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단순한 거지만, 깊이 들어가면 아주 복잡한 거야.”

영희(김민희 분)는 독일 함부르크에서 낯선 서점에 들어가고, 서점 주인은 엉뚱하게도 어린이 교향곡을 들려주며 이렇게 말한다. 영화는 서점 주인의 말처럼 겉으로 보면 아주 단순하면서도 깊이 들어가면 복잡해 보인다.

단순하게 보면 ‘밤의 해변에서 혼자’는 홍상수 감독과 김민희 배우의 사생활을 그대로 옮겨놓은 영화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가 개봉 전부터 ‘별점 테러’를 받았던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불륜을 미화한다”, “스스로 면죄부를 만들고 있다”는 평도 쏟아진다.

아내가 있는 영화감독과 사랑에 빠진 배우는 외국에서 생활하게 된다. 한국에 돌아와 주변사람들에게 “흔들리지 않고, 무슨 일이 일어나도 나답게 살기로 했어”라고 말한다. 주변사람들이 영희의 연애에 던지는 말들 역시 현실 스캔들에 대한 옹호로 보인다.

실제로 영화를 그들의 사생활과 떼놓고 봐야한다는 의견은 받아들이기 어려울 정도다. 영화관에서도 사람들은 현실과 연결 지어지는 대사가 나올 때 마다 웃음을 터뜨린다. 그 분위기 안에서 영희가 “나 이제 남자 얼굴 안 봐”라고 말할 때, 배우 김민희와 연결됐던 열애설의 주인공인 몇몇 배우들을 순서대로 떠올리지 않는 것은 무리다.

▲ '밤의 해변에서 혼자' 영화 포스터.
▲ '밤의 해변에서 혼자' 영화 포스터.
하지만 영화가 그들의 사생활과 다른 것은 (실제와 다른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영화 속 두 연인은 이미 헤어진 상태라는 점이다. 영희는 연인인 영화감독(문성근 분)과 헤어진 후 그를 기다린다. 영희는 “난 안 기다려. 오고 싶으면 오는 거지”라고 말은 해도 해변가에 가서 그의 얼굴을 그리고, 촬영차 미팅을 온 그의 조감독에게 “감독님은요?”라고 물어본다. “왜 이런 마음으로 살게 됐는지”라는 노래를 읊조리며 눈물을 그렁거리는 영희는 스캔들에 부정적인 이들에게도 연민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감독을 그리워한다.

해변가 근처 술집에서 만난 영화감독과 배우, 즉 헤어진 연인은 묘한 대화를 주고받는다. 영화감독은 “그대의 손등에 키스했을 때, 우리는 정말…불행했습니다”라는 글귀를 읽는다. 감독은 이어 “후회하는 걸 누가 좋아서 하냐. 그런데 그것도 자꾸 하다보면 달콤해져”같은 말을 계속해서 내뱉는다. 헤어진 남자는 자신을 기다리는 듯 한 여자에게 돌아가지 않을 것을 돌려서 이야기한다.

지금까지 홍상수 영화에서 ‘술자리’는 남녀의 연애나 섹스로 이어지는 것이 보통이었지만 ‘밤의 해변에서 혼자’는 그렇지 않다. 전 연인끼리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결국 영희는 마지막에도 혼자서 해변에서 잠이 든다. 계속해서 영화는 불륜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불륜 이후를 이야기한다. 혼자 남은 여배우를 보여준다. 그 여배우는 너무 쓸쓸하고 춥고 계속해서 거절당한다. 지인들에게 “나랑 같이 살까”라고 물어봐도 거절당한다. 기다리던 영화감독을 겨우 만났지만 다시 사랑이 시작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이 영화를 ‘홍상수와 김민희의 사랑 이야기’를 미화하느라 만들었다는 해석은 너무 단순하다. 오히려 이 영화는 이들의 사랑이 끝난 이후를 이야기하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아마 감독은 사랑이 끝난 이후의 배우를 걱정한 것은 아닐까. 배우에게 “다시 영화 해야지”, “너는 재능이 있어”라는 대사가 수도 없이 변형돼 나오는 점도 그렇다. 그리고 이 사회에서 ‘불륜’이 끝난 배우에게 전 연인인 영화감독의 존재는 마치 영화 속 검은 옷을 입은 사내처럼 불쑥불쑥, 언제나 붙어 다니게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홍상수 감독은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많은 소설가들처럼 영화 만드는 사람이 디테일이나 만드는 자세에서 얼마든지 개인적이고 솔직할 수 있다”고 밝혔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는 불륜이 끝난 이후를 보여준다. 추운 바다에서 자는 전 연인이 걱정되기는 하지만, 그녀를 깨우는 것은 그녀가 기다리는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다. 불륜 이후 감독은 배우가 아주 쓸쓸해질 것임을 보여준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를 그들의 사생활과 엮어서 보려고 한다면, 감독은 대중들에게 자신의 불륜에 대해 솔직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연인에게 솔직했던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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