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삼성반도체 영업비밀과 관련해 논란이 거세다. 법원이 삼성전자 안전보건 진단보고서에 대해 ‘총평’을 제외하고 비공개하라고 결정하자, 이미 일부 공개된 보고서를 두고 친자본 성향 언론사들이 삼성의 입장을 대변하는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가령 전자신문은 27일 “법원이 비공개 판결을 내린 반도체 산업 분야 기밀 보고서가 또 다른 언론사로 유출된 것으로 보여 논란이 예상된다”고 보도했고 한국경제는 23일 “민감한 건 다 가린 채로 받아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고용부와 삼성전자 측 말은 다르다”고 강조했다.

기사만 보면 엄청난 영업비밀이 공개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지난 국정감사에서 공개된 내용을 보면 영업비밀은 커녕 삼성의 잘못을 지적한 것에 불과하다. 왜 해당 보고서가 지금 다시 논란이 될까. 순서대로 정리했다.

▲ 3월 27일 전자신문 기사
▲ 3월 27일 전자신문 기사
삼성반도체 화성공장, 법 위반만 1934건 

2013년 1월 삼성전자 화성 반도체 공장에서 불산누출 사고가 일어났다. 작업자 1명이 사망하고 4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에 따라 특별감독 명령이 내려졌는데 1934건의 위반 사안이 발견됐다. 대규모 법 위반이 드러나자 정부는 삼성반도체 전 사업장에 대해 ‘안전보건진단’을 실시했다. 

이를 정리한 것이 ‘안전보건진단 보고서’다. 해당 보고서는 19대, 20대 국회에 제출됐다. 그러나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많은 부분이 가려진 채였다. 하지만 지난 해 국정감사에서 이 ‘영업비밀’의 민낯이 드러났다. 19대와 20대 국회에 제출된 보고서에 가려진 부분이 달랐기 때문이다. 

▲ 3월 24일 한국경제 38면 칼럼
▲ 3월 24일 한국경제 38면 칼럼
“보호구 지급”이 영업비밀? 
 
지난해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국감 질의에 따르면 삼성과 노동부가 영업비밀이라고 주장했던 내용 중에는 노동자의 건강과 직결된 부분들도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가려져 있었다. 

가령 “메탄올이 함유돼 있으나 측정에서 누락됨” “에틸렌클리콜이 함유돼 있으나 측정에서 누락됨”이라는 내용이다. 에틸렌글리콜은 생식독성으로 미국에서는 사용이 금지된 화학물질이고 메탄올 역시 이를 다룬 노동자들이 실명에 이르러 논란이 된 물질이다. 

보호구 지급과 관련해서도 영업비밀로 가려졌는데 해당 내용은 “개인별로 보호구를 지급한 현황 및 이력관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근로자가 보호구를 지급받았다는 서명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보호구 지급 여부가 반도체 산업의 중요한 영업비밀일까. 

강 의원은 지난해 국감에서 “영업비밀이라고 하더니 알고 보니 대부분 위험한 작업환경에 대해 지적한 내용이 아니”냐며 “왜 정부는 삼성과 한편이 돼서 위험한 작업환경을 은폐하려고만 하나. 정부의 이런 태도가 노동자들을 피눈물 나게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이 지난 2013년 3월 서울 곳곳에서 전자산업 피해자 추모주간 행사를 하고 있다. 사진=반올림 제공
▲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이 지난 2013년 3월 서울 곳곳에서 전자산업 피해자 추모주간 행사를 하고 있다. 사진=반올림 제공
이미 공개된 보고서 비공개 판결, 삼성만 신났다  

이미 많은 부분이 공개된 보고서를 “총평만 공개하라”고 하니 논란이 될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노동자 안전과 관련돼 ‘찔리는’ 부분들을 공개하지 않을 수 있는 구실이 됐음은 물론이고 이를 진작에 공개한 강 의원에 대해서도 비판할 빌미를 잡은 셈이다. 

맥락을 보면 영업비밀이라고 볼 수 없는 부분에 대해 비공개 판단을 내린 법원 판단을 지적하는 게 맞다. 그럼에도 친자본 성향의 언론은 삼성 입장만 그대로 전달했다. 가려진 영업비밀 중에는 반도체 산업의 기밀이 아닌, 노동자의 건강과 직결된 내용도 있다는 사실은 거의 보도되지 않았다. 

게다가 지난해 국감 이후 노동부는 향후 정보공개 방향 및 범위에 대해 “직업병 연관성 입증에 필요한 정보는 가급적 제공하되, 기업의 영업비밀 보호 필요성의 균형을 고려”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정부가 충분히 검토한 다음 공개하겠다고 했고 그 기준에 따라 강 의원실에 최종 제출된 것. 

반도체노동자의건강과인권지킴이에 따르면 2017년 1월 기준으로 삼성반도체 직업평 피해자는 229명이며 이 중 79명이 사망했다. 고 황유미씨가 숨진 지는 10년이 됐다. 언론은 그때보다 얼마나 나아졌을까. 여전히 삼성은 언론의 리트머스 시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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