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10일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을 파면했다. 나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발생하고 2달여 동안 주말 광화문 촛불집회를 취재했다. 파면 선고가 있던 당일에는 보다 깊이 있는 분석을 위해 선배 기자와 함께 친박집회 현장 소식도 담으려 했다.

서울에 온 대만공공방송(PTS) 선배 기자가 헌재 근처에 있었다. 선배는 현장의 동영상을 보내줬다. 촛불 시민들은 환호했지만 박근혜 지지자들은 분노를 가감 없이 표출했다. “꼭 조심하시고 무슨 상황이 있으면 꼭 알려주라”고 선배에게 당부했다. 당시 PTS뿐 아니라 대만 4개 방송국 기자들 모두 헌재 근처에 있었다. WBC 야구 경기가 일찍 끝났기 때문에 현장으로 급히 파견된 스포츠 기자들이었다. 이들은 한국 정치, 그리고 박근혜 지지자들의 분노와 탄핵 민심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오후 3시경 한 한국 신문사 기자가 문자를 보내왔다. “너 어디에 있어? 벽돌에 맞은 외신기자가 있다고 하던데 혹시 너인가 싶어서”라고 했다. 나는 “아니다. 나는 집에서 기사를 준비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 후 불과 몇 분 뒤 대만공공방송(PTS) 선배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는 “헌재 앞에서 사망 사고가 발생했다”고 했다. 나중에는 “친박집회에서 대만 기자가 폭행당해 병원으로 이송됐다”고 전해줬다. 파면 결과를 받아드릴 수 없었던 친박 지지자가 대만의 SET 기자를 돌로 내려친 것이다. 다행히 대만 기자는 크게 다치지 않았다. 무사히 귀국했다. 공격한 지지자도 검거됐다고 한다.

부상당한 기자와 같은 소속인 린징민(林敬旻) 대만 SET 기자는 “돌멩이와 술병이 내 귓가로 날아드는 순간 더 이상 친박집회에 있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술회했다. 친박집회 현장에서 사망자가 나왔을 때 그는 제일 먼저 사진을 통해 무시무시한 현장 상황을 공개했다.

▲ 지난 3월10일 친박탄핵반대세력들이 경찰차벽을 넘어 헌법재판소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지난 3월10일 친박탄핵반대세력들이 경찰차벽을 넘어 헌법재판소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박근혜 지지자들은 현장에 있는 내외신 기자들에게 적대적이다. 박 전 대통령이 파면당한 게 언론의 탓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카메라와 마이크를 잡고 있는 동료와 선배들을 방해하는 데 여념 없었다. 한국어를 할 줄 모르는 PTS 선배는 “어르신들은 일부러 리포트를 하고 있는 내 몸을 밀치고 막고 욕설을 퍼부었다”고 했다. 나는 “그럴 때 중국 사람이 아니라 대만 기자라고 알려야 한다. 지금 사드 문제 때문에 중국인으로 오인되면 정말 큰일난다”고 당부했다. 박근혜 지지자들은 사드 문제가 초래한 중국의 혐한(嫌韓) 정서가 박근혜 정부 지지율이 떨어진 이유라고 해석하고 있었다.

실제 한 선배가 영어로 대만에서 왔다고 밝히자 친박 지지자들의 반응이 순간적으로 바뀌기도 했다. 환호도 했고 인터뷰에 응하기도 했다. 한 시민은 “한국 언론들은 진실을 보도하지 않고 있다. 모두가 거짓말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심지어 “북한이 좌익 지지자를 선동해 빨갱이들이 박 대통령을 끌어내린 것”이라는 말도 나왔다. 선배는 두려워했다. 그는 “현장에서 술 냄새가 너무 났다. 그들의 정서 상태가 불안정해 또 무슨 사고가 나올지 우려했다”고 덧붙였다.

한국 보수 진영 지지자들은 공산주의 국가 중국에 부정적이다. 과거 반공 동맹국으로 ‘자유중국’이라고 불리는 대만에 대한 태도와는 또 다르다. 린징민 기자는 “우리가 대만 언론이라고 하면 그들은 우호적인 감정을 보이곤 했다. 우리와 악수를 나눴고 태극기를 주기도 했다. 중국어를 하는 이들은 우리에게 박 대통령의 결백을 주장하며 억울함과 하소연하곤 했다”고 했다.

▲ 박근혜씨가 3월21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조사를 받기 위해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 박근혜씨가 3월21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조사를 받기 위해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흥미로운 점은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한 뒤 중국과의 관계를 위해 대만과 공식적으로 접촉하지 않았다. 지난해 차이잉원 총통의 당선 뒤에도 축하장을 보내지 않았다. 심지어 청와대가 최순실에게 건네준 문건에는 “중국이 대만 문제를 제기할 때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중국’ 원칙을 존중한다”는 내용도 있었다. 대만의 주체성을 명시적으로 부인한 것이다.

▲ 양첸하오 BBC 중국어판 객원기자
▲ 양첸하오 BBC 중국어판 객원기자
한국은 북한의 위협과 불안정성을 대비한 안보를 중시한다. 과거 역사에서 중국으로부터 위협을 받은 대만인들도 이 지점에 공감한다. 한국과 같은 경계심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하지만 자신들이 듣고 싶은 말만 듣고 내부 갈등을 전혀 해소하지 못한 채 “반공”, “애국”을 운운하며 다른 주장을 배척하려는 모습은 이해하기 어렵다. 한국 정부가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목숨을 잃은 백남기 농민 죽음을 ‘폭력시위’, ‘불법집회’ 프레임으로 덮는 행태도 박근혜 지지자들은 고민해야 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원칙과 소통이 사라지면 ‘빨갱이’가 없어도 나라는 위기에 빠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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