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이 전직 대통령 박근혜씨의 탄핵·검찰소환·영장심사 국면마다 '눈물 소식'을 보도해 동정론을 부추긴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통령직에서 파면된 신분으로 과도한 예우를 누린다는 비판이 거세지는 상황에서, 동정론으로 이를 차단해 보수세력에 정치적 신호를 줄 여지가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지난달 12일부터 4일까지 언론보도를 종합하면 박씨는 탄핵 후 총 네 차례 울었다고 한다. 언론은 박씨의 청와대 퇴거 후, 검찰 소환 조사 도중, 영장실질심사 출석 전, 서울구치소 수감방 입소 직전 등 탄핵·수사와 관련된 매 국면마다 그의 눈물 동정을 전달했다.

▲ 디자인=이우림 기자
▲ 디자인=이우림 기자

본격적인 눈물보도는 박씨가 청와대를 퇴거한 지난달 12일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전언을 토대로 시작됐다. 머니투데이가 당일 보도한 ‘"박前대통령, 얼굴 거멓게 될정도로 우시더라…"’기사에는 이우현 자유한국당 의원이 “민 의원이 사저에 따라 들어갔다. 안에서 보니 (박 전 대통령의 얼굴이) 눈물로 화장이 번져 얼굴이 거멓게 될 정도로 우셨다는 얘길 듣고 마음이 좋지 않았다”고 말한 내용이 나온다.

이 같은 보도는 같은 날 ‘민경욱 "박 前 대통령, 얼굴 거멓게 될 정도로 우시더라"(조선일보)’, ‘눈물 보이며 청와대 떠나 웃으며 도착, 사저 안에선 펑펑 울었다(한국일보)’ 등으로 여러 매체에서 동일하게 나왔다.

박씨가 검찰 소환조사를 받은 후인 지난달 22일 동아일보는 “박근령 ‘한스럽다’… TV로 소환장면 보며 눈물 흘려” 기사(5면)에서 “여동생인 박 전 이사장(박근령)은 전날부터 울음을 터뜨리고 밤잠을 설쳤다고 한다”면서 “박 전 이사장은 ‘언니가 심적으로 많이 괴로울 것 같다. 어려울 때 힘이 돼 주지 못하는 점이 너무 한스럽다’며 답답한 심경을 신 총재에게 전했다고 한다”고 보도했다.

검찰 소환 도중 박씨가 울었다는 보도는 소환 당일로부터 일주일 정도가 지난 3월 28~29일에 집중됐다. 국민일보는 3월28일 “朴 ‘뇌물 받으려 대통령 된 줄 아느냐’ 흥분해 탈진” 단독 기사에서 친박계 핵심 인사가 “(박씨가 조사 도중) ‘내가 뇌물 430억원을 받으려고 대통령이 된 줄 아느냐’고 반발”했고 “격앙된 상태로 뇌물수수 혐의를 전면 부인하다가 탈진해 검찰 조사가 잠시 중단되기도 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동아일보는 3월29일 “朴, 검찰 조사때 눈물 흘리며 반박” 제목의 1면 기사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은 21일 서울중앙지검에 소환돼 조사를 받으면서 ‘내가 뇌물 같은 더러운 돈을 받으려고 대통령을 한 줄 아느냐. 동생들과도 인간관계를 끊고 지냈는데 그 이유가 뭔지 아느냐’며 눈물을 흘린 것으로 28일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 3월22일 동아일보 5면
▲ 3월22일 동아일보 5면

곧이어 3월30~31일엔 박씨의 남동생 박지만씨와 그의 아내 서향희씨의 눈물 소식이 대대적으로 전해졌다. SBS는 30일 “박근혜·박지만 ‘눈물의 재회’…‘마음의 준비 한 듯’” 리포트에서 “2층에서 내려온 뒤 (박지만·서향희) 부부의 눈시울이 붉었고, 박 전 대통령도 눈가가 젖어 있었다고 친박 의원들은 전했다”고 보도했다.

지난달 31일 전국단위종합일간지에는 “박지만, 큰누나 만나 눈물 왈칵… 이젠 내가 모셔야죠”(조선일보), “‘누나 괜찮나’ ‘오랜만이다, 미안하다’ 4년만에 만나 눈물의 대화 나눈 남매”(동아일보), “朴, 4년 만에 지만씨 부부 만나 '눈물'”(세계일보), “삼성동 찾아온 박지만 부부 ... 3년1개월 만에 눈물 상봉 15분”(중앙일보), “지만씨, 4년만에 큰누나 만나 눈시울“(한겨레) 등의 기사가 주요하게 보도됐다.

구속영장이 발부돼 구치소 수감이 이뤄진 후엔 ‘수감 전 눈물’이 보도됐다. 종합편성채널 TV조선이 지나달 31일 보도한 “구치소 독방 앞에서 펑펑 운 박 전 대통령” 단독 리포트는 “(박씨가) 한참을 방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선 채로 눈물을 쏟으며 울었던 것으로 전해진다”는 내용이다. TV조선은 “이에 교도관들이 ‘이러시면 안 된다. 방으로 들어가셔야 한다’고 달래며 박 전 대통령을 방 안으로 들여보낸 것으로 알려졌다”고 전했다.

동일한 내용이 다음 날인 지난 1일 동아일보 4면에 “영장발부 소식에 눈물… 朴, 올림머리 핀 빼고 화장 지워”란 제목으로 실렸다. 동아일보는 “전날 법원에 출석할 때와 달리 색조 화장이 지워진 핏기 없는 수척한 얼굴이 그대로 드러났고, 트레이드마크인 올림머리는 헝클어져 이마와 어깨로 머리카락이 흘러내린 채였다”면서 “(3월)31일 오전 3시 3분 구속영장이 발부된 직후 박 전 대통령은 10분 가량 눈물을 흘린 것으로 전해졌다”고 보도했다.

‘박씨 21일 오열’ 일주일 후인 영장심사 직전 쏟아져, 왜?

‘동정론 불지피기’라는 의혹이 구체화된 시점은 보도가 본격적으로 확산된 지난달 28일 경이다. 검찰 소환 당일에는 보도되지 않았던 박씨의 오열 소식이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가 임박한 때 대대적으로 보도됐기 때문이다.

친박 의원들이 기자회견, 페이스북 글 등을 통해 박씨에 대한 동정을 호소한 때도 이즈음이다. 지난달 28~29일 ‘눈물 보도’의 취재원으로 ‘친박계 핵심 인사’, ‘박 전 대통령 측 인사’가 눈에 띈다.

김진태 자유한국당 의원은 지난달 27일 국회 정론관 회견에서 “궁궐에서 쫓겨나 사저에서 눈물로 지새우는 여인에게 사약을 내리는 격”이라며 “이번 탄핵 사건 때문에 상심한 국민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고 있는 거다. 그만하면 됐다”고 말했다. 같은 당 윤상현 의원도 31일 자신의 페이스북 담벼락에 “대통령직 파면에 이은 가택 유폐도 모자라 인신구속이라니? 법원은 끝내 '탄핵-유폐-구속'이라는 외길을 택했다”고 적었다.

일부 언론과 친박 의원들의 ‘박근혜 동정론’은 오는 5월9일 19대 대선을 앞두고 보수세력 결집을 위한 여론화 시도가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이 박씨의 구속을 전후로 정치 공세를 자제하는 기류를 보인 것 역시 ‘보수 표심’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라는 분석이 나온다. 당지도부를 비롯해 문재인·안희정 등 당시 경선후보들은 구속 당일 ‘법 원칙에 입각했다’는 원론적인 논평만 내놓았다.

보수지로 분류되는 언론사들은 사설을 통해 직접 동정론을 강조했다. 조선일보는 3월25일자 사설 “朴 前 대통령 신병 처리 문제”에서 “재임 중 파면은 대통령에겐 극형을 능가하는 처벌로서 우리 헌정사에 단 한 사람도 없었던 치욕이자 불명예”라면서 “그런 처벌을 받은 사람을 며칠도 안 돼 감옥에 보내야 하느냐는 것은 그렇게 쉽게 외면해버릴 문제는 아닐 것”이라 주장했다.

동아일보 또한 28일 “朴 구속영장 청구한 檢, 국가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나”라는 사설에서 “사전 처벌로 말하자면 박 전 대통령은 정치적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탄핵을 당한 뒤 서울 삼성동 자택에 사실상 갇혀 충분히 받고 있다고 볼 수 있다”면서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처럼 국가를 존망의 위기로 몰아넣은 쿠데타 같은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한 전직 대통령이 적어도 불구속 재판을 받을 수 있게 해주는 것은 국격과 직결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들 언론의 주장은 대통령에 대한 예우 또한 법에 근거해야 한다는 법치주의 원칙을 거스른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특히 파면된 전 대통령인 박씨는 임기를 다 마친 전직 대통령과는 지위가 다르다. 대통령경호법에 따라 경호인력 지원만을 예외로 적용할 뿐, 그 외의 법조는 적용되지 않는다. ‘볼소추특권’은 대통령이라는 헌법기관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박씨와 관련이 없는 권한이다. 법원칙에 따르면 박씨는 ‘민간인’으로서 형사 절차를 밟아야 한다.

‘울었다’는 사실관계를 보도하는 것일 뿐 ‘동정론’은 지나친 확대해석이라는 반론도 있을 수 있다. 이에 대해 배나은 민주언론시민연합 활동가는 4일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보수언론의 경우 제목, 부제, 기사의 주제 등을 봤을 때 ‘박 전 대통령이 힘들다, 조사시간이 길다, 고생하고 있다’는 식의 보도를 보였다”면서 “단순히 언급을 하는 건 문제가 안 되지만 왜 구속됐는지 쟁점을 충실히 보도하지 않으면서 (눈물 보도만) 하면 ‘동정론’으로 볼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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