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 뿐 아니라 안 의사 일가의 항일투쟁과 통일·민주화 투쟁을 담은 저서가 나왔다. 안 의사 일가 가운데엔 친일 변절을 한 조카가 있었으며, 안 의사와 함께 거사를 도모한 우덕순이 변절했다는 증언자료가 처음으로 발굴되기도 했다.

정운현 전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 사무처장과 정창현 전 중앙일보 현대사연구소 전문기자(현 서울대·건국대 대학원 강사)가 최근 저술한 ‘안중근가 사람들-영웅의 숨겨진 가족이야기’에 이 같은 내용이 수록됐다. 정 전 처장은 책에서 “안중근 의사의 첫째 동생 안정근은 상해 임시정부에 합류했고, 청산리 전투에도 참전했으며, 임시의정원 의원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다”며 “둘째 동생 안공근은 백범 김구를 도와 한인애국단을 사실상 맡아 운영했고, 백범의 오른팔 역할을 했다”고 소개했다.

친형제 외에도 사촌동생 안명근은 이른바 105인 사건으로 종신징역을 선고받고 15년간 옥살이를 했으며, 또다른 사촌동생 안봉근은 독일로 이주해 손기정 선수와도 인연을 맺었다. 조카 안춘생은 중국군 장교를 거쳐 광복군에서 활동했으며 안우생은 백범의 비서를 지냈다. 2016년까지 안중근 가문에서 독립유공 포상을 받은 사람은 방계 인사를 포함해 15명에 달한다. 사촌동생 안경근과 조카 안민생은 통일운동과 민주화운동에 헌신했다.

정 전 처장과 정 전 기자는 이번 저술에서 안중근 일가 가운데 친일 행각을 벌인 이들에 대해서도 가감없이 기록했다. 특히 그동안 알려진 차남과 딸의 친일 행적 외에 조카의 친일행적도 사료를 통해 발굴했다. 안중근의 차남 안준생과 딸 안현생은 대표적인 박문사 참배를 한 대표적인 친일행적을 남겼다. 박문사란 안중근 의사가 저격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의 ‘박문(히로부미)’을 따 세운 사당이다. 1939년 10월26일 이토 사후 30주기에 맞춰 안준생 등이 참배하고 화해(10월16일)하는 장면이 연출됐다.

▲ 안중근 일가의 가계도. 사진=안중근가 사람들 97쪽
▲ 안중근 일가의 가계도. 사진=안중근가 사람들 97쪽

안봉근의 장남 안호생의 친일 행적도 나타났다. 그는 4·19 때 민주화 통일운동을 하다 옥고를 치른 안민생의 친형이다. 독립운동을 하던 안호생은 여러 가명 가운데 ‘안광훈’이라는 가명을 사용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저자들은 전했다. 친동생 안민생의 기록에 따르면 안호생은 1929년부터 남만주에서 안광훈이라는 가명으로 판스현에 있는 학교에서 교편생활을 했다.

그러나 이 ‘안광훈’이라는 이름은 1930년대 중반이후 만주에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했던 동북항일연군 1로군 참모장으로 활동하다 변절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안호생과 안광훈이 이명동인 즉, 동일인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정창현 전 중앙일보 전문기자는 4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안민생이 동생 안경옥에게 보낸 편지에서 1930년대 초부터 형 안호생에 대해 ‘안광훈’이라는 가명을 쓰기 시작했으며, 안호생은 1930년대 초반부터 동북항일연군 일로군으로 활동했다”며 “더구나 안호생은 1934년 일본 기록에는 만주성위원회 간부로 활동한 것으로 나온다. 기록에 안광훈이라는 이름은 1936년부터 나오기 시작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두 사람이 일치할 확률은 99%라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이밖에도 두 저자는 안중근의 조카 안민생의 편지에서 안중근 의사와 함께 거사를 벌인 우덕순이 의거 이후 변절했다는 대목도 발견했다. 

▲ 안중근의 조카 안민생이 5.16 쿠데타 직후 체포돼 재판받았다. 사진=안중근가 사람들 291쪽
▲ 안중근의 조카 안민생이 5.16 쿠데타 직후 체포돼 재판받았다. 사진=안중근가 사람들 291쪽
안민생은 편지에 “1945년 왜놈들 패전과 동시 왜놈의 주구로 있든 그 우덕순이 서울로 도망 와서 애국자로 행세하였으며 지금 이곳의 독립기념관에 애국열사로 모셔 있는 이 사실은 임이 지난일이라 할지라도 우리 민족사를 올바르게 사실대로 정립하기 위하여 밝혀져야 할 일”이라고 썼다.

정창현 전 기자는 “1999년 당시엔 등장인물이 생소하고 안민생에 대해서도 잘 몰랐으나 이번에 세밀히 검토하고 역추적한 내용을 소개했다”며 “우덕순 부분도 그동안 학계에서는 근거가 없어 거론하기 꺼리고 조심스러워 했던 부분”이라고 말했다. 다만 두 저자는 “이 대목은 앞으로 학계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추적해야 할 숙제라고 생각된다”고 전했다.

이에 반해 편지를 남긴 안민생 자신은 해방후 통일운동을 하다 삼대가 함께 옥고를 치렀다. 저자는 “안민생은 안경근, 안잠, 김성달 등 경북민통련 주요 간부들과 체포돼 이른바 혁명재판소에 넘겨졌다”며 “안민생의 장남 안기명씨도 고등학생으로 민주민족청년동맹 경북지부에서 활동하다 대구형무소에 잠시 수감되었다. 안경근-안민생-안기명 등 삼대가 통일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함께 형무소에 수감된 것”이라고 썼다.

정운현 전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 사무처장은 4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안중근 일가에 대해 영웅화 하지도 않았으며 불미스러운 내용도 다 쓰되 정확하게 썼다”며 “옥의 티가 일부 있지만 그 많은 안중근 일가의 인물들 면면을 보면 훌륭한 집안”이라고 평가했다. 정 전 처장은 “그런데도 이런 이름없이 쓰러진 분들은 물론이고, 안 의사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를 비롯해 남동생, 부인, 큰 아들에 대한 유해를 아직 다 못찾았다”며 “안 의사 유해도 여전히 찾지 못했으며 발굴작업이 쉽지 않은 상태”라고 말했다.

▲ 안중근의 차남 안준생이 1939년 10월16일 조선호텔에서 이토 분키치와 만나 아버지의 이토 저격에 대해 화해하는 장면. 사진=안중근가 사람들 413쪽
▲ 안중근의 차남 안준생이 1939년 10월16일 조선호텔에서 이토 분키치와 만나 아버지의 이토 저격에 대해 화해하는 장면. 사진=안중근가 사람들 413쪽
▲ 1932년 남산에 세워진 이토 히로부미의 사당 '박문사'. 사진=안중근가 사람들 410쪽
▲ 1932년 남산에 세워진 이토 히로부미의 사당 '박문사'. 사진=안중근가 사람들 410쪽
▲ 안중근가 사람들 책 표지
▲ 안중근가 사람들 책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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