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이 전두환에게 표창을 받았다.” 굳이 이 말을 먼저 꺼낸 건 문재인 자신이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예비후보는 지난 19일 대선 경선 후보 토론회에서 특전사 시절 사진까지 꺼내들고 폭파 훈련에서 상을 받았다고 자랑했다. 상대적으로 전투력이 약하다는 평가를 받는 문 후보 입장에서는 자신의 남성성을 드러내는 이미지 전략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경쟁 상대인 안희정 후보와 이재명 후보가 병역 면제를 받은 것과도 비교된다.

안희정이 “표창장을 버리고 광주 시민들에게 사과하라”고 공격한 것은 지역감정을 자극하는 맥락 없는 네거티브 전략이었지만 문재인 역시 군대 이야기를 꺼낸 의도와 방식이 적절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흥미로운 건 하나의 프레임이 확산되는 과정이다. 광주·전남 경선 투표를 앞둔 시점이었다. 안희정·이재명은 ‘전두환 표창’을 부각시키면서 이른바 ‘반문 정서’를 자극했고 보수 언론에서는 이 황당한 해프닝을 논란으로 키웠다.

“문재인이 전두환 표창을 받았다고 자랑했다. 이래도 문재인을 지지할 거냐?”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상당수 언론 보도가 이런 메시지를 확산시킨다. 안희정 캠프의 박영선 의원은 “광주 민심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며 네거티브 전략에 가세했다. 그러나 광주·전남 지역 경선 결과에서 보듯이 이런 얄팍한 프레임 전략은 관망하던 지지자들을 돌아서게 만들기 보다는 오히려 결속시키는 효과가 크다.

‘정권교체론’에 맞서 보수 진영이 내세우는 프레임은 ‘반문연대론’이다. 애초에 ‘문재인은 친노’라거나 ‘호남은 반문’이라는 프레임 역시 일찌감치 박근혜 이후를 준비해온 보수 언론과 기득권 세력이 만든 작품이었다. 정권 교체보다 친문 또는 친노의 집권을 막는 게 더 중요하다는 논점일탈의 해괴한 주장이다. 심지어 문재인이 되면 노무현 정부 2기가 시작된다는 궤변까지 나도는 상황이다.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심판’을 ‘박근혜가 되면 사실상 정권 교체’라는 교묘한 프레임으로 뒤집었듯이 ‘박근혜 심판’을 물타기하고 ‘친노 대 보수의 대결’로 끌고 가려는 음모가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평생 1번만 찍었다”는 사람들에게는 문재인에게 덧씌워진 친노 또는 종북의 이미지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보수 언론의 목표는 반문이 아니라 보수의 재결집이다. 이들은 문재인이 쓰러지면 안희정이나 이재명을 공격할 것이다.

한때 보수 진영이 밀었던 ‘대선과 개헌 동시 투표’도 사실상 폐기된 프레임이다.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국민의당까지 끌어 모아도 개헌 정족수를 확보하기 어려울 뿐더러 현실적으로 시간도 턱없이 촉박하다. 박근혜 탄핵이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 때문이라는 어설픈 주장도 힘을 얻기 어렵다. 보수 진영이 한물 간 개헌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건 강력한 문재인 대세론에 균열을 낼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적폐청산’과 ‘통합’이 중요한 키워드다. 이재명은 적폐를 청산할 사람은 나 밖에 없다고 주장하고 있고 안희정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못 이룬 ‘대연정’을 내세우며 중도 보수 진영에 손을 내밀고 있다. 이재명은 문재인의 왼쪽에서, 안희정은 문재인의 오른쪽에서 세력을 확장하는 형국이다. 중도 보수를 표방한 국민의당 안철수 예비 후보는 문재인 대 안철수 구도를 강조하면서 과거 새누리당 지지자들을 흡수하는 전략으로 가고 있다.

생각해 보자. 우리가 대통령 하나 바꾸자고 가을과 겨울, 봄까지 1500만명이 20차례나 촛불을 들었나. 진영과 프레임을 떠나 우리가 이들에게 물어야 할 중요한 질문이 있다. 박근혜와 이재용을 사면시킬 것인가. 사드 배치를 철회할 수 있는가. 철회하지 않는다면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치 위기를 극복할 대안은 있는가. 박근혜는 물론이고 이명박 정부의 적폐까지, 구호가 아닌 실질적인 적폐청산의 의지가 있는가.

특별히 문재인에게 물어야 할 질문도 있다. 권력은 이미 시장에 넘어갔다던 과거 노무현의 실패를 답습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논란이 된 영입 인사들을 모두 데리고 갈 것인가. 당장 여소야대 국면을 돌파할 정치력이 있는가. 앞당겨진 이른바 ‘장미 대선’으로 문재인 대세론에 힘이 실리는 것이 사실이지만 상당수 국민들에게 문재인은 최선의 대안이 아니라 달리 대안이 없는 상태에서 마지막 선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문재인이 반문 프레임을 극복하려면 대세론에 안주할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프레임을 깨고 박근혜 체제와 온전히 단절하기 위한 시대정신을 제시해야 한다. 안희정이나 이재명 역시 문재인을 끌어내리는 게 아니라 문재인을 뛰어넘을 강한 정치력을 보여줘야 한다. 프레임을 깨려면 더욱 강력한 프레임이 필요하다. 보수 정당이 궤멸한 선거에서 별다른 감동과 열정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선거는 이기고 지는 한 판 승부가 아니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다음 정부는 박근혜 뿐만 아니라 박근혜 정부를 탄생시킨 낡은 질서와 기득권 동맹을 해체해야 할 무거운 과제를 안고 출범하게 된다. 대통령 뿐만 아니라 정치 시스템과 사회의 작동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비로소 적폐의 청산이 가능하다. 단순히 우리 편이 이기는 게 아니라 우리 편이라고 생각할수록 더욱 가혹한 질문을 던지고 비판해야 한다. 더 많은 질문이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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