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브랜드 고객층의 취향을 생각하지 않고 광고 모델 등을 기용했다가 비난을 받고 모델을 바꾸는 일들이 연이어 벌어지고 있다.

지난 22일 동영상 서비스를 제공하는 ‘넷플릭스’는 넷플릭스 코리아 광고 모델로 유세윤을 발탁했다. 넥플릭스는 유세윤의 광고 영상을 공개했다가 거센 비판을 받고 하루 만에 해당 광고를 삭제했다. 넷플릭스가 제공하는 영상의 특성상 소수자나 젠더 문제에 예민한 고객들이 많았고, 이러한 고객 중 많은 이들은 유세윤의 ‘여혐발언’을 잊지 않고 있었다. 넷플릭스 코리아는 “넷플릭스의 취지에 맞지 않는 모델 선정”을 사과했다.

▲ 넷플릭스 코리아는 유세윤을 모델로 쓴 영상을 하루만에 삭제했다.
▲ 넷플릭스 코리아는 유세윤을 모델로 쓴 영상을 하루만에 삭제했다.
비슷한 일이 연달아 일어났다. 27일 화장품 브랜드 ‘에뛰드’는 방송인 전현무가 모델로 나오는 광고를 공개했다. 영상이 게재된 직후 SNS상에서는 “고객층을 고려하지 않은 모델 선정”이라는 거센 비판이 잇따랐다. 에뛰드는 티저영상을 공개한지 3시간 만에 영상을 내렸다. 에뛰드는 “에뛰드 브랜드 이미지에 적합하지 않다는 소비자 의견이 다수 제기됐다”며 영상을 삭제한 이유를 밝히고 사과했다.

▲ 에뛰드 하우스 SNS 계정.
▲ 에뛰드 하우스 SNS 계정.
지난해 2월에도 화장품 브랜드 맥(MAC)에서 방송인 유상무를 발탁했다가 비슷한 논란이 일기도했다.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점들이 있다.

1. 헤이트 스피치에 대한 처벌이 없는 상황에선 이런 소비자 운동이 대안이 될 수 있다.

유세윤과 유상무의 경우 ‘여혐발언’으로 인해 기자회견을 열고 사과까지 한 인물들이다. 그들은 동료인 장동민과 함께 팟캐스트를 진행하며 여혐발언을 내뱉었다. 장동민은 “여자들이 멍청해서 남자한테 안 된다”, “X 같은 X”, 유세윤은 “생각해보니까 우리가 참을 수 없는건 처녀가 아닌 여자야” 같은 발언으로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이들은 여전히 방송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다. 이것이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유세윤을 모델로 쓰는 브랜드에 비난을 가한 것이다. 전현무도 마찬가지다. 에뛰드의 경우 과거 방송에서 반여성적인 발언을 한 사람들이 여성을 주구매층으로 한 상품의 모델로 쓰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국처럼 헤이트 스피치(국적, 인종, 성, 외모 등에 대해 의도적으로 폄하하는 발언)에 관대한 나라에서, 효과적인 처벌은 ‘소비자 운동’으로 수렴된다. 독일 등 인권선진국에서는 헤이트 스피치로 부와 명예를 잃은 사람들이 흔하지만 한국은 그렇지않은 경우가 많다. 이에 불만을 느끼는 이들이 스스로 소비자운동에 나설 수밖에 없는 것이다. 넷플릭스나 에뛰드의 사례처럼, 소비자운동은 분명 힘이 세다. 하루 만에 모델을 바꿀 정도이니 말이다.

▲ 개그트리오 옹달샘의 장동민(왼쪽부터), 유상무, 유세윤이 28일 오후 서울 상암동 스탠포드호텔에서 인터넷방송 막말 논란 사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 개그트리오 옹달샘의 장동민(왼쪽부터), 유상무, 유세윤이 28일 오후 서울 상암동 스탠포드호텔에서 인터넷방송 막말 논란 사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2. 소비자운동으로 혐오발언 등을 처벌하려 할 때 부작용도 있다.

소비자운동에서 기업 등이 주소비자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것을 문제삼을 경우, 소비층이 누구냐에 따라 사안이 복잡해질 수 있다. 지난해 ‘넥슨’의 소위 ‘메갈리아’ 성우 목소리 삭제 건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넥슨은 ‘메갈리아’에서 후원금을 모으는 용도로 만든 티셔츠를 인증한 성우의 목소리를 삭제했다. 넥슨의 게임을 즐기는 주소비자층이 남성들이었고, 그 남성들이 ‘메갈리아’를 ‘남성혐오’ 집단으로 해석하는 이들이 주소비자층이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주소비자층의 취향을 맞추지 못한 기업은 무조건 응징당해야 한다’는 식의 소비자운동이 찜찜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3. 그렇다면 어떤 소비자운동은 맞고, 어떤 소비자 운동은 잘못된 것인가?

그럼 어떤 소비자운동은 맞고, 어떤 소비자운동은 잘못된 것인가. 이런 생각이 들 때 결국 중요한 것은 가치판단일 수밖에 없다.

같은 소비자운동이라고 할지라도 유세윤이 넷플릭스 광고에서 삭제된 것에 동의하는 이는 넥슨의 성우 목소리가 삭제된 것에는 동의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이들은 “넥슨 성우의 건은 올바르지 않은 가치에 근거했기 때문에 문제가 되고, 전현무나 유세윤의 건은 올바른 가치에 의해 판단했기 때문에 괜찮다”고 말할 수 있지만 여기에 동의하지 않은 이들도 있다.

이는 누군가에게는 소비자운동이 ‘내로남불’(내가하면 로맨스, 남이하면 불륜)로 보일 수 있다. 소비자운동에도 가치판단, 진영논리가 들어가기 때문이다.

결국 ‘소비자’이기 때문에 기업에 어떤 요구를 해도 된다거나 혹은 소비자층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기업이 무조건 잘못을 했다는 식의 논리는 자신이 생각한 가치와 다른 소비자층을 만날 때, 충돌할 수밖에 없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소비자운동에 우려가 생기는 지점이다. 당장 소비자운동에 입각해서 전현무나 유세윤 등을 비판하면 가장 효과적일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역풍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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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소비자운동은 힘이 세다. 그러나…

소비자운동은 힘이 세다. 기업 같은 큰 조직을 상대로 개인이 싸울 수 있는 운동 중 가장 힘이 센 방식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는 한계가 있는 운동방식이기도 하다. 

김민하 평론가는 책 ‘냉소사회’에서 소비자운동의 한계를 이렇게 표현했다.

“오늘날의 피지배계급은 노동계급으로서의 자기 확신을 얻고 체제를 변혁하기 위한 투쟁에 나서는 복잡한 과정을 거치는 대신에 소비자로서의 정체성으로 기득권에 대항하는 손쉬운, 즉 효율적인 길을 선택한다. 

세상만사에 나타나는 대중의 소비자주의적 태도는 생산자로서의 자기 위상을 비틀고 모든 문제를 소비자의 관점으로 해석하게 하는 세태를 만드는 데 일조한다.”(냉소사회, 176p)

일련의 소비자운동들이 ‘소비자이기 때문에 내 말을 들어라’는 식이 아니라 결국 옳은 가치가 무엇인지 설득하는 방식으로 나가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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