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보겠어요. 내 새끼가 죽은 배를…”

‘준영 아빠’ 장훈(416가족협의회 진상규명분과장)씨는 물 위로 떠오른 세월호를 마주 볼 수 없었다. 긁히고 찢긴 세월호의 처참한 모습, 아들이 마지막 순간을 보낸 녹슨 쇳덩어리를 마주하는 것 자체가 그에게는 고통이었다.

세월호를 반잠수선에 싣기 위한 작업이 한창이던 지난 3월24일 오후였다. 세월호 유가족과 함께 ‘진실호’를 타고 진도 동거차도 인근 사고해역에 나갔다. 진실호는 유가족들이 인양 현장을 감시하기 위해 자비를 털어 마련한 5톤급 배다.

진실호에서 마주한 세월호의 모습은 처참했다. 긁히고 찢긴 선체 모습에서 참사의 고통을 느낄 수 있었다. 훼손된 세월호만큼이나 지난 3년 동안 동거차도를 지킨 피해가족들의 마음도 긁히고 찢겼다. 떠오른 세월호 앞에서 서럽게 눈물을 흘리는 유가족을 보고 참사 당시 기억이 머릿속을 스쳤다.

참사 직후 방문한 동거차도는 ‘눈물의 섬’이었다. 세월호 생존자들이 이송되고, 피해가족들이 발을 구르며 아이들을 기다렸던 눈물의 현장이었다. 304명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격한 동거차도 주민들은 충격에 빠졌다. 조용했던 작은 섬에 닥친 거대한 참사에 피해자와 가족, 주민들의 눈물이 마르지 않았다.

▲ 3월25일 동거차도. ⓒ이치열 기자
▲ 3월25일 동거차도. ⓒ이치열 기자
참사 발생 600일을 전후해 동거차도는 ‘분노의 섬’으로 바뀌었다. 9명의 미수습자가 남아있는 세월호 인양 결정은 지연됐고 인양 시작 후에도 수차례 실패만을 거듭했다. 그사이 선체에 100개가 넘는 천공(구멍)이 뚫렸고, 박근혜 정부가 선체 인양을 고의로 지연시키고 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유가족들의 슬픔은 불신과 분노의 감정으로 변했다. 유가족들은 인양 현장을 감시하기 위해 동거차도 산 중턱에 ‘감시초소’를 세웠다. ‘진실’을 찾으려는 가족들은 안산과 동거차도를 오가며 1000일 넘게 선체가 떠오르길 기다렸다.

참사 발생 1072일, 시험인양이 시작된 동거차도에는 긴장과 불안이 가득했다. 열려있던 선미램프를 절단하는 긴박한 상황에 인양 실패 우려도 있었지만, 참사 발생 1073일 만에 세월호가 서서히 물 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밤새 인양 작업을 뜬눈으로 지켜본 유가족들은 떠오른 세월호를 보고 서럽게 울었다.

‘동수 아빠’ 정성욱(가족협의회 인양분과장)씨는 “선체만 올라왔을 뿐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고 했다. 단지 긁히고 찢긴 쇳덩어리만 물 위로 올라왔을뿐 참사의 진실은 아직 바닷속에 잠겨있다고 말했다. 그는 오히려 “속전속결로 진행된 ‘졸속인양’이 피해가족들에 또 다른 과제를 남겼다”고 우려했다.

인양과정에서 훼손된 선체, 늘어난 천공 때문에 참사의 원인을 밝히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또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된 인양과정에서 부실했던 ‘유실 방지대책’ 때문에 유실물 발생 우려도 커지고 있다.

▲ 옥기원 민중의소리 기자
▲ 옥기원 민중의소리 기자
세월호 유가족들은 지난 3년 동안 단 한 가지 요구를 위해 거리를 떠돌고 있다. “자식이 죽은 이유를 알려달라”는 아주 당연한 요구였다. 가족들은 “인양이 됐다고 세월호 참사가 끝나는 게 아니다. 세월호 인양은 진실을 찾기 위한 시작일 뿐”이라고 말한다. ‘세월호 진상규명’. 참사 발생 1085일, 세월호가 떠난 동거차도 감시초소를 유가족들이 지키고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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