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당시 ‘유가족의 조급증이 화를 키웠다’는 보도 등으로 물의를 빚었던 박상후 MBC 시사제작1부장이 이번엔 자사 리포트를 ‘재활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25일 MBC ‘경제매거진M’ 방송에선 ‘경제현장’ 코너로 “스마트카 시대 성큼”과 “중국 자동차 약진” 두 꼭지의 리포트가 나갔다. 그런데 이 리포트는 이날 처음 방송된 게 아니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민주방송실천위원회 확인 결과 두 아이템 중 하나는 5달 전에, 다른 하나는 한 달 전에 이미 ‘뉴스데스크’ 리포트로 나간 내용이었다.

이날 방송된 “스마트카 시대 성큼” 아이템은 지난해 10월9일 ‘뉴스데스크’ “[뉴스플러스] 이제 예술성으로 승부, 차 개념 바뀐다” 리포트를, “중국 자동차 약진” 아이템은 지난달 22일 “[앵커의 눈] ‘싼 가격에 성능 우수’, 中 자동차의 무서운 질주” 리포트를 거의 기대로 배낀 ‘표절본’이었다.

문제가 된 ‘경제매거진M’ 방송 기사를 직접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박상후 시사제작1부장은 이미 방송된 자사 기자 리포트의 자료화면 뿐만 아니라 기사 내용도 일부 문구 순서와 표현만 바꾼 후 성우에게 읽도록 해 방송을 그대로 내보냈다.

 지난해 10월9일 MBC ‘뉴스데스크’ 리포트(위)와 지난 25일 ‘경제매거진M’ 방송 화면(아래) 갈무리.

지난해 10월9일 MBC ‘뉴스데스크’ 리포트(위)와 지난 25일 ‘경제매거진M’ 방송 화면(아래) 갈무리.
민실위에 따르면 방송을 나흘 앞둔 21일 박 부장은 시사제작1부 소속 기자를 불러 이미 보도된 ‘뉴스데스크’ 기사들을 보여주고 “이 뉴스 리포트들로 방송을 제작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해당 기자는 “몇 달 전 방송된 ‘뉴스데스크’ 꼭지로 재방송하겠다는 것은 부당한 지시”라고 문제를 제기하며 “사드 관련 중국의 경제 보복이나 대통령 탄핵 이후 경제 전망 등의 아이템으로 대체하자”고 건의했다. 그러나 박 부장은 이를 묵살하고 이 기자에게 ‘지시 불이행’을 이유로 경위서 제출을 요구했다.

방송 하루 전인 24일에도 ‘경제매거진’ 제작진은 조창호 시사제작국장과 면담에서 “사실상의 ‘재방송 편집’은 심각한 문제”라고 거듭 지적했다. 그러나 조 국장은 “기자적 입장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PD 입장에서 보면 가능하다”면서 “모양은 예쁘지 않지만 방송이 못 나갈 수 있는 특수한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재활용한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민실위는 “‘재활용’ 수준을 넘어 기존 방송물의 복사판을 본방송으로 둔갑시켜놓고도 ‘기자는 안 되고 PD는 재활용 편집으로 시청자를 기만해도 된다’는 해괴한 논리를 편 것”이라며 “남의 논문을 표절해도 사회적 비난 여론이 높은데 공영방송 MBC는 자사에서 방송된 프로그램을 스스로 표절하고 시청자들을 기만했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조 국장은 지난 17일 부서장회의에서 원래 ‘경제매거진M’의 한 코너였던 ‘Y리포트’를 제작비 절감 등을 이유로 폐지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Y리포트’는 지난 2014년 폐지된 소비자 권익 보호 프로그램 ‘불만제로’의 대체 프로그램 성격으로 본사와 프리랜서 PD·작가 4팀이 만들던 코너였다. 결국 본사 PD는 타 부서로 발령 났고, ‘Y리포트’가 폐지되면서 프리랜서 제작진들은 계약이 종료됐다.

▲ 지난달 22일 서울 상암동 MBC 신상옥 앞 광장에서 열린 친박집회에 박상후(왼쪽) MBC 문화레저부장이 극우논객 변희재씨(오른쪽) 옆에 서 있다.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지난달 22일 서울 상암동 MBC 신상옥 앞 광장에서 열린 친박집회에 박상후(왼쪽) MBC 문화레저부장이 극우논객 변희재씨(오른쪽) 옆에 서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민실위는 “‘표절 방송’ 파문과 별개로 이번 ‘Y리포트’의 폐지로 그나마 명맥만 유지해오던 소비자 고발 코너는 MBC에서 사라졌다”면서 “저널리즘에 대한 원칙도 능력도 없는 자들이 프로그램을 멋대로 좌우하는 상황이 김장겸 체제 MBC에서도 계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디어오늘은 문제가 된 방송 원고를 직접 작성한 박상후 부장에게 리포트 표절 논란에 대한 해명을 듣기 위해 전화와 문자로 연락했지만 답변을 듣지 못했다.

MBC 기자들로부터 ‘재탕 사기 방송’을 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박 부장은 지난 3일 보도국 문화레저부장에서 MBC ‘100분 토론’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시사제작1부장이 됐다.

박 부장은 세월호 참사 이후 2014년 5월7일 ‘뉴스데스크’ 데스크 리포트에서 “일부 실종자 가족들은 해양수산부 장관과 해양경찰청장 등을 불러 작업이 더디다며 압박했다”며 “조급증에 걸린 우리 사회가 왜 잠수부를 빨리 투입하지 않느냐며 그를 떠민 건 아닌지 생각해봐야 할 대목”이라고 주장했다가 MBC 구성원들과 시청자들에게 많은 비판을 받았다.(▶‘일베’ 글 퍼나르던 MBC 간부 ‘100분 토론’ 맡는다)

한편 광주MBC는 지난 1월18일 ‘5시 뉴스’에서 8개 뉴스 꼭지 중 7개 꼭지를 1월14일 방송된 뉴스로 내보냈다가 방송사고에 대한 민원이 제기돼 22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법정제재인 ‘주의’ 의견으로 전체회의에 회부된 상태다.(▶광주MBC, 나흘 전 뉴스 똑같이 방송한 사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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