후 미중 갈등이 한반도에서 더욱 첨예해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사드 사태를 통해 중국이 한류와 무역, 관광 등에서 한국에 큰 타격을 주면서 대선 이후 이 문제가 어떻게 처리될지 주목된다. 중국의 사드 보복이 예고되었지만 박근혜 정권은 무대책이었고 국내 기업이나 상인들만 피 말리는 고통을 당하고 있다.

한국 정치권과 학계 등은 사드가 한미상호방위조약이라는 불평등 조약에 의해 한국 배치가 추진되는데도 이 조약에 대한 언급하지 않는 것은 해괴한 일이다. 이번 대선이 미국의 손아귀에 있는 한국의 군사적 주권 실상과 그 개선을 위한 문제제기를 할 수 있는 최선의 기회라는 점에서 매우 아쉽다. 시민사회단체라도 더 늦기 전에 발 벗고 나서야 한다. 미국에서 북한을 선제 타격할 방안도 검토 중이라는데 한국 언론은 미국 백악관의 홍보 매체인 양 보도한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4월7일(현지시각) 미국 플로리다주 팜비치 마라라고 리조트 만나 북핵문제와 한반도 사드배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사진=포커스뉴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4월7일(현지시각) 미국 플로리다주 팜비치 마라라고 리조트 만나 북핵문제와 한반도 사드배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사진=포커스뉴스
미국의 북한 공격은 한반도 전면전으로 비화되고 그것은 민족 최악의 재앙일 터인데 연합뉴스, KBS 등의 관련 보도는 강 건너 불구경하는 식의 기사를 쏟아낸다. 대선에서 안보 불안을 야기하려는, 공작 정치 뺨치는 보도의 노림수는 수구꼴통의 결집이 아닌가. 남북한 간 평화적인 공존과 교류협력과 함께 평화통일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군사적 자주권 확보 등이 시급하고 그것을 위한 공론화가 활발해야 한다. 그런데 정치 머슴을 뽑는 큰 행사에서 군사 주권의 핵심 문제를 외면하는 것에 대해 외세가 어떻게 판단할까를 생각하면 소름이 돋는다.

종북몰이 뒤에 똬리를 틀고 있는 ‘국가보안법’

사드 사태에 대한 국내에서의 미흡한 대응을 보면서 이승만 이래 실시되고 있는 국가보안법의 폐해를 실감하게 된다. 반미=친북이라는 말도 되지 않는 논리가 국가보안법에 의해 여전히 그 독기가 지독하다. 수구진영은 이번 대선을 ‘좌파에게 정권을 넘겨주어서는 안 된다’며 이구동성으로 외치고 있다. 국가보안법에 의존하는 추악한, 막가파적인 종북공세 정치행각이다. 언론도 국가보안법에 의해 수십 년을 억눌리면서 국가보안법에 마비되었거나 자기검열을 체질화한 상태다. 이번 대선도 언론의 병든 모습이 거듭 확인된다.

선거는 정권을 심판하면서 새로운 정치를 가능할 채비를 갖춘다는 중요한 행사다. 이번 대선은 민주주의와 자주권 회복, 국가보안법 폐기를 위한 최상의 기회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국가보안법에 갇힌 정치권과 언론, 시민사회의 구태의연한 모습은 실망스럽다. 해방 이후 남한의 정치발전은 민초들에 의해 이뤄졌다. 대선 이후 촛불이 분노하지 않도록 정치 머슴 등은 대오각성해야 한다.

※ 이 칼럼은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발행하는 웹진 ‘e-시민과언론’과 공동으로 게재됩니다. -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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