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31일. 바다와 땅에서 동시에 슬픈 눈물이 교차됐다. 수학여행을 떠났다 참변을 당한 세월호가 1081일의 긴 여정을 마치고 뭍으로 견인되는 모습을 보며 세월호 유가족들은 다시 한번 빗속에서 통탄의 눈물을 흘렸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서울에서는 파면당한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구속’ 당하며 눈물을 보였다고 한다.

눈물의 성격은 달랐지만 두 장면을 접하는 국민의 마음은 착잡했다. 언론에서는 ‘박근혜가 사라지자 세월호가 돌아왔다’는 식으로 보도했다. 세월호 진상규명도, 최순실의 국정농단에 대한 진실조사도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돼야 한다.

기소도, 재판도 시작되지 않았고 진실은 여전히 강하게 부정당하고 있는데, 한쪽에서는 벌써부터 ‘박근혜 사면’ 얘기가 나오고 있다. 얼마나 더 불행한 일이 반복돼야 정신을 차릴까.

▲ 세월호 미수습자 허다윤양의 부모 허흥환씨가 4월1일 오전 전남 목포 목포신항에 거치된 세월호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 세월호 미수습자 허다윤양의 부모 허흥환씨가 4월1일 오전 전남 목포 목포신항에 거치된 세월호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세월호의 눈물속에서도 박 전 대통령은 불통의 정치를 이어오지 않았던가. ‘국민행복시대’ ‘비정상의 정상화’를 국정 기치로 내걸었지만 실제로는 얼마나 허망한 말장난에 불과했던가. 국민에 대한 두려움, 주권재민에 대한 기본 인식만 있었더라도 차마 그렇게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되돌아보면, 박 전 대통령은 국민이 과분하다할 정도로 많은 사랑을 쏟은 대상이었다. ‘친박’ 한마디에 전과자들조차 국회의원으로 만들어줬을 정도였다. 국회의원, 지방자치 선거판은 박 전대 통령과 친분관계를 보여주는 사진을 내걸기 위해 혈안이 돼 있었고, ○○후보를 찍어달라는 말을 녹음한 테이프를 돌리기만 해도 선거는 끝날 정도였다. 오죽하면 ‘선거의 여왕’이라는 닉네임까지 나왔을까. 그 힘이 결국 대통령으로 만들어줬을 정도였으니 박 전대통령은 국민에게 큰 빚을 진 셈이다

그런데 취임후 박 대통령은 무슨 일을 어떻게 했던가. 국민의 기대와 사랑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오만한 권력자는 ‘배은망덕’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국민의 맹목적인 지지와 믿음은 오히려 독이 돼 불통의 대통령을 만들었다.

당내에서도 반대했던 윤창중씨를 청와대 대변인으로 고집하여 국제망신 시킨 사건은 불행의 시작에 불과했다. 비판과 견제는 사라졌다. 비판 언론인들은 해고와 좌천으로 솎아냈고 공영방송사는 홍보기관으로 전락시켰다. 상식이 사라지고 혼란은 가중됐다.

대선 당시 내걸었던 경제민주화 등의 공약은 사라지고 논란이 됐던 국정원 댓글 사건도 검찰총장을 쫒아내면서까지 무리하게 대응했다. 교수신문은 박 전 대통령 첫해말인 2013년, 4자성어로 “도행역시(倒行逆施)-순리를 거슬러 행동한다”를 선택했다.

순리를 거스르는 박 전 대통령의 업무처리 방식과 행태는 상식을 초월했다. 장관 청와대 수석과도 1년에 한번도 대면보고를 하지 않는다는 말이 들리기 시작했다. 언론과의 정기적인 접촉조차 없을 정도로 국민과 멀어져가는 오리무중의 공기가 청와대를 감싸고 돌았다.

▲ 2016년 4월20일 박근혜씨가 청와대에서 열린 전국새마을지도자와의 대화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 2016년 4월20일 박근혜씨가 청와대에서 열린 전국새마을지도자와의 대화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교수신문은 2014년 4자성어로 “지록위마 (指鹿爲馬) - 거짓이 진실을 가린다”로 통렬히 꼬집었다. 세월호 사건의 진실은 혼란속에 아무 것도 밝혀진 것은 없고 그 진실을 가리기 위한 진상조사위원회조차 활동을 못할 정도로 주변 태클은 심했다.

청와대는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의 돈줄을 고리로 관변단체를 동원하여 청와대의 정책에 반대하거나 비판하는 세력에 대해서는 ‘용공세력’ ‘좌파’ ‘빨갱이’ 등으로 매도하면서 철처하게 사회를 분열시켰다. 비선세력으로 인해 민주주의 시스템이 붕괴되고 대통령은 보이지않는 혼탁한 세상을 향해 교수신문은 2015년, “혼용무도(昏庸無道) - 세상이 온통 어지럽고 무도하다”를 선택했다.

이런 비판과 지적에 조금만이라도 귀를 기울였더라면 박 전 대통령이 파면과 구속이라는 수순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친박 측근들은 어리석은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렸다. 국가재난상황에서도 대통령은 청와대 출근조차 하지 않았는데 괴이한 말을 만들어냈다.

“대통령은 눈을 뜨면 출근이고 눈을 감으면 퇴근”이라던 대통령실장은 감방에 가서야 노환탓을 하며 병보석 운운하고 있다. 따지고 보면 대통령을 망친 것은 친박세력만은 아니다. 무비판적으로 맹목적으로 사랑과 지지를 한 유권자들에게도 책임이 없지 않다.

비판과 견제는 레이저 눈빛으로 제압하고 진실은 사소한 문제로 덮어버렸다. 그러나 전국민을 상대로 장기간 ‘거짓’을 이어갈 수는 없었다. 교수신문은 마침내 2016년 “군주민수(君舟民水)- 임금은 배 백성은 물이니 물은 배를 띄울 수도 뒤집을 수도 있다”는 말을 그 해의 4자성어로 선정했다. 분노한 국민이 촛불을 들고 시위에 나서 국정농단의 실체를 요구하는 상황, 거의 민란(民亂) 수준에 이른 것이다.

박 전 대통령 집권 초기 단계. 순리를 거스르고 있다는 ‘도행역시’를 교수사회에서 선정했다면 위험의 경고신호로 받아들였어야 하는데 오만한 권력은 무시했다. 그 다음 단계로 거짓이 진실을 가리고 있다는 ‘지록위마’를 접해서는 무엇이 잘못됐는지 위기의식을 느껴야 했지만 ‘선거의 여왕’을 만든 국민의 맹목적 지지에 취해 있었다.

▲ 박근혜씨가 2016년 8월8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 참석해 참모진과 대화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박근혜씨,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 우병우 전 민정수석, 현대원미래전략수석. ⓒ 연합뉴스
▲ 박근혜씨가 2016년 8월8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 참석해 참모진과 대화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박근혜씨,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 우병우 전 민정수석, 현대원미래전략수석. ⓒ 연합뉴스
세상이 온통 어지럽다는 혼용무도의 단계에 접해서 마지막 경고음을 보냈지만 이미 리더십을 상실한 대통령과 국정을 완벽하게 파괴한 비선실세의 유착은 되돌릴 수 없었다. 청와대의 수석과 장관들은 비선실세의 야바위꾼에 지나지 않았고 철저하게 국민과 진실에 등을 돌리며 만고역적의 길을 갔다.

마지막으로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온 분노한 국민의 대세는 관변단체로도 맞설 수 없었다. 역대 대통령 최초 파면에 이은 구속은 인과응보(因果應報), 사필귀정(事必歸正), 파사현정(破邪顯正), 척사위정(斥邪衛正)이다.

불행한 역사는 반복되는 법이다. 맹목적 지지는 유권자가 지도자를 망치는 독이다. 불행을 예고하는 예후를 읽어내고 순발력 있게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 열린 지도자가 되라는 것이 박 전 대통령 사건이 주는 반면교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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