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여당 추천으로 공영방송 MBC 대주주이자 관리·감독기구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가 된 유의선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는 지난 6일 현안을 보고받으면서 유독 ‘윤리’를 강조했다.

특히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지난달 MBC를 방문해 ‘MBC가 심하게 무너졌다’고 비판한 후 MBC가 보복성 보도와 ‘성명’ 보도를 쏟아낸 것에 대해 유 이사는 ‘언론 윤리학’을 거론하며 MBC 보도를 문제 삼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MBC 경영진 대변하다 자충수 둔 방문진 이사들)

유 이사는 “반론과 해명 차원서 얘기하는 것은 자사 이기주의이거나 (방송)심의규정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다. 언론 윤리학에 많이 나오는 얘기”라며 “어느 방송이든 방송 정체성과 신뢰성이 외부 권력 등에 의해 침해받아 훼손될 소지가 있을 때 자기방어적 방송은 자사 이기주의로 보지 않는다는 게 학계의 일반적 논지”라고 덧붙였다.

그래서 다른 여러 언론·방송학자들에게 물어봤다. MBC 경영진의 성명을 뉴스 리포트로 제작해 내보내는 것이 ‘언론 윤리학’적으로 볼 때 아무 문제가 없는지를. 결과는 모든 학자들이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일축했다. ‘유 교수가 저널리즘 윤리학 책을 한 권이라도 읽어 봤는지 의심스럽다’는 학자도 있었다.

유의선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 사진=한국방송학회
유의선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 사진=한국방송학회
한 교수는 “MBC가 문재인 후보의 발언이 부당하다고 생각한다면 성명서나 보도자료로 입장을 내면 되는 거지 메인뉴스에 몇 꼭지나 할애해 리포트로 보도하는 것은 MBC가 얼마나 무너졌는지 보여주는 방증”이라며 “거기에 ‘언론 윤리’를 갖다 붙이는 거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교수는 “자사에 대한 비판이 제기됐다고 해서 거기에 대한 반론을 뉴스 형태로 다루는 자체가 적절하지 않다는 것은 저널리즘 윤리상 너무도 상식적”이라며 “외국의 경우 뉴스를 통해 자사의 드라마를 홍보하는 경우도 거의 없다. 리포트를 만들려면 무언가 중요한 이슈가 있고 그 과정에서 회사가 연관됐다는 형식을 갖추는 게 이상적”이라고 설명했다.

한국기자협회 윤리강령 및 실천요강에도 취재 및 보도에 있어 “이해관계가 얽힌 사안의 취재 및 보도활동에 있어서 취재원에 대해 형평과 공정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나와 있다.

아울러 이날 유 이사는 방문진의 2017년도 학술진흥사업 지원 대상자 선정 결과에 대해서도 ‘윤리성 문제’를 언급했다. 이번에 저술 지원 대상자로 선정된 김세은 강원대 신문방송학과 교수가 올해 MBC 보도·시사 분야 경영평가단 위원으로 위촉됐는데 이번에 저술비 지원에도 선정돼 중복 지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방문진 관계자들과 김세은 교수 측에 따르면 방문진 저술 지원 사업은 학계 전문가들이 지원자들의 제안서를 보고 객관적인 기준에 따라 평가 후 대상자를 선정했다. 김 교수의 경우 다른 지원자보다 높은 점수를 받아 무난하게 최종 지원 명단에 들어갈 수 있었다. 방문진 관련 사업 규정에도 중복 지원에 대한 기준이나 규칙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유 교수는 “기준 점수 외에 많은 사람에게 공정성 등 특혜 오해 소지를 주지 않는 게 방문진 (최강욱) 소위원장의 역할”이라며 “이(김세은 교수) 사람은 어느 쪽으로 활동을 많이 하는 분인데 더 조심하고 신중하게 선정하는 게 좋을 뻔했다. 기준과 규칙이 없어 어쩔 수 없지만 법과 규범의 문제가 아니라 윤리성 문제에서 잘못된 것은 고쳐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방송문화진흥회. 사진=김도연 기자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방송문화진흥회. 사진=김도연 기자
유 이사가 김 교수의 어떤 활동 경력을 문제 삼는지도 불명확하고 방문진이 독립적·객관적 평가 지표 외에 어떻게 공정성과 윤리성을 갖춰야 하는지도 모호하지만, 1000만 원의 저술비 지원을 엄청난 특혜를 받는 양 과장하는 의도도 의뭉스럽다.

혹시나 김 교수가 그동안 유 이사를 포함해 언론·방송학회장 출신들이 공영방송 이사 등 특정 정치적 입장을 대변하는 자리로 가는 것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내왔던 점이 못마땅했을 수는 있다.

김 교수는 지난해 12월 한겨레에 기고한 칼럼에서도 “학회 윤리 차원에서 학회장 출신의 언론 관련 요직 진출을 일정 기간 금지하자는 제안이 있었지만 묵살됐다”며 “문제는 그들의 처신이다. 가서 잘하면 뭐 그리 문제가 되겠는가. 그렇지 못하니 말이 나고 탈이 난다. 더구나 언론 길들이기를 통해 조작과 왜곡을 일삼는 정권에서 정부여당의 입장을 대변하는 자리에 갔다면, 굳이 항변하지는 말자”고 꼬집었다.

유 이사는 지난해 7월 선진 공영방송의 지배구조와 갈등조정 메커니즘을 연구한다며 여권 추천의 권혁철·김광동·이인철 이사와 함께 8일간 영국과 독일, 오스트리아 등 유럽 3국으로 출장을 다녀왔다.

방문진 이사들이 결과보고서도 제대로 쓰지 않고 해외출장에 방만한 지출을 한다는 비판 속에서도 유 이사 등은 약 1억 원의 공금을 들여 출장을 다녀왔지만, 지난해 11월까지 “차별화된 보고서를 만들겠다”는 유 이사의 약속은 아직 지켜지지 않고 있다.

유 이사는 6일 방문진 이사회에서 “보고서가 아직 못 나온 것은 (선진 공영방송제도 조사연구) 소위원장으로서 굉장히 죄송하다”며 “사실 내가 인터넷으로 구할 수 없는 좋은 자료를 많이 가져왔는데 좋은 보고서를 만드는 데 정파적이 아닌 학술적 내용을 포함하는 게 쉽지 않았다. 중간에 엄청난 일이 있고 내가 몸이 아팠다. 가능한 한 빨리 쓰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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