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오늘은 오늘부터 제19대 대통령 선거 언론보도와 관련해 연속 칼럼을 게재합니다. 이번 칼럼 연재는 전국언론노동조합과 한국언론정보학회 저널리즘학 연구회의 공동기획으로 진행됩니다. -편집자주

2017년 3월10일 오전 11시21분. 헌법재판소의 선고가 내려진 순간부터 미디어 의제는 ‘탄핵’과 ‘세월호’에서 ‘대선’으로 전환되었다. 대통령 중심 국가에서 대통령의 부재를 미디어가 견디지 못하는 형국이다. 자연스럽게 탄핵과 세월호 이슈들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라는 의제유지(agenda keeping)와 함께 새로운 대통령을 만들기 위한 미디어 간 의제경쟁이 시작되었다.

각 정당의 대선 후보들이 가시화되면서 모든 시계가 5월9일을 향하고 있다. 언제나 그랬듯 대통령 선거는 블랙홀처럼 모든 것을 빨아들인다. 대선 모드로 돌입한 이후 언론들이 그간 드러내지 않았던 진영 간 편 가르기 발톱 날을 세우고 있는 모양새다. 그 큰 축의 하나가 주류라 자처하는 신문과 방송들의 ‘문재인 때리기’이다. 이른바 ‘문재인은 안된다’와 ‘문재인은 싫다’는 프레임들이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문재인은 친북, 친중, 반미주의자로 벌써 점령군 행세를 하고 있다는 서술구조를 갖추고 있다.

이것이 유력후보자에 대한 검증이라면 그 자체를 굳이 문제 삼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후보자 검증은 언론의 당연한 역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색깔론이나 막무가내식 인식공격은 선거를 ‘닫힌 공간’으로 만든다는 데 심각한 문제가 있다. 엄청난 유·무형의 비용을 들여 대통령 선거를 치루는 것은, 평상시 드러내보지 못했던 우리사회의 제반 문제들을 ‘선거’라는 공간에서 맘껏 이야기해보기 위함이다. 열린 토론의 장이 서야 합리적 선택과 대안이 마련될 수 있음은 물론이다.

▲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예비후보가 4월2일 서울 종로구 동양예술극장에서 열린 ‘문재인, 문화예술 비전을 듣다’ 행사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문재인 선거캠프
▲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예비후보가 4월2일 서울 종로구 동양예술극장에서 열린 ‘문재인, 문화예술 비전을 듣다’ 행사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문재인 선거캠프
문재인 후보에 대한 호불호(好不好)를 떠나 유권자들에게 정치혐오와 냉소를 유발하는 ‘문포비아즘적’ 보도를 경계하는 이유이다. 그간의 선거에서 반복되었던 종북좌빨식의 색깔 입히기는 정상적인 논의와 토론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그런 점에서 ‘지역 덧씌우기’도 색깔론과 다를 바가 없다. 이러한 공세들은 이쪽 편과 저쪽 편이라는 양립할 수 없는 경계를 만들어 놓는다. 그러다보면 정당과 정책은 없고 특정 후보에게 불리하거나 유리한 편협한 보도들이 선거판을 지배하게 된다. 자연히 국가발전, 민주주의의 확대, 국민의 삶의 질 향상과 관련된 이슈들은 작아지거나 사라지고 만다. 그 빈 공간을 채우는 것은 줄선 충성투표자들을 향한 거친 아우성들이다.

후보 개인 간 대결구도를 지나치게 부각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언론들이 어떤 ‘말’에 화답할지 후보들은 잘 알고 있다. 트럼프 학습의 효과다. 국민정서와 상식을 깨는 발언을 일삼는 이유다. 언론들이 이를 받아주기 시작할 때 몰염치와 뻔뻔함은 자리를 틀게 된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들이 정책이나 국가 비전 제시보다 언론사탕 놀음에 주목하는 까닭이다. 언론들이 이들의 가벼운 놀이 경쟁의 놀이터가 되어서는 안된다. 최소한 공영방송이나 사회적 공기로서의 정론을 내세우는 언론이 할 짓은 아니다. 오죽했으면 1992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미국언론들이 ‘진실점검팀(Truth Squad)’을 만들었는지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1988년 당시 부시 후보 선거 캠페인에 언론이 놀아났다는 자성이었다.

▲ 최낙진 제주대 언론홍보학과 교수
▲ 최낙진 제주대 언론홍보학과 교수
대통령의 탄핵을 이끌어내는 과정에서 주류 언론들은 그 소임을 다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대선보도를 다루는 언론들의 어깨에는 잔뜩 힘이 들어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자칫 이 언론들이 자신들이 원하는 대통령을 만들겠다는 욕망에 사로잡혀 있지는 않은지 걱정이다. 권력이든 언론이든 어느 한 쪽이 독점하여 과도한 힘을 발휘할 때의 위험성은 박 대통령의 탄핵 국면에서 이미 확인되었다. 최고 권력을 정점으로 ‘생각의 한 줄 서기’만을 종용할 뿐, 옆 줄에 서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언론은 전체주의자와 다를 바가 없다. 극단적 이념에 바탕을 둔 색깔론의 수식어로 누군가를 배제하고, 국민의 자유로운 생각을 제약하는 ‘언론 전체주의’가 이번 대선에서는 발현되지 않기를 바란다. 세계 민주주의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촛불광장 혁명을 완수한 대한민국은 낡은 이념으로 재단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 본 칼럼의 연재는 전국언론노동조합과 한국언론정보학회 저널리즘학 연구회의 공동기획으로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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