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그건 소위 대형 언론사도 마찬가지였다. 기자와 PD는 늘 시간이 부족했고, 언론사는 항상 돈과 사람이 부족했다. ‘지금 해야 할’ 일들만 해도 차고 넘쳤다.
궁금했다. 시간이 주어졌을 때, ‘능력자’가 옆에 있을 때, 과연 어떤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 수 있을까. 그렇게 구글코리아, GEN(GLOBAL EDITORS NETWORK), 미디어오늘이 공동 주최하는 ‘서울 에디터스 랩’에 참가하기로 마음먹었다. 알고 지내던 개발자 후배에게 연락했다. 후배는 아는 디자이너를 불러왔다. 언론사 일은 한 번도 경험해본 적 없는 친구들이었다.
‘선거와 정치’라는 큰 주제 아래 가장 우선적으로 떠오르는 건 후보 공약 모음집, 의견 공유 플랫폼, ‘가짜뉴스’를 거르는 서비스 등이었다.
‘하지만 이 서비스를 만들면, 과연 나는 이용할까?’ 미디어 분야를 취재해오면서 느낀 건 정말 좋은 미디어 스타트업이 많다는 것과, 그럼에도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곳이 많다는 사실이었다. 홍보의 부족도 있지만, 막상 실생활에서 잘 이용하게 되지 않는다는 것도 큰 요인이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찾아서’ 뉴스를 보는 사람들보다, 일반 대중도 쉽고 재미있게 참여할 서비스를 만들고 싶었다. 문득 ‘투표 인증샷’ 열풍이 떠올랐다. 서로 더 많은 인증샷을 공유할 수 있게 한다면 다른 이의 참여도 끌어낼 수 있지 않을까. 과거 ‘Pray for Paris’ 운동이 생각났다. 파리 테러 당시 SNS 프로필 사진에 프랑스 국기 필터를 씌웠던 운동이다.
새로운 애플리케이션으로 사진을 찍고, 자동으로 필터를 씌운 후 SNS에 공유하는 작업까지 한번에 가능하다는 개발자 승인이 떨어졌다. 디자이너가 예시로 만든 ‘대선용 사진 필터’는 당장 내 프로필에도 씌울 수 있겠다 싶었다. 이 ‘인증샷 필터 서비스’를 선거에만 그치지 말고 ‘세월호 추모’ 혹은 ‘촛불집회’ 등 다양한 사회적 이슈에도 제공해 ‘정치 참여 플랫폼’으로 발전시키자는 데에 뜻이 모아졌다.
세부 사항을 논의하던 중 디자이너가 ‘어떤’ 이슈가 있을 때 서비스를 제공할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투표하자’는 대의는 모두 공감할 수 있고, ‘박근혜 탄핵’도 비교적 대다수가 동의하는 이슈라면, 그 이상의 이슈는 어떻게 선택해야 할까.
사람들이 요청하는 이슈에 모두 제공하자는 의견이 나왔지만, 만약 이를 ‘악용’하는 이들이 생길 때도 그들의 목소리를 담아야 할 것인가는 또 다른 문제였다. 그럼 사람들이 원하는 이슈를 건의할 공간은 마련하되, 적절한 걸 골라서 제공하면 어떻겠냐는 의견을 냈다. 디자이너와 개발자는 그렇게 되면 결국 또 의제를 우리만 선택하게 된다는 점을 지적했다.
대회장에서 반드시 결정해야 할 사항은 아니었기에 일단 논외로 하고 넘어갔다. 하지만 그 논의과정에서, 가볍게만 여겼던 서비스가 ‘이슈’를 다루는 순간 하나의 ‘의제설정’ 역할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지도 못한 지점에서 충격을 느꼈다. 언론사 경험이 없던 개발자와 디자이너가 제기하는 의문은 새삼 ‘보편적’, ‘객관적’이라는 말의 무게를 생각하게 했다.
개발자와 디자이너가 밤샘작업을 하는 동안 기획자는 곁에서 자리를 지키는 일밖에 할 수 없었다. 그때 가장 많이 든 생각은 사실 ‘왜 사서 고생을 하고 있을까’ 하는 점이었다.
우리 팀뿐만 아니라 회사의 권유로 나온 팀이든, 자발적으로 사람을 조직해 나온 팀이든 뚜렷한 이유가 있지는 않았다. 단지 새로운 걸 하고 싶은 이들이 모인 공간이었다. 감히 짐작하건대 결국 정체된 미디어 환경 속에서는 정체된 사회가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답답함, 언론사 내부에서는 보장받지 못하는 ‘자유’가 ‘사서 고생’의 가장 큰 이유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