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6년 4·13 총선 결과는 여론조사업체에 폭탄을 던졌다. 대부분 새누리당 과반 의석을 예상했는데 완전히 빗나간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총선 사흘 전 여론조사 업체들이 예상했던 의석수는 새누리당 최소 157석~최대 175석, 더불어민주당 83석~100석, 국민의당 25석~32석이었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122석을 얻어 과반을 점하지 못했고 더불어민주당은 123석을 차지했다. 국민의당은 최대 예측 의석수를 뛰어넘어 38석을 차지했다. 지역별로는 서울 종로에서 붙은 정세균 민주당 후보와 오세훈 새누리당 후보의 총선 결과가 대표적이다. 오 후보가 정 후보를 10%p 안팎으로 앞서거나 박빙으로 예상했지만 뚜껑을 연 결과 정 후보는 52.6%, 오 후보는 39.7%로 나왔다. 정 후보는 선거에 앞서 오 후보에 17%p 뒤진 것으로 나온 KBS 여론조사를 인용하며 왜곡을 증명해 보이겠다고까지 했다.

총선이 끝나고 여론조사업체는 머리를 싸맸지만 현재까지 문제점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여론조사업체와 함께 조사를 실시하거나 여론조사 결과를 인용해 보도했던 언론의 자성도 찾아볼 수 없다.

오는 5월9일 조기 대선을 앞두고도 여론조사 결과가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문제점 개선 없이 경마중계식 지지율 조사에 집중되고 있다. 특히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의 가상 양자 대결에서 여론조사의 신빙성 문제가 제기되면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학자들과 여론조사업계가 문제점으로 제기하고 있는 것은 성·연령·지역별 인구비례에 따른 할당 추출 방식을 정부 당국이 일방적으로 적용하는 부분이다.

인구비례할당 방식은 말 그대로 인구비례에 맞춰 표본을 추출해 여론을 묻는 방식이다. 남녀의 투표율이 다르고, 지역별로도 투표율이 다른데 무조건 인구수 기준의 한 잣대를 적용하라는 것이어서 정확도가 떨어진다는 지적이 계속됐다. 특히 현재 선거 구도는 세대별, 지역별 대결 구도 경향을 보이는데 인구비례할당 방식으로는 이 같은 구도를 반영한 여론을 담는데 제한이 크다.

이 같은 지적을 반영해 선거여론조사 기준을 개정했지만 현재 나온 여론조사는 여전히 인구비례할당 방식을 따르고 있다. 여론조사기관이 인구비례할당방식에 대한 부정확성을 보정하기 위해 지역별 투표율이나 지난해 선거에서 투표 성향 등 가중치를 적용해 결과를 내놓으면, 표본이 입증되지 않았다며 실사를 나오고 수천만원의 과태료까지 물리고 있기 때문이다. 여론조사 업체 입장에선 모험을 할 필요가 없다. 대신 여론조사의 정확도는 계속 떨어질 수밖에 없다.

▲ 대표적인 여론조사 실패 사례로 꼽히는 서울 종로. MBC 화면 캡처.
▲ 대표적인 여론조사 실패 사례로 꼽히는 서울 종로. MBC 화면 캡처.
여론조사 제도를 개선하고 여론조사 공표 등록을 하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윈회(여론조사심의위)의 문제도 거론된다. 여론조사심의위가 여론조사 결과를 검증할 수 있는 전문성이 떨어지거나 메이저 여론조사 업체의 이해관계만을 반영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기 때문이다. 일례로 여론조사심의위 위원 명단만 보면 전직 여론조사 업체 관계자 2명이 포함돼 있다. 전문성을 갖춘 정치학과 통계학 박사는 3명이다. 전체 11명 중 5명을 뺀 6명은 시민단체 위원, 경영학, 법학 박사, 전직 중앙선관위 직원으로 구성돼 있다.

이에 대해 여론조사심의위 관계자는 “현직에 있는 여론조사업체 대표는 문제가 제기돼 이미 지난해 사퇴를 했고, 전문성을 보완하기 위해 통계학을 연구하는 직원을 채용하거나 자문위에 통계학과 사회학을 공부한 사람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여론조사심의위원회가 조사의 편향과 남발을 막는다면서 군소 여론조사업체 규제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심의위원회는 여론조사업체 등록요건 준비기간을 3개월을 두고 실사를 벌이고 있다. 여론조사업체에 2년 이상 근무한 1명 이상을 포함한 3명 이상이 상근하고, 여론조사 실시 실적이 10회 이상 또는 매출액이 5000만 원 이상 등을 조건으로 내세워 이를 충족하지 못한 여론조사업체는 오는 5월9일 퇴출시키기로 했다. 전문성 없는 여론조사기관의 난립을 막는 방안이라고 하지만 군소 업체에만 유독 엄한 잣대를 들이대면서 정부가 생사를 박탈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론조사의 정확성을 높이는 방안에 대해서는 보수적으로 적용하면서 손쉬운 퇴출 방안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론조사 사전 신고제도 문제다. 심의위원회는 제3자로부터 여론조사를 의뢰받은 여론조사 기관과 단체, 정당과 방송사업자, 신문사업자와 정기간행물 사업자, 뉴스통신 사업자, 전년도 말 기준 직전 3개월간 일일 평균 이용자수가 10만명 이상인 인터넷 언론사의 경우 여론조사 개시일 전 이틀 전까지 신고를 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이에 해당되지 않는 여론조사업체와 단체는 긴급한 사안이 터져도 즉각 여론조사를 실시할 수 없고 신고를 해야 한다.

언론과 메이저 여론조사업체가 동업자로서 거대한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업체가 자체 조사를 내놓더라도 포털에 올라가지 못하는 현실 때문이다. 한 여론조사업체 관계자는 “역사가 깊은 한 여론조사업체가 자체 결과를 내놓아도 언론사를 끼지 않으면 조사 결과가 포털에 올라가지 않는다”면서 “대부분 언론과 함께 하는 여론조사 업체는 스폰이라고 보면 된다. 언론은 조사업체에 최소한의 실비도 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언론과 여론조사 업체의 특수한 관계 때문에 여론조사 결과가 오염되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메이저 여론조사업체가 예측 조사를 내놓지 않는 것도 여론조사의 신뢰를 깎아먹는다는 지적이다. 자체적인 조사 기법으로 얼마나 선거 결과에 근접했느냐를 볼 수 있어 투표가 끝난 직후 내놓는 예측조사는 여론조사업체의 신뢰성과 연결된다. 투표일을 포함해 6일 전부터 여론조사 공표가 금지되지만 투표가 끝난 직후 여론조사 업체는 여론조사심의위원회가 정한 방식의 제한을 받지 않고 자체 기법과 사후 보정(가중치)를 해서 예측 조사를 내놓을 수 있다. 여론조사 업체의 진짜 '실력'을 볼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인 셈이다.

하지만 메이저 여론조사 업체는 예측조사 결과를 내놓지 않는다. 결과가 엇갈릴 경우 치명타를 입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해외의 경우 여지없이 예측조사를 내놓는다. 정확도가 높은 실험적인 새로운 설문과 기법을 공유하면서 여론조사업계 전반의 발전을 앞당길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경우 선거 전 내놓은 여론조사에 대한 신빙성에 대해선 말들이 많다. 하지만 정작 선거가 끝나고 개표결과의 편차를 줄이는 싸움은 외면하고 있다. 매번 여론조사의 정확성 논란이 반복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해외의 경우는 어떨까. 프랑스의 경우를 예로 들면 지난 1995년 죠스팽과 시라크가 결선에서 맞붙었을 때 대부분 여론조사 기관은 죠스팽의 승리를 예측했지만 결과는 시라크 당선이었다. 당시 프랑스 시민들도 여론조사의 신빙성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논쟁이 붙었고 여론조사에 대한 반성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미국의 경우도 트럼프 당선을 전혀 예측하지 못하면서 공황상태에 빠졌다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안병진 교수는 자신의 책 <미국의 주인이 바뀐다>에서 “이번처럼 집단적으로 예측이 실패하여 정신적 공황 상태에 빠진 사례는 없었다. 최근 미국 신문의 칼럼에서는 이 예측 실패에 대한 자기 반성으로 글을 시작하는 경우가 심심찮게 보인다”면서 “트럼프 현상의 배후에 관해 사회학적 심층 분석을 전개하기 시작했고 예측 실패에 대한 자기 고백을 늘어놓았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한국 지식인의 반응이다. 특히 아직까지 (4·13 총선 예측 실패에 대해)자기 고백의 스토리텔링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라고 썼다.

프랑스와 일본에서 여론을 연구한 최인숙 박사는 “예측은 실패할 수 있다. 하지만 결과를 내놓고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한다. 해외의 경우 여론조사의 새로운 방법론을 공유한다”며 “여론조사업계는 물론 학자들도 새로운 시도를 하고 치열하게 싸워야 한다”고 말했다.

프랑스 학계에선 여론조사 기법으로 개방형 질문지와 폐쇄형 질문지 두개를 놓고 어느 쪽이 여론을 더욱 정확히 반영할 수 있을지 사회적 논쟁을 벌이면서 여론의 중요성을 환기시키기도 했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여론조사 기법상 문제점도 공론화해야 한다. 문재인 민주당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의 양자 대결을 가상해 처음으로 오차범위에서 안 후보가 문 후보를 앞섰다고 결과를 내놓은 내일신문-디오피니언 여론조사는 상당히 문제가 많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해당 여론조사 방식은 인터넷 조사 60%, 유선전화 40%로 구성돼 있는데 인터넷 여론조사의 포본이 모바일티머니 플랫폼 회원리스트로 돼 있다. 때문에 세대별 대표성을 반영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공통적으로 나왔다. 스마트폰 등 휴대전화를 활용해 인터넷으로 설문을 보내고 받는 형식으로 조사를 하는 방식인데 조사에 응하면 포인트를 보상받는 형식이라는 점, 모바일을 통한 조사이기 때문에 특정 세대의 여론이 과대 대표될 수 있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됐다. 실제 해당 여론조사의 표본 비율도 20~30대 56%, 60대 이상 4%로 나왔다. 일본의 경우 웹조사(인터넷 조사) 전문업체가 별도로 있을 정도로 엄격하게 시행되고 있다. 지난 2014년도 광역단체장 방송사 예측조사는 웹조사로 시행됐는데 대부분 예측에 실패했다. 웹조사의 경우 자신이 의견이 웹상 기록으로 남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지지정당 무응답이 높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있다.

웹조사를 시행한 국내 한 여론조사 업체의 경우 특정 정치 성향을 보이는 단체가 집단으로 몰려와 모바일 리스트 회원으로 가입하면서 표본이 오염될 수 있다는 비판을 받자 조사를 중단하기도 했다.

▲ 지난 4·13 총선 이후 여론조사를 비판하던 신문보도 갈무리.
▲ 지난 4·13 총선 이후 여론조사를 비판하던 신문보도 갈무리.
여론조사에서 많은 오해를 받는 부분이 전화 면접조사의 정확성이다. 자동응답보다 직접 조사원이 묻고 대답하는 조사 기법이 여론을 정확히 반영할 수 있다고 하지만 오히려 우리나라 문화는 상대방에게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밝히기는 것을 꺼려하기 때문에 자동응답조사 정확도가 높다는 것이다. 서구 유럽의 경우 공화당원이라거나 사회당원이라며 지지정당을 말하는 문화가 자리잡고 있지만 우리의 경우 지지정당부터 투표 의향까지 숨기는 경향이 많다.

여론조사업체 관계자는 “수천 명 되는 사람을 상대로 조사원이 정확하게 설문지대로 묻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사람 이름 한자라도 틀리면 오차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며 “전화면접조사를 한다면서 결과를 하루 만에 내놓는 것도 의심해봐야 한다. 이미 확보한 샘플을 대상으로 한 결과일 수 있다. 오히려 자동응답조사 기법이 정확할 수 있다”고 말했다.

투표 의향 조사 문항부터 더욱 세심하게 설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투표 의향을 묻는 질문에 대한 답부터 거짓말을 하게 되면 그 여론조사의 정확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대중들은 도덕적으로 투표를 해야 한다는 당위성 때문에 여론조사 질문에 투표를 하겠다고 답하지만 실제 투표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도 존재한다. 이 같은 편차를 줄이기 위한 설계 문항을 여론조사 업계가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무엇보다 여론을 정확히 반영하기 위해 지속적인 관심과 투자가 필요하다. 선거 때만 잠깐 여론조사 맹신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거나 정확성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다가 선거가 끝나면 ‘없던 일’이 되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최인숙 박사는 “프랑스는 여론조사업체 대표가 대부분 사회심리학자다. 이들이 주로 하는 일은 학자들과 선거결과를 연구하고 아이디어를 내놓는 일이다. 여론조사로 버는 돈의 100분의 1이라도 투자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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