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 측 변호인단이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색깔론 프레임’ 공세를 시도한 사실이 드러났다. 변호인단이 ‘특검이 야당 지시에 따랐다’거나 ‘반기업 언론 및 재야단체에 입각해 사건을 변질시켰다’는 언급이 담긴 의견서를 법원에 제출한 것이다.

양재식 특검보는 31일 오후 2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김진동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이재용 재판’ 제3회 공판준비기일에 출석해 “(의견서는) 특검이 대기업에 적대적인 일부 언론과 재야단체의 시각을 반영해 사건을 변질시켰다고 한다”며 “일부 언론이 누구고 재야단체는 누구며 특검이 어떻게 사건을 변질시켰는지 밝혀달라”고 요구했다.

▲ 박근혜 대통령과 비선실세 최순실에게 430억대 뇌물공여 등의 혐의를 받고 구속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8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조사를 받기 위해서 소환되고 있다. 자료사진.ⓒ민중의소리
▲ 박근혜 대통령과 비선실세 최순실에게 430억대 뇌물공여 등의 혐의를 받고 구속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8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조사를 받기 위해서 소환되고 있다. 자료사진.ⓒ민중의소리

양 특검보가 지적한 내용은 지난 30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피고인 5인의 변호인단이 제출한 의견서 서론에 포함돼 있다.

의견서엔 “일부 언론은 특검 관계자를 인용하며 각종 피의사실, 부정확한 정보, 의도적으로 왜곡된 사실을 보도해왔다” “특검 역시 공판이 열리기 전부터 재판부에 유죄의 예단을 심어 주기 위해 적극 노력해왔다” 등의 내용도 포함됐다.

양 특검보는 “일부언론이 누구고 그 사례가 뭔지 밝혀주길 바란다”면서 “무슨 근거로 그런 표현을 의견서에 기재했느냐. 특검보 개인의 의견이 아니라 특검팀 전체 의견으로, 변호인단은 합당한 해명을 해달라”고 요구했다.

‘야당 커넥션’을 거론하며 특검수사를 정파적 결과물로 몰아가는 정황도 보였다. 해당 의견서 2쪽에 “특검을 사실상 임명했다고 볼 수 있는 야당이 특검에 수사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는 내용이 기재된 것이다.

양 특검보는 “이 의견서를 쓴 사람은 특검보로 추천됐던 사람”이라며 “무엇을 근거로 이같은 걸 썼는지 밝혀 달라”고 항의했다. 해당 의견서 작성자로 ‘법무법인 태평양’의 문강배 변호사가 지목되고 있다. 박영수 특검은 지난해 12월 문 변호사를 특검보 후보 8명에 포함시켰다. 이 중 삼성 측 법률대리인을 맡은 변호사는 법무법인 태평양의 문 변호사밖에 없다.

이에 변호인은 “양 특검보가 말한 내용은 서론 부분에 해당되는 내용”이라며 “다음 공판기일의 모두 진술 절차에서 근거를 제시하면서 밝히겠다”고 답했다.

부정청탁 ‘절대 안했다’는 이재용… 특검, 뇌물죄 입증 난항 예고

이재용 부회장 방어 전략의 핵심은 ‘부정청탁 및 대가관계’ 부정이다. 뇌물죄(수뢰죄) 성립의 전제가 대가관계 합의 및 부정청탁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재용 부회장이 정유라 승마지원, 미르·K스포츠재단 및 한국동계영재스포츠센터 지원 명목으로 최순실씨 등에게 준 433억 원대 금전은 ‘경영권 승계 작업 도움’을 청탁한 사실이 확인되지 않는 이상 ‘뇌물’이 아닌 ‘별개의 지원금’이라는 취지다.

▲ 박근혜 대통령이 2015년 7월7일 오전 경기도 평택 고덕 국제화계획지구 내 부지에서 열린 삼성전자 반도체 평택공장 기공식에 참석, 기공 발파식을 마친 뒤 이재용 부회장과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박근혜 대통령이 2015년 7월7일 오전 경기도 평택 고덕 국제화계획지구 내 부지에서 열린 삼성전자 반도체 평택공장 기공식에 참석, 기공 발파식을 마친 뒤 이재용 부회장과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삼성 측 변호인단의 한 변호사는 이날 심리에서 “피고인 이재용은 3번에 걸친 대통령 독대에서 특검이 공소장에 적시한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와 관련해 어떤 부정청탁도 한 사실이 없다”면서 “독대에서 대통령으로부터 경영권 승계를 도와주겠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없고 바라지도 않았다”고 주장했다.

특검은 공소장에 2014년 9월15일 전 대통령 박근혜씨가 이 부회장과의 독대에서 정유라에 대한 승마 지원을 요구했다고 특정했다. 2015년 7월25일 독대에선 박씨가 이 부회장에게 승계작업 지원을 거론하며 정유라 승마지원 재요구,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 및 영재센터 자금지원 등을 요구했다고 기재됐다. 특검은 2016년 2월15일 박씨가 청와대 '안가'에서 이 부회장을 만나 정씨 승마 지원을 다시 요구했다고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또한 “금융지주회사 전환 신청에서 보듯이 삼성이 신청한 회사가 관할기관에 의해 상당수 거부됐다. 중간금융지주회사 추진은 실제로 시도된 적이 없었다”고 강조했다. 

‘중간금융지주회사’는 금융사와 제조업체를 함께 보유한 그룹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할 때 금융사들만 지배하는 중간 단계의 금융지주회사를 설치하는 것으로 금융회사 비중이 큰 삼성이 가장 큰 혜택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이 박씨에게 청탁을 한 대가로 지목된 제도다.

이 변호사는 이어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 작업’은 오로지 특검의 일방적이고 독단적인 주장”이라며 “전부 사업상 필요에 의해 이건희 회장 와병 이전부터 정상적으로 진행해오던 사업 개편 구조의 일환”이라고 강조했다.

이 변호사는 “미르·K스포츠 출연금의 경우 피고인 이재용은 최순실씨가 각 재단에 있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영재센터도 마찬가지”라며 “정유라 승마지원 경우, 삼성은 올림픽에 대비해 여러 선수를 지원하려던 것에서 시작했지 정유라 개인 지원이 시작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특검이 최씨와 박씨를 ‘뇌물수뢰’ 공동정범으로 특정한 것에 대해 삼성 변호인단은 “최씨는 대통령과 가족이 아니고 생활도 같이 하지도 않았고 수익과 지출을 함께 관리한 것도 아니다”면서 “공무원(박씨)에 금품이 귀속되지 않고 비공무원(최씨)에 귀속될때, 단순 수뢰죄의 성립 여지가 없다”고 주장했다.

변호인단은 “늘상 현안이 있을 수밖에 없는 대기업이 사회공헌활동 차원에서 지원한 것도, 대통령·정부 요구에 의해 이뤄졌기 때문에 뇌물이라는 건 극단적 논리”라며 “과거부터 있어왔던, 청와대·정부 주도 사업에 참여해온 기업이 모두 뇌물로 처벌될 수 있다는 말인데 비상식적 논리”라고 밝혔다.

변호인단의 입장 발표가 이어지는 동안 검사 석에 앉은 양재식 특검보, 문지석·박주성 파견검사가 머리를 모으고 짧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여러번 보였다. 직접 반박 의견을 개진한 박 검사의 경우 변호인이 발표하는 내내 변호인단을 또렷이 지켜보고 있기도 했다.

이날 변호인 측 입장에 대해 박주성 검사는 "변호인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며 “공무원과 비공무원이 뇌물 수수에 대해 공모하고 역할을 분담해 뇌물을 요구해 금품을 제공 받은 경우, 비공무원이라 하더라도 공동정범 일반원칙에 따라 단순수뢰죄 공범이 성립한다”고 반박했다.

박 검사는 ‘이 부회장은 최순실을 몰랐다’는 주장에 대해 “변호인 의견서 3번 8쪽을 보면 피고인 박상진은 2015년7월29일 최씨 측근 박원오를 만나 그로부터 최순실과 대통령의 관계, 최순실의 영향력을 들었다”며 “박상진은 그 무렵 승마관련 지원이 최순실과 정유라 지원과 관련된 것임을 확인했다. 변호인이 명백히 기재했다”고 지적했다.

특검 측은 향후 증거조사 및 증인신문을 통해 공소사실을 입증해 내겠다는 방침이다. 안종범 전 정책수석의 업무수첩과 삼성의 부정청탁 정황을 확인한 공정거래위원회·금융위원회 등 유관기관 증인들이 유리한 증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재용 재판의 제1회 공판기일은 오는 4월7일 오전 10시 서울중앙지법 대법정 421호에서 열릴 예정이다. 이 부회장의 수의를 입은 모습은 이날 법정에서 처음 공개될 예정이다. 피고인은 공판기일에 의무적으로 법정에 출석해야 한다.

이재용 재판은 전 대통령 박근혜씨가 삼성의 경영권 승계작업에 행정적·제도적 지원을 해주는 대가로 최씨와 함께 삼성그룹으로부터 433억 원 규모 뇌물을 받은 사건이다. 이 부회장은 뇌물공여자로 구속기소됐다.

피고인은 이 부회장을 포함해 박상진 삼성전자 대외협력사장, 최지성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실장, 장충기 미전실 차장, 황성수 삼성전자 대외협력담당 팀장 등 5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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